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청소해 드릴게요.”
오후 3시경에 귀여운 학생들이 찾아왔다. 청소해 준다는 자그마한 몸과 고사리 같은 손을 보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리를 비키자 ‘쓱싹쓱싹’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청소해 준다. 칠판도 깨끗하게 지우고, 분필도 정리하더니, 쏙닥거리며 사라졌다. 청소 당번으로 5명으로 정해져 있지만, 착한 아이한테 다 맡기고 가 버리면 혼내주기도 하고, 같이 하기도 했다. 걸레질이 끝나고 바닥을 말리고 있는데 이제 막 들어온 중1 아이가 일본어 초급 방과 후 교실에 등록했다며 들어왔다. 그런데 실내화를 손에 들고 양말만 신고 사뿐사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너 왜 실내화를 들고 오니?”
“교실 청소했는데 제 실내화가 더러워서요.”
멀리 있는 동네에서 온다는 Y는 이렇게 토끼같이 귀여운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말도 많고 적극적이고 솔직하다. 그런데 이런 점이 다른 학생들에게 불편을 준 것일까. 어릴 때 영국에서 살아서 한국어 표현이 조금 달라서일까. 하지만 대부분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는 눈에 안 띄게 행동한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오래 살았다던 친구도 그랬다. 이 학교가 좋아서 멀리서 일부러 오는 것 같지만,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적당히 내숭도 필요하고, 주위에 맞추며 살아야 하는 것을 알았는지 말 수가 줄어든 Y. 언젠가 국어과 모임에서 남자 선생님들끼리 Y가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살짝 들렸다. 글을 잘 써 교내 문예지에 글이 실렸다는데, 이상하게 여자 선생님들은 반응을 안 하신다.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선생님들에게 화제가 될 만큼 인상적인 아이도 있었다.
수업 시간에 이런 아이도 있었다. 판서를 하고 있는데 소리가 들려 뒤를 보니, G가 쪽지 편지를 읽고 있는 것이 보였다. G의 자리로 가니,
“선생님! 안 돼요. 이거 비밀이에요.”
라 말하더니 쪽지를 그대로 창문으로 던져 버린다. 3층 교실에서 내려다보니, 바로 아래 나무 꼭대기에 살포시 떨어졌다. G와 그 친구를 단단히 벌주고, 수업은 계속했지만, 나무 위에 떨어진 쪽지 내용이 궁금해서 퇴근길에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가 보았다.
‘나무를 흔들어 볼까?’
나무 아래에서 한참 생각하고 있는데 수위 아저씨가 오셨고, 감 따는 봉으로 쪽지를 떨어뜨려 주셨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처럼 척척 알아서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대로 나는 쪽지를 펴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 봐도 별 내용이 아니다. G가 말한 대로 실연당한 여자의 슬픔에 대한 글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해 슬픔의 묘사가 어른스럽다. 이런 내용을 낄낄대며 읽다니, 내가 호기심이 생길 만하지만, 궁금증이 풀렸으니 G에게도 모른 척할 수 있겠다. 나에게도 이런 우스운 부분이 있지만, 학생들 앞에서는 과학 선생님처럼 초연해져야 하니까. 학생들이든 자기 자녀든 감정 표현은 적당히 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좋았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늘 마음이 들켰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교원평가와 동료평가, 전교생의 서술형 평가도 받았다. 학생들은 일본 드라마나 책, 만화 등에 흥미를 보였고, 대학로에서 일본인을 대할 기회가 있으면 일본어를 사용해 보았다고 한다. 이름의 한자를 일본식으로 알려 달라는 것은 의외였지만, 한일문제에 고민하는 점은 일본어 교사로서 어려운 부분이었다. 역사 시간에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우기 때문에 일본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아픈 과거는 일본어를 계속 가르쳐야 할지 교사로서도 고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일본어는 국제화나 세계화의 넓은 눈을 가지라는 의도였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렸고, 마지막은 그런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해마다 다른 방법으로 우수 학생에게 '아카루 히메'의 영광을 주는 것이다. '아카루 히메’는 신라 시대 때, 신라왕의 며느리로 시녀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고, 남편도 뒤따라가 고대 시대의 화려함을 전했다는 설화의 인물이다. 일본서기 日本書紀에도 나오는데, 오사카 왓소 축제에서 매년 재현되기도 한단다. ‘큰별쌤 최태성 한국사 수업’에서도 백제가 멸망할 때 일본에서 왕자들이 와서 도와줬다는 내용이 있기에, 고대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왕자들이나, ‘아카루 히메’처럼 한국을 널리 알리는 여신 女神을 기억하는 일본어로 완성했다. 한 반에 한 명에만 있는 여신의 자리라 평가는 좀 까다로웠지만, 이런 수업을 반복했고, S 대 부설 여자 중학교에서 있었던 첫해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