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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해석하기

근사한 리트리버를 사귀는 법을 배워

by 푸르름

너라면 이 순간 나에게 거침없이 충고하겠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과장되게 콧잔등을 찡그리며 말하겠지. 그게 어쨌다는 거지? 점자를 배워. 백지에 구멍을 뚫어서 시를 써. 근사한 리트리버를 사귀는 법을 배워.

- 한강, <희랍어시간> -


가끔은 다른 이의 말이 아프게 들릴 때가 있다. 팩폭이나 거침없는 충고를 소화시키기에는 버거울 때, 서러움과 원망이 먼저 올라와 나를 집어삼킬 때, 아직도 준비가 안되었음을 느낀다. 공감과 연민이 실제적인 도움은 안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자꾸만 현실 대신 위로에 기대고 싶어 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차마 가늠하기도 힘든 고난과 역경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앞이 안 보인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주인공에게 점자를 배우라는, 백지에 구멍을 뚫어서 시를 써보라는, 근사한 리트리버를 사귀는 법을 배우라는 말은 정말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까. 별 거 아니라는 듯한 태도에 함께 훅 털고 일어날 수 있다면 함께 울고 아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까.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가 아마 그렇게 충고했을 것이라는 상상은 오히려 힘이 되었을까.


모든 어두움에는 밝음이 숨어있다는 것, 아무리 희망이 없어 보여도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은 찾을 수 있다는 것. 툭 던진 말의 ‘근사한 리트리버’라는 표현이 이를 형상화하는 것은 아닐까. 점점 예민해져 가는 나에게 무신경해 보이는 말에도 따뜻한 위로가 숨어있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 본다. 어쩌면 그저 세상을 좀 더 가볍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염원이 담긴 것일지도 모른다. 선택 하나로 세상이 끝이 나는 것은 아님을 생각하며 좋게 해석하는 힘을 길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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