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불안의 차이
아이가 태어나면 한 해 동안 한두 달 간격으로 계속 예방접종을 한다. BCG와 B형 간염을 시작으로 백일해, 폴리오 등, 그것도 1차, 2차, 3차, 4차... 어떤 건 6차까지 맞아야 할 것도 있다. 참 피곤할 정도로 많다. 시기를 안 놓치고 제때 맞추는 것도 일이다. 접종할 때마다 접종열을 걱정해야 하는 건 보너스.
그래도 예방접종의 꽃은 돌접종이 아닐까. 무려 6개의 접종을 해야 한다. 돌접종 이후에는 접종 간격이 많이 늘어나는데,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듯 수두, 일본뇌염, 뇌수막염, 폐구균... 다 기억도 안 난다.
막내 별이에게도 돌접종 시기가 왔다. 일주일 간격으로 3개씩 두 번을 맞기로 했다. 첫 주는 비교적 쉽게 넘어갔다. 별이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이미 주삿바늘은 빠르게 지나갔고, 상황을 파악한 별이가 한바탕 울어 젖히려 했으나, 얼른 안고 달래 버린 아빠 탓에 울 타이밍을 놓쳤다.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의사선생님을 마주했다. 약 3초간 가만히 선생님을 응시하던 별이는 순간 얼굴이 일그러지며 마구 울기 시작한다. 의사선생님은 그런 별이가 안 됐다는 듯이 함께 얼굴을 찌푸리며 웃는다.
"어떡해. 벌써 알아버렸어. 천재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구나?"
난 아이의 정신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아이가 알아듣든 말든 아무 말이나 끊임없이 던져본다.
"우리 별이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어? 저건 뭐지? 저기 예쁜 뽀로로 친구가 있네? 오! 여기 봐. 선생님이 몸에 좋은 거 놔주신대. 팔에다 구멍 몇 개만 그냥 뽕뽕뽕 뚫는 거야."
듣다 못한 의사선생님이 '빵' 터졌다.
"저 아버님, 그게 더 무서운데요."
혹시나 의사선생님이 웃다가 손을 떨어 주사를 잘못 놓을까 봐 잠시 입을 닫았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주사 세 방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별이를 안고 일어나자 진료실이 잠잠해진다. 힘을 다해 울던 아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는다. 이 작은 아이도 상황이 끝났음을 금세 파악한다.
'두려움'과 '불안'.
비슷한 듯 다른 두 단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나를 위협하는 대상이 내 눈앞에 보이느냐의 여부다. 예를 들면 이렇다.
주삿바늘이 내 눈앞에 있다. 그 바늘을 찌를 의사선생님이 내 눈앞에 다가온다. 지난주 내 팔에 불쾌한 자극을 준 저 뾰족한 물체의 기억이 떠오른다. 두렵다.
다음 주에도 또 맞으려나. 다음 주가 아니라 당장 내일 맞으면 어쩌지? 그때는 3개가 아니라 10개를 맞는 거 아냐? 불안하다.
눈앞의 주삿바늘을 보며 힘차게 우는 이 작은 아이에게서 '두려움'의 존재가 확실히 느껴진다. 그러나 위험요소가 제거되었을 때 바로 웃는 모습을 보면, 저런 허무맹랑한 '불안' 따위가 느껴지진 않는다.
누구나 살다 보면 '두려움'이 종종 찾아온다. 적당한 두려움은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론 겸손하게도 한다. 어떤 도전 앞에서 극복해야 할 두려움도 있다. 그런 두려움은 우릴 성장하게 한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 삶의 '불안요소들'은 어디서부터 이렇게 많이 생성된 걸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심지어 일어날 확률도 매우 낮은, 그런 불필요한 걱정들.
태어난 지 1년 된 이 작은 생명체로부터 불안을 이기는 '단순함'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