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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Mar 11. 2022

광장시장에서

 세탁소에 맡긴 옷이 찢겨서 왔다. 소매 부분이라 수선도 쉽지 않았는데,

 

 “광장 시장에 가면 해결되지 않을까?”


라는 남편의 말에 약속을 잡아보았다.

 

 전에도 시계를 고치거나 냉면을 먹으러 간 적이 있지만, 그곳에 갔던 가장 큰 이유는 작은 임대 아파트를 갖게 돼서다. 이미 작년에 2년이 지나 세입자와 재계약을 맺었고, 이런 과정을 배우고 있다. 세입자는 광장시장에서 닭강정 가게를 하고 계신단다. 계약을 맺을 때와는 달리 코로나 19로 가게 경영이 힘들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라, 광장시장에 오면 상인들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다.

 

 광장시장 안에는 1970년대 분위기가 있다. 솔직히 70년대는 어려서 잘 모르지만, 지금 여기에 오는 사람들이 그때 젊은 시절을 보낸 어르신들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대부분이 7~80대다. 남편과 나는 전에 이곳을 돌아다니다, 엄마 천연 모시옷과 삼베를 사서 이불을 만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천 가게에서 천을 사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이 거래하는 곳에 맡겨 1주일 정도 후에 집으로 택배를 받는 것과 재봉틀 아주머니께 즉석에서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가격은 비슷하지만, 양이 적으면 재봉틀 아주머니께 맡기는 것이 편리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재봉틀 아주머니를 찾아가 보았다. 전에 양복 맞춘 가게 근처다. 조그만 가게들이 밀집돼 있어, 공기는 안 좋지만, 신기한 가게들이 많아, 구경하며 갈 수 있다. 재봉틀 아줌마들이 있는 골목에 다다르자, 남편은 미리 알아 두었던 가게 이름을 찾으려 했다.

 

 “그냥 여기서 하자!”

 

 바로 앞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께 옷을 맡기기로 했다. 동네에서 세 군데 수선을 알아봤지만, 패딩은 어렵단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없고, 그냥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포기하려 했다. 아주머니는,


 “그냥 할 수는 없고, 저기 ○○ 근처에 가면 수놓아주시는 분 있어요. 거기서 수놓으시면 마무리는 해 드릴게요. 여기는 차라리 수놓는 것이 좋아요.”  

 

 그래서 수놓는 가게를 찾아갔다. 건물 안에 미로처럼 생긴 길을 따라 묻고 물어 가게 문을 드르륵 열어보니, 이미 다른 할머니 손님이 옷을 맡기고 나오려 했기에 소문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은,

 

 “어떻게 오셨나요?”

 

 “네, 옷이······.”

 

 “불에 탔나요?”

 

 “아니요. 패딩 소매가 찢어졌어요.”

 

이제야 패딩을 맡길 수 있나 싶었는데,

 

 “오호! 이런 것은 그냥 만들어진 수를 박는 것이 좋아요. 소매 부분이 까다롭거든요. 이 건물 1층에 가시면 수놓은 조각을 팔아요. 그것을 재봉틀 아주머니께 맡기면 되겠네요.”

 

 “네!”

 

 불에 탔냐고 물어본 것은 할머니들이 옷을 불에 태우면 이런 곳에 오는구나 싶고, 단골이 많다는 것은 아직도 이런 것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인데, 물건을 아끼는 부모님 세대의 비밀을 들춰 본 것 같았다. 고쳐서 입고 싶은 옷도 있으실 테니까.

 

 결국 수놓은 조각을 사서 재봉틀 아주머니께 갖다 드렸더니, 금방 드르륵 박아 주셨다. 오후 4시였는데,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라며 퇴근을 서두르시는지, 옆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주위를 보니, 하나둘씩 문을 닫고 계신다. 마침 시간을 잘 맞추었나 보다.

 

 오는 길에 시계에 약을 넣으려 시계 가게에도 들렀다. 엄마의 R 시계인데, 잘 못 사서 가짜라고 했다. 그런 시계가 멈춰 이제 고물이나 마찬가지지만, 저번에 우리 집에 올 때 주셔서 내 것이 되었다. 몇 년간 한 번도 시계에 밥을 준 적이 없으니, 그냥 가짜라도 내가 고쳐서 차기로 했다. 그래도 이번에도 혹시 몰라 가짜라고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보았다. 시계 가게 할아버지는 60년 베테랑에, 텔레비전에 나올 정도니까. 그런데 아들이 하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다시 할아버지가 하신다. 아들에게 물려준 것으로 알았는데, 빼앗긴 것이었고, 지금은 다시 되찾았다. 지금은 재개발로 새 건물로 이사 오면서, 할아버지와 아들의 가게가 분리되었단다. 그 할아버지는 나에게 놀라운 얘기를 하셨다.


 “이 시계는 진짜입니다. 다른 가게에 가서 물어보셔도 돼요. 시계 약은 20만 원입니다.”

 

 요즘 시계를 차지도 않는데 20만 원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냥 맡기기로 했다. 코로나와 오미크론 시대에 목숨 걸고 불확실한 것을 지키려는 것이라, 남편과 약속을 잡으려면 시간이 걸릴지 몰라 다음엔 혼자서 오기로 했다. 그리고 찾으러 오는 날, 아저씨 말대로 근처 다른 감정해 주는 가게에 가서 물어보니,

 

 “진짜 맞습니다. 저한테 팔면 380만 원 정도 드리죠.”


라는 것이 아닌가. 60년 베테랑 할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광장시장에서 알게 된 인연과 자녀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는 우리 부모님 세대 어르신들의 지혜를 알게 되어 마음이 포근하다. 불확실한 시대에도 진짜가 있다는 것을, 광장 시장은 말해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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