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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브리나Sabrina Oct 07. 2023

결혼하다, 인도에서 - 2

태계일주 뺨치는, 다채로운 나의 인도 결혼식 이야기

인도 신부의 결혼식 전통 의상, 렝가 (Bridal Lehenga).


4.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중 드레스.


 인도의 신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신부 의상인 하얀 색깔의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고, 렝가(Lehenga or Bridal Lehenga)라고 불리는 옷을 입는다. 구글에서 'Lehenga' 혹은 '렝가 드레스'라고 검색해 보면 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나 역시 생전 처음 들어보고 또 접해보는 옷이라 많은 정보를 구글 검색으로 얻었다. 색깔은 내가 입었던 붉은 계열의 레드, 핑크가 주를 이루며 보라, 파랑, 초록, 검정 등 그 옵션은 천차만별이다. 렝가는 보통 쓰리 피스(3-piece)로 이루어진 의상이며, 긴 스커트, 블라우스, 그리고 어깨나 머리에 두르는 두파타(Dupatta)라고 불리는 스카프로 구성된다. 렝가의 소재 역시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나, 대부분 두꺼운 벨벳이다. (이 더운 나라 인도에서 벨벳 의상이라니!) 따라서 꽤나 무겁고 뻣뻣한 의상이며, 물론 평상시에서는 입지 않는다. 아니, 입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장담컨대. 렝가는 인도 여자들이 각종 축제, 결혼식, 그리고 특별한 행사에 참석할 때 입는 옷이다. 렝가는 각종 실과 비즈, 장식들로 촘촘히 얽힌 자수 및 장식들로 수놓아져 있어 굉장히 아름답다. 사실 렝가의 아름다움에 적응하기까지에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는데, 평소 심플한 의상과 디자인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정도로 강렬한 색감과 디테일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할 정도로 화려한" 렝가 드레스는 밤에 이루어지는 인도의 결혼식 특성상 강한 조명을 많이 받게 되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조명 아래 반짝이며 빛나는 수천 개의 비즈 장식과 자수 디테일이 한층 더 신부를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보라색 계열의 렝가를 입어본 모습이다.



 사실 나는 결혼식 때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은 로망이 있었기에, 남편에게 하얀색 혹은 밝은 색 계열의 렝가를 입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았지만 힌두교에서 하얀 옷은 장례식 때나 입는 것이라 하여 곱게 포기했다. (이 로망은 나중에 캐나다 웨딩 세리머니에서 실현하였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내가 선택한 드레스는 진한 색깔의 로즈 핑크가 주를 이루는, 붉은 계열의 드레스였다. 남편은 북인도 출신이며 힌두교인인데, 자신의 고향에서는 신부가 붉은색 계열을 입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이와 같이 렝가 드레스의 색깔 선택은 자신의 출생 지역 및 문화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서인도 쪽에서는 초록색 계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하얀색 계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어두운 색 계열 등등. 덧붙이자면, 인도는 다민족-다종교 국가이다. 실제로 인도를 가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사원은 물론 힌두교의 그것이지만, 심심찮게 이슬람 양식의 모스크와 유럽 양식의 교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일신교와 다신교가 수없이 많은 갈등과 살육을 거듭했던 다른 지역의 역사와 비교하자면 사뭇 놀라울 따름이다.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와 민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인도다.






 결혼식 때나 한 번 입고 말 예정이었기 때문에 렝가는 구입하지 않고 대여, 즉 렌탈을 알아보았는데 이때 웨딩 플래너 업체의 도움이 컸다. 인터넷에도 수많은 대여 업체들이 있었으나 가격이 천차만별일뿐더러, 렝가를 입어보지 않은 외국인인 나에게는 직접 드레스를 시착해보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웨딩 플래너의 도움으로 가까운 곳의 대여 업체 몇 군데를 추렸으며, 그중 'Poshrobe'라는 곳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곳의 드레스 대여 가격 범위는 최저 한화 8만 원 ~ 최대 30 만 원 정도 선의 금액으로 대여가 가능했다. 보증금은 별도였고, 대여 기간은 3일이었다. 우리나라의 웨딩드레스 대여는 드레스 샵에서 직원들이 따라붙어 옷을 입혀주고, 예식장까지 드레스 헬퍼가 붙어 하루종일 드레스 정리를 해주고, 나중에 반납까지 해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정확한 정보의 댓글 환영) 인도는 조금 다르다. 


 샵에서 드레스를 고른 후 대여 금액과 보증금을 지불하고 나면, 예약한 날짜에 맞춰 신랑 신부가 직접 혹은 고용된 웨딩 플래너 직원들이 영수증을 들고 와서 옷을 찾아간 후, 예식이 끝난 후 반납하는 형식이다. 렝가를 입는 것은 신부의 여자 가족 및 친척이나 후술 할 MUA 혹은 결혼식 당일 신부 헬퍼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당시 인도의 무시무시한 교통 체증과 이에 동반하는 피로감에 지쳐있던 우리에게, 이러한 웨딩 플래너의 픽업 및 드롭 시스템은 굉장히 요긴하게 쓰였다. 우리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웬만한 인도의 중산층~상류층 사람들은 간단한 서비스를 자신의 집으로 주문 및 배달시키거나, 혹은 사람을 고용하여 그 일을 대신 맡긴다. 이발, 마사지, 건강검진, 빨래 및 다림질, 심지어 휴대폰 유심 카드를 구매하는 일마저도. 모든 서비스가 내 집의 거실 안까지 제공된다. 저렴한 가격은 덤이다.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집 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전화 혹은 앱으로 주문하여 해결할 수 있다. (다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인도의 숨 막히는 교통 체증 속에 시간을 주로 허비하는 사람은 외국인이거나, 무지하거나, 가난하거나 혹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로 생계로 꾸리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최종적으로 내가 고른 렝가 드레스. 옷의 디테일이 상당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신랑은 셔르와니(Sherwani)라고 불리는 타이트한 핏의 의상을 입는다. 실크 혹은 울 소재로 만들어진 이 의상은 긴소매와 높은 옷깃을 특징으로 하며, 신부 의상인 렝가와 마찬가지로 각종 비즈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화려하게 빛나는 옷이다. 또한 셔르와니와 비슷한 벨벳 등의 소재로 만들어진 터번, 즉 사파(Safa)를 머리에 쓰고 인도식 전통 신발인 주티(Juti)를 신는다. 사파는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아마존에서 주문하기로 하고, 셔르와니와 주티는 대여하기로 결정. 마침내 Poshrobe에서 신랑과 신부 예식 의상을 모두 확정하고, 각종 금액을 지불한 후 영수증을 챙기는 일로 드레스 투어는 끝이 났다. 이제 우리에게 또 하나 남은 일은 바로 신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것.







5. 메이크업


 신부가 직접 아침 일찍 메이크업 샵을 방문하며 메이크업을 받고 식장으로 이동하는 우리나라의 방식과는 달리, 인도에서는 대부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예식 당일 식장으로 출장을 와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아마도 무거운 렝가를 입고 예식 전 금식(Fasting)과 팔다리에 한 각종 헤나(인도에서는 Mehdi라고 부른다) 때문에 거동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신부를 위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이곳에서 MUA(Make Up Artist)로 줄여 부르며, MUA를 고르는 기준은 가격, 헤어 세팅 포함 유무, 식장과의 거리, 본식 전 원하는 메이크업 정도를 체크해 볼 수 있는 Makeup Trial, 그리고 예식 당일에 필수적인 Saree Draping을 제공하는 지의 여부 등이다. Draping이란 우리나라의 웨딩드레스 헬퍼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렝가 드레스와 두파타 스카프의 태를 잡아주고 정돈해 주는 일이다. 메이크업 역시 웨딩 플래너의 추천을 받아 여러 업체의 가격과 위치를 비교한 후, 그들의 홈페이지나 혹은 인스타그램을 참고하여 나와 어울릴 것 같은 MUA를 고르기로 했다.



https://www.instagram.com/makeupby_bhanureddy/?hl=en



 이쯤에서 나는 이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언급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을 듯하다. 그녀의 이름은 바누(Bhanu). 웨딩 플래너가 추천해 준 다양한 MUA들의 절반은 커다란 대형 메이크업 스튜디오 소속, 나머지 절반은 바누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1인 혹은 소규모 업체였다. 대형 메이크업 스튜디오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일 거라는 생각이 물론 들었으나, 전형적인 인도 여자의 이목구비와는 전혀 다른, 외국인인 나의 조건을 감안해 보면 내가 원하는 바를 좀 더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커스터마이즈 할 수 있는 1인 MUA가 소통 면에서도 더 원활할 것 같았다. 


 또한 그녀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며 느꼈던 '전형적인 인도 메이크업 스타일보다 간결한, 깔끔하고 매트한 메이크업'이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다른 MUA들의 메이크업 스타일은 역시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인도 여성들의 취향에 맞게, 굉장한 장식과 짙은 아이라인, 엄청난 길이의 인조 속눈썹, 번쩍거리는 펄 파우더가 돋보였다. 나의 취향과 정반대로 거리가 멀뿐더러 홑꺼풀을 가진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려야 어울릴 수가 없는 스타일. (차라리 내가 직접 한국식 메이크업을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인도식 신부 메이크업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한편 바누의 메이크업은 인도 여성의 화려함은 유지하면서도, 과하지 않고 깔끔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나는 남편과 함께 그녀의 집 겸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본식 전 Makeup Trial을 받았다. Makeup Trial은 실제 메이크업 과정의 70% 정도 만이 반영되며, 얼굴 전체가 아니라 오른쪽 혹은 왼쪽 반만 진행한다. 






 지금까지 방갈로르에서 본 인도 여성들 중 가장 세련되고 예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은 바누. 부디 이 사람의 메이크업 센스 역시 그녀의 스타일과 일치하길 바라며 다소 긴장되는 마음으로 메이크업을 받았다. 외국인 고객은 난생처음이라는 그녀에게, 혹시나 한국식 메이크업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냐고 물어보니 'a lot of layering'이라며 다양한 제품들을 활용하여 한 층, 두 층 꼼꼼하게 덧바르며 표현하는 메이크업 방식을 언급했다. 화려함을 많이 덜어내고 최대한 깔끔하게 표현해 달라는 나의 요구에 맞게 메이크업이 완성되었고, 결과는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처참했다. 


 전문가에게 메이크업을 받아본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아 아주 정확한 판단은 못 되겠지만, 사실 그녀의 메이크업 실력은 크게 흠잡을 데가 없었다. 즉, 이건 그녀의 탓이 아니다. 다만 홑꺼풀을 가진 한국 여자인 나의 이목구비에 맞지 않는 스타일이었을 뿐... 엄청나게 휘어진 갈매기 눈썹과, 마치 어디 가서 한 대 맞은 듯한, 경상도 사투리로 '눈탱이 밤탱이'가 된 듯한 내 모습이 거울 속에 비쳤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그녀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다시 설명했다. 당신의 메이크업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다만 한국인인 나에게 맞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도식 예복과 스타일에 맞추는 것이 맞지만, 인도식과 한국식 그 사이의 중간점 정도를 추구하고 싶다.라고 말이다. 또한,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유튜브에서 한국 여성이 렝가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받은 동영상을 찾아 공유해 주었다. 좀 더 내가 원하는 바를 자세히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바누의 프로페셔널함과 그녀의 지난 메이크업 컬렉션들을 보고 받았던 나의 감을 믿기로 했다. 



바누와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 중 일부.



 본식 당일 결혼식이 열리는 리조트로 출장을 온 바누. 그녀는 내가 보내준 유튜브 동영상을 여러 번 보며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까 많이 고민했다고 하며, 최대한 심플하고 미니멀한 메이크업을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녀는 내가 입을 렝가 드레스의 색깔을 확인해 보더니, 이와 어울리는 색조를 사용할 예정이라며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약 두 시간에 걸친 메이크업이 끝난 후, 메이크업 결과는 대만족. 그녀는 내가 요구했던 바를 정확히 반영한, 한국인인 나의 이목구비에 한층 잘 어울리는 깔끔함과 동시에 인도식 결혼식의 화려함도 잊지 않고 더한 메이크업을 완성했다. 헤어 세팅과 드레스 착용 및 Draping까지 도움을 준 그녀는 때마침 도착한 사진사들의 촬영 협조 요청에 사전에 약속했던 3시간을 훌쩍 넘긴 후, 마지막으로 우리의 행운을 빌어주며 자리를 떴다. 지금 다시 보아도 나는 이 메이크업이 정말 마음에 든다. 





 쓰다 보니 즐거웠던 에피소드들이 가득 떠올라 내용이 길어진 탓에, 스튜디오 및 웨딩 쥬얼리 관련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 화려한 인도 결혼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웨딩 쥬얼리이다. 목걸이, 귀걸이는 기본이고 이마 중앙에 장식하는 빈디(Bindi), 빈디와 함께 인도 기혼 여성의 상징 중 하나인 뱅글(Bangle)과 신부들이 예식 때 착용하는 팔찌의 한 종류인 추라(Chura). 나는 착용하지 않았지만 헤어라인을 따라 얼굴 전체를 장식하는 망 티카(Maang Tikka), 코 피어싱의 한 종류인 Nose Ring, 발목에 하는 Anklets, 허리에 두르는 Waistband 등 웨딩 쥬얼리는 드레스, 메이크업과 함께 결혼식의 꽃인 신부를 빛내주는, 인도 결혼식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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