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은 서울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한 곳이다. 나는 이곳 춘천에 할머님 댁이 있다.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춘천은 낭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숲과 물이 가깝고, 비가 오면 뿌연 물안개에 덮인 은은한 풍경이 멋스럽다. 한국인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슬픈 사랑의 추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차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그런 사랑으로 몰아넣었고, 나에게는 없는 것조차 있을 법하게 해 준다.
춘천을 ‘봄내’라고도 하는데, 춘의 春 봄 춘과 천의 川 내 천이, ‘춘천’의 발음보다는 ‘봄내’가 훨씬 정겹고 봄다운 느낌이 나는지, 춘천 사람들은 이 표현을 즐겨 쓰는 것 같았다. 춘천에는 ‘강대’라고 불리는 강원대학교가 있다. 그곳에 일이 있어 잠깐 들렀다가 여기서도 ‘봄내’라는 표현의 동아리를 발견하곤 고개가 끄덕여진다.
춘천은 닭갈비와 막국수가 유명하지만, 춘천 할머니 댁에서 먹는 음식은 여느 고장의 음식과 다르지 않고, 집도 아파트라 풋풋하고 소박한 환상을 깼다. 오히려 더 도시적이다. 춘천이라는 도시가 주는 이미지와 할머니가 주는 정성의 온도가 빠지지는 않았지만, 뭔가가 다르다. 그것은 선입견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춘천 할머님 댁은 서울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았고, 방 안에 가득 찬 햇살을 보곤 감탄했다. 코로나19로 자연의 혜택을 얻어 서울에서도 전보다 맑고 청명한 하늘을 보는데, 여기 춘천도 하늘이 맑고 햇살에 무게가 있어 보였다. 습기가 많아서인지 햇살에조차 물방울이 느껴진다. 이것은 열대지방의 습기와는 다른 것으로, 사방이 건조함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있는 촉촉함이라 존재감이 있다. 아마 한국에만 있는 기후의 특혜를 받은 햇살일 것이다. 사대부의 안방마님과도 같은.
‘춘천 할머님 댁’에 오면 가끔 산책하곤 한다. 춘천에 관광하러 오는 사람이 놓치기 쉬운 뭔가 소중한 보물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 그러다 아파트 뒷마당에서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개방
이라고 쓰인 표지 뒤로 산으로 연결된 산책로가 있었다. 뒷동산이라 해야 할까. 그때 누군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 여행을 많이 해 본 친구에게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집 근처 뒷동산’이란다. 누가 봐도 평범한 뒷동산이지만 여행하며 깨달았단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뒷동산만 한 곳은 없다고. 그 친구는 뒷동산의 소중함을 그렇게 알게 되었구나, 싶었다.
그래서일까, 뒷동산만 보면 나에게도 뭔가를 가져다줄 것 같은 기쁨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눈앞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언덕 위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춘천의 마을 풍경이 예뻤다. 내가 다시 태어나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도시로 갔다 고향을 찾아온 여인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울컥하고 정겨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언덕 위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어 들어가 보니, 먼 곳에 큰 건물이 보였다.
‘아파트 뒷동산과 연결된 이 건물은 나에게 선물이 아닐까?’
숲 속을 한참 걸으니 건물과 나무 벤치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건물도 뒤편이라 총총걸음으로 앞으로 가 보니, ‘춘천시립 청소년 도서관’이라는 간판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아파트와 도서관이 연결돼 있네!’
신기했다. 도서관이 있다니.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곧 도서관으로 들어가 책도 보고, 몇 권은 빌려왔다. 어디에든 있는 도서관이지만, 춘천에 있다는 것과 그것도 젊은 느낌의 ‘청소년’이기에 마음까지도 파릇해졌다.
‘뒷동산의 기적’은 춘천 할머님 댁에서 찾아왔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마음의 양식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어디에나 있는 것을 굳이 춘천에 와서야 알게 된 것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나서야 집 근처 뒷동산의 소중함을 알게 된 옛 친구의 깨달음과 같다. 그래서 춘천에 오면 할머님 댁에 꼭 가보고 싶어 진다. 가끔은 먼 거리를 가깝게 가 보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