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산책하다, 꽃들이 흔들리는 아름다운 풍경에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서 있었다. 비가 올지 모르는 5월의 싱그러움에 초록이 ‘물광(水光)’으로 온 세상을 덮어버릴 찰나였다.
피천득 작가님의,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는 표현이 오늘이다. 비가 오기 전, 수분을 머금은 꽃들이 갓 세수한 뽀얀 피부의 얼굴 같았기에.
그 꽃들 이름은 ‘마가렛’이었다. 자세히 다가가니, 부는 바람 때문이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꽃들도 저마다의 모양으로 움직임을 갖고 있고, 같은 바람에도 꽃잎만 살랑거리는 꽃이 있는가 하면 온몸으로 춤을 추는 꽃이 있었다. 나는 한동안 꽃들과 바람이 나누는 대화 속에 있는 듯했다. 우리는 바람이 멈출 때까지 함께했다.
어제 그동안 바빠서 연락을 못 했던 사촌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이모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는데, 오빠에게 속상한 일이 있었단다. 어린 시절, 충청도 이모네 집에서의 착한 오빠가, 지금은 서울 강남지역의 공무원이다. 그런 오빠의 고민은 자식의 교육이었다. 집 근처에 좋은 학원이 많았지만, 맞벌이라 잘 돌보지 못했는지 생각보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단다. 알아서 할 줄 알았는데,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오빠의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야구를 시켜 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오빠는 자식 교육을 위해 서울 교육 중심 동네에 살고 있는데, 정작 야구라는 말에 허무했을 것이다. 나도 강남지역에 대한 현실을 알고 있기에, 굳이 말하지 않고 듣기만 했고, 위로해 줬다.
야구라는 말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본격적인 야구선수로 활약하는 친구 O의 아들이 생각났고,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O는 덤덤한 목소리로, 특기생으로 대학은 들어갔지만, 야구는 접었단다. 그동안 고생도 많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손목 부상으로 더 이상 야구는 어려워, 지금은 체육 교사의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O는 아들이 야구를 하며 너무 힘들어했기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도 그 길을 계속 가기란 쉽지 않구나, 이런 생각에 사촌 오빠의 일도 떠올라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아들에게는 가슴이 끌리는 일을 하라고 전해주고 싶다. 친구 O의 아들처럼 자기가 정말 좋아했던 야구를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것은 야구를 정말 포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정한 승자일 수 있다. 사촌 오빠에게는, 지금부터라도 대화로 아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아들이 지금 그렇게 말하는 것은 현재 아버지의 지지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마음의 외침인 것 같다고 했다. 오빠는 내가 아이들 마음을 잘 안다고 했지만, 나도 아이들을 통해 배운 것뿐이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 그럴 땐 상담해 달라고 전했다.
그러니, 흔들리는 꽃들의 대화는 바람이 멈추면 곧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