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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따로 또 같이 눈 밝혀 가는 사람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by 푸르름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 정다은, <정신병원에도 아침이 와요> -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오늘도 갈등한다.

내가 가진 것들,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 내가 버리고 싶은 것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


오랫동안 불안에 휩싸여 있었고 이를 놓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내게는 언제든 순간의 즐거움을 무채색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나름의 사연도 있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내 마음이 완전히 괜찮아질 수는 없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데 참으로 오래 걸렸다.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 대한 걱정도 여전하다.

빠져나오려면 나를 찾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행복을 검열하고 차단하는 오랜 습관을 버려야 한다. 여전히 감사하게도 주변의 도움을 받아 주기적으로 예전에 좋아하던 것들을 맛보고 즐길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좋은 기분을 느끼는 나를 부끄럽게 여기고 만족감을 차단해 버린다. 실컷 즐기고나 오면 억울하지나 않을 것을, 나는 매 번 어렵게 시간을 내고 나서도 눈치 보며 좋은 시간을 망쳐버린다. 폭염에도 산들바람은 분다. 생각하는 것처럼 고생과 파국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오래된 습관과 관성을 조금씩 버려야 한다. 우선 그저 바람을 다시 즐길 수 있는 감각과 감정이라도 되살려 볼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왜 그렇게 나쁘게 이야기해요? 그럼 그 사람 좋아하는 나는요?”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아프게 다가왔다. 어차피 남 일이라 나만큼은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한 신세한탄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찌를 수 있음을 잊었다.


나를 알아가고 욕구에 충실하고 아껴주되, 주저앉고 싶은 관성에서는 단호히 일으켜 세우는 밸런스(너그럽되 한없이 너그러워서는 안 되는 상황)는 여전히 어렵다. 불안과 예민을 일으키는 것들을 차단하되 조금씩 노출해서 이겨내야 하는 부분도 힘들다. 믿기 힘들 때도 내가 행복한 것이 모두가 원하는 것임을 주문처럼 되뇌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사과할 일이 아니다. 그동안 내가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 인정해 주고 안아주되 선택과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에게 솔직해지고 나를 칭찬해 주고 일으켜 세우되 자꾸 피하려는 나의 턱을 들어줘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못했지만 내일은 할 수 있을 것처럼 나머지 하루를 보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도 낭비했다고 느껴질지라도 오늘도 감사해야 함을 안다.


다들 힘들다는 위로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고 주변에 수십 번 말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있는 경계인이라는 말은 묘하게 위안이 된다. 한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문이 열리지만 이 문에서 열린 저 문으로 걸어가는 그 사이의 어둠은 스스로 눈 밝혀 가야 하는 것이라고 은사님은 말씀하셨다. 그 어둠을 밝혀 가는 것, 두렵고 못 할 것 같아도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걱정하는 것처럼 아주 외롭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도 저 멀리서 (어쩌면 바로 옆에서) 따로 또 같이 발버둥 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때로는 나 혼자 망망대해를 마주한 것 같더라도 파도 속에는 작은 물방울들이 가득하다는 작은 교훈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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