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위에서
오늘도 간당간당.
느릿느릿 먹으면서도 하나라도 더 먹고 가겠다는 둘째 하느릿, 아니, 하늘이 때문에 1학년 언니의 등교시간은 늘 위태롭다.
양쪽으로 아이들의 손을 바쁘게 끄는 아빠의 맘과는 달리, 조잘조잘 여유롭게 자기 얘기를 하느라 바쁜 아이들. 걸어가는 5-6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은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다.
"아빠, 하느리 유치원에 재밌는 책이 있어."
"아빠, 우리 학교에 체육관 있는 거 알지?"
양쪽에서 각자 자기 얘기를 하면, 오른쪽 귀로 들어온 이야기와 왼쪽 귀로 들어온 이야기가 부딪혀 두뇌회로에 혼란이 온다. 둘 중 하나도 제대로 입력이 안 된다. 이쪽저쪽 고개를 돌려가며 "아, 그래? 진짜?"라는 영혼 없는 리액션 타이밍만 찾을 뿐.
그러다 보면, 결국 좀 더 흥미로운 한쪽 이야기에 끌리게 된다. 오늘은 하늘이다.
"유치원에 '으랏차차 흙'이라는 책이 있거든?"
"아, 그래? 제목부터 흥미롭네?"
"응, 거기에 당근도 있고, 나무도 있고, 열매도 있어."
"아, 그래서 흙이 '으랏차차!' 하고 당근이랑 나무랑 다 들어올리는 거구나?"
잘 듣고 있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오버' 한 스푼 추가된 적극적인 리액션을 선보였으나, 돌아온 건 5살짜리의 무덤덤한 대답뿐이다.
"아니. 그냥 깔아주는 거야."
그러네.
힘으로 '으랏차차' 다 들어올리는 줄 알았는데, 흙은 그저 묵묵히 깔아주고 있었구나.
그런 흙도 처음엔 힘세다고 자랑하던 '바위'였겠지? 모진 세월을 지나 깎이고 깎여 지금의 흙이 되었겠지. 그 시간들을 통해 더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겸손'을 배웠을 거야.
그런데 말야, 그 밑바닥에 깔린 보잘것없는 흙더미가 커다란 나무를 지탱해 주며 영양분을 공급하고, 열매 맺게 하는 거 알아? 다양한 생명을 품고, 아름다움을 피워내고 있지. 책은 안 봤지만, 흙이 가진 그 '생명력'을 생각하면 '으랏차차 흙'이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네.
너희도 생명을 살리는 그런 흙처럼 살았으면.
"아빠, 우리 반에 나보다 더 늦게 오는 친구도 있어."
이제야 빛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보다 더 빨리 오는 친구들이 훨씬 많잖아, 그치?"
"응!"
"그럼 넌 너보다 더 늦게 오는 친구가 없을 때까지 늦게 갈 거야?"
"응!"
녀석. 아빠의 열 올리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빛이는 '응!'이라는 한 글자로 내게 커다란 불덩이를 안겨주며 그렇게 교문을 통과한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 현관 앞에서 안 들어가고 멈춰 선다. 그리고는 저 멀리 보이는 친구를 부르며 기다리고 있다.
바닥을 깔아주는 겸손한 흙처럼, 교실에 혼자서 늦게 들어오는 친구가 민망해할까 봐 배려하는 우리 딸, 참 자랑스럽다.
'아, 속 터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