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 감기약과 마당 끝의 밤

내 울음에 무너진 집, 어린 나의 죄책감


약 먹기 싫다고 울었을 뿐인 어느 밤이었다.


아픈 목이 불편했는지, 이유 없는 짜증이 난 건지 그 순간이 왜 그렇게 싫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하지만 울음은 내 몸에 내장된 비상벨이었고, 그날 밤 그 비상벨이 우리 가족을 폭발시켰다.




나는 방 한켠에서 이불을 덮고 울고 있었다.

엄마는 내 입에 약을 넣으려 애쓰고 있었고, 아빠는 마루에 앉아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이내 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고 아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다음 장면은 느리게, 그리고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빠의 손에 잡힌 엄마의 팔.

엄마는 마당으로 끌려나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

그리고 마당에서 들려오는 고함과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


나는 울음을 멈췄다.

정확히는 멈췄다기보다 숨이 멎었다는 표현이 더 맞는것 같다.


마음은 마당으로 뛰쳐나가서 부모님을 수백번 말렸지만, 어린 나는 귀를 틀어막고 이불속에 더 깊이 파묻힌 채 자책을 한다 ‘내가 약만 잘 먹었으면…’

‘내가 울지만 않았어도…’


그날 이후로 나는 감정을 꾹 참고, 분위기를 먼저 살피는 아이가 됐다.


누군가 언성을 높이면 내 심장은 그날 밤 마당 끝 문소리를 떠올렸다.


그 밤이 남긴 건 열이 아니었다.

한 아이의 무의식에 새겨진

‘모든 건 내 탓’이라는 죄책감이었다.




이 글을 쓰며 알게 된 점

-내 감기보다 가족의 균열이 더 깊었던 그날 밤.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대신 모든 책임을 내 탓으로 삼았던 어린 시절의 나.

-감정을 눌러 참고, 분위기를 먼저 살피는 아이로 자라던 계기.

-이 모든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