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받아들이기

목적이 이끄는 삶 Day 29

by 제쏘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 17:4)


- 우리는 무엇인가에 기여하기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다.


- 많은 베스트셀러들은 우리가 인생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살게 하시는 이유가 아니다. 이 땅에 지금보다 무엇을 더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그저 축내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네 번째 목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음 받았다


-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을 섬길 때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골 3:23-24, 마 25:34-45, 엡 6:7),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도 진실이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우리는 특별한 과제를 안고 이 땅에 보내졌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원받았다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이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일'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이 말은 섬김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섬김을 위해 구원받았다는 뜻이다. 하나님나라에서는 우리만의 위치, 목적, 역할, 기능이 있고 이것을 감당할 때 우리의 삶은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된다.


- "우리를 구하시려고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셨다. 성경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고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죄책감, 두려움, 의무감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한 깊은 감사와 기쁨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다.


- 사도 요한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우리가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임을 보여준다고 가르쳐준다. ... 만약 내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싶은 마음도 없으며, 오직 내 일에만 신경을 쓴다면 정말 예수님이 내 삶 속에 계씨는 것인가 반문해보아야만 한다. 구원받은 자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고침을 받은 것이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서 복을 받은 것이다. 그저 빈둥거리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구원받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부름 받았다


- 구원을 위한 부르심에는 섬김을 위한 부르심이 포함된다. 직업과 직종에 상관없이 우리는 풀타임 크리스천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섬기지 않는 크리스천'이란 말은 이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다"(딤후 1:9, TEV).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 예수님은 영적으로 성숙한다는 것이 성숙을 위한 성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성숙이란 바로 사역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베풀기 위해 성장한다. 그러므로 계속 배우는 것으로만 끝나면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며, 믿는다고 주장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표현되지 않는 느낌은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할 뿐이다. 섬김 없는 연구는 영적인 침체로 이끌 뿐이다. 예전부터 잘 알려진 갈릴리 호수와 사해의 비교는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갈릴리 호수는 물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내보내기도 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풍부한 장소로 남아 있지만, 사해는 밖으로 물을 내보내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기 때문에 아무 생물도 살지 못하는 죽은 호수가 되었다.


- 예수님을 따르는 성숙한 사람은 "나의 필요를 누가 채워줄까"라는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고 "내가 누구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까?"라고 묻기 시작한다. 당신은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는가?


영생을 준비하기


- "저는 너무 바쁜 인생을 살았어요." "제겐 제 인생의 목표가 있었어요." "일하느라, 즐기느라, 은퇴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이 모든 변명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그것은 틀린 답이다. 내가 너를 창고하였고, 구원하였고, 불렀으며, 섬김의 삶을 살라고 명령했는데 어떤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냐?" 성경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 2:8). 또한 그것은 크리스천에게는 영원한 상급을 잃어버릴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울 때만이 비로소 풍성한 삶을 누린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참고 - 마 10:39, 16:25, 눅 9:24, 17:33). 이 진리는 너무나 중요해서 복음서에서 다섯 번이나 거듭 언급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섬기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삶은 사역을 하도록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타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배우기 원하신다.


섬김과 의미


- 우리는 우리의 삶을 무엇인가를 위해 내놓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될 것인가? 직장? 스포츠? 취미? 명성? 부? 그 어떤 것도 영원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섬김은 진정한 의미로 나아가는 통로다. 사역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기 원하신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삶을 베풀며 사느냐이다. 얼마나 오래(how long)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how) 사느냐이다.


- 아브라함은 노인이었고, 야곱은 불안한 상황에 있었으며, 레아는 예쁘지 않았고, 요셉은 매도되었으며, 모세는 말더듬이였고, 기드온은 가난하였으며, 삼손은 의존적이었고, 라합은 부도덕했으며, 다윗은 간음했을 뿐 아니라 온갖 가정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엘리야는 자살을 생각했었고, 요나는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었으며, 나오미는 과부였고, 세례 요한은 괴팍한 행동의 소유자였으며, 베드로는 즉흥적이고 성격이 급한 불같았으며, 마르다는 늘 걱정이 많았고, 사마리아 여인은 여러 차례 결혼 생활에 실패했으며, 삭개오는 사회에서 따돌림당하였고, 도마는 의심이 많았으며, 바울은 건강의 문제가 있었고, 디모데는 마음이 연약했다.


- 그들 모두 다 여러 가지 실패와 약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하나님의 사역에 쓰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더 이상 핑계 대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들어 쓰실 것이다.


생각할 점: 섬김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외울 말씀: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는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_릭 워렌, 목적이 이끄는 삶 Day 29




Q.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경우에는 신앙과 삶이 분리되는 것이, 결국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게 한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배교를 결심한 건 아니었다. 삶의 풍요를 위해 길드에 가입하고, 결국에는 타협하며 행음하다가 결국에는 삶도 신앙도 전부 무너져버린 것처럼, 삶에서의 작은 타협들을 향한 유혹이 나에게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나의 정체성을 삼으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타협이 일어나게 된다. 내가 다니는 회사, 내가 가진 재물, 나의 사회적 지위, 사랑받고 인정받으려는 마음 등이 주님의 자녀라는 나의 정체성보다 앞서게 되면 신앙과 삶이 통합되지 않고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소음이 있다. '사업을 할 때는 정직하기만 해서는 안돼. 과시도 하고 부풀릴 줄도 알아야해.', '회사에서의 정치도 능력이야.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어.' 이런 소음들에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정말 그런가 하고 미혹되고 세뇌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삶의 중심이 확고하지 않고, 주님보다 두려워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보다 세상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그것으로 나의 정체성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금으로 되어 있는 쇠사슬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은 사슬이며, 내가 노예라는 표식이다. 세상의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진리 되신 하나님께 내 모든 짐과 사슬을 벗어놓고, 주님의 가벼운 멍에를 지며 주님을 따를것인가?


우리가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고 결코 타협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그 외의 것들에 대해 염려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 해 주신다. 그런 주님을 믿고 내가 의와 정직함으로 나아가기 원한다. 내게 정말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늘 기억하며, 하나님나라의 원리로 타협없이 살아가기로 결단한다. 그리고 그러한 내 삶의 결과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섬김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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