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끝은 있어요.
안타깝게도, 괴로울 만큼 다 괴로워야 안 괴로워져요. 그런데 그 괴로움에 분명히 끝은 있어요.
- 함광성,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
생각보다 괴로움에 함몰된 순간들은 많았다. 주위엔 늘 할 만큼 했다고 위로해 주던 착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왜 이렇게 나약할까 자책하곤 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인 것을 나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주저앉은 내가 답답했다.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며 나오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견뎌야 하는 괴로움의 총량이 있다 손 치더라도 나는 그 괴로움마저 ‘현명하게’ 또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부적절함을 느꼈다.
마음이 지치면 이성이 마비되고 감정에 충실해져 이 괴로움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감정에 지지말자는 말은 생각보다 어렵다. 때로는 영원할 것 같은 괴로움에서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더 쉬울 때도 있다. 내 스스로 부여한 역할극에서 나오지 못하는 나를 인지하고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은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생각에 빠지지 않는 분별력과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럴 때 차라리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대신 영원하지 않다는 것만 기억해 보면 어떨까. 이 괴로움이 끝난다고 믿어 보자는 말은 희망고문이나 낙관주의가 아니다. 부정적으로 편향된 추를 중심으로 다시 가져오기 위한 균형 잡기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는 것, 함정이 아니라 미로라는 것, 그러거나 말거나 내일도 삶은 이어진다는 것.
괴로워도 잊지는 마. 그저 지금이 그런 시간, 그래야 하는 시간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