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 시간을 걷는 존재들

꿈과 현실 사이에 접혀 있던 시간 한 조각


여름방학을 코앞에 둔 어느 날, 같은 반 남자애들이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다 아기 손바닥만 한 거북이를 잡아왔다. 방학이 시작되면 잠깐 키우다 다시 방사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동물을 좋아하던 내가 자연스럽게 거북이의 새 보호자가 되었다.


깨끗한 냇물을 담은 작은 어항에 고운 모래를 깔고, 거북이가 올라와 숨 돌릴 수 있도록 손바닥만 한 바위도 마련했다. 별다른 사건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였지만, 나는 매일 그 아이를 들여다보며 마음속에 조용한 우정을 쌓아 올렸다.


그날 이후 거북이는 내 여름방학의 작은 시계가 되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2박 3일 수련회를 떠나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라 설렘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거북이를 두고 떠나는 일이 마음에 걸렸다.


수련회 둘째 날 밤, 꿈속에서 누군가가 내 거북이를 어항에서 들어 올려 어디론가로 툭— 떨구는 장면을 보았다. 손목이 살짝 비틀리며 낙하 동작을 만드는 그 순간의 감각이 너무나 생생했고, 눈을 뜨자마자 울고 싶었다. 그냥 꿈이겠거니 하면서도 묘한 께름칙함이 가시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항 속을 들여다보았다. 거북이는 사라져 있었다. 동생은 “모른다”고만했다. 작은 생명체를 잃어버렸다는 두려움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나는 눈물에 빠져 잠이 들었다.




이른 새벽, 새소리가 점점 밝아지던 방 안에서 서걱서걱, 필사적으로 무엇인가 비벼대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큰 벌레가 날갯짓하는 줄 알았지만 소리가 너무 반복적이고 절박해 이상한 예감이 들어 소리를 따라갔다.


책장과 벽 틈에 끼워 두었던 낡은 쇼핑백이 근원지였다. 망설임 끝에 쇼핑백을 기울였더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쓰던 리코더와 색연필 사이로 바짝 마른 거북이 등이 또르르 굴러 나왔다. 거북이는 쇼핑백 안에서 하루를 버텼고, 다행히도 다시 물에 담그자 천천히 숨을 쉬었다. 울음을 삼킨 채 동생을 다그치자, 내가 없는 사이 친구가 놀러 와 어항에서 거북이를 꺼내 장난 삼아 쇼핑백에 넣은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거북이를 품에 안고 나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어떻게 꿈속에서 그 장면을 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단순한 예지몽이라 부르기에는 느낌이 달랐다. 마치 내가 앞날을 미리 본 것이 아니라, 시간 어딘가로 접혀 들어가 그 순간에 잠깐 닿았던 것 같았다.




몇년 전 영화 〈컨택트〉를 통해 ‘헵타포드’라는 존재의 시간 개념을 알게 되면서 이 감각은 더 또렷해졌다.

*영화 원제 〈Arrival〉*


두 다리로 앞과 뒤를 나누며 걷는 인간은 시간을 선형으로 느끼지만, 일곱 다리로 어느 방향이든 동시에 닿는 헵타포드는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간은 펼쳐 놓은 그림 한 장처럼 이미 완성된 전체다. 돌아보면, 내가 수련회장에서 본 꿈과 집에서 겪은 현실은 그런 비선형의 시간 구조가 잠시 열리며 겹쳐진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작은 생명을 잃어버린 두려움, 다시 만났을 때의 안도감,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느낀 세상의 신비로움까지 한꺼번에 품게 되었다. 어린 마음이 겪은 상실과 회복이 시간에 대한 직관을 흔들었고, 세상은 그전보다 훨씬 넓고 낯설며 경이로운 곳으로 바뀌었다.




이 글을 쓰며 알게 된 점

소중한 존재를 돌보다 잃어버린 순간 느꼈던 두려움과 슬픔, 다시 만났을 때의 안도감, 그리고 그 경험이 남긴 신비로운 여운이 모여 내 안의 시간 감각을 바꿔 놓았다. 우리는 아직 타임머신을 타지 못해도, 때로는 꿈이나 직감을 통해 직선 밖의 시간을 슬며시 엿본다. 그 작은 틈은 어린 날의 나를 성장시켰고, 지금도 나를 또 다른 질문으로 이끈다.

혹시 당신도, 시간이라는 흐름을 잠시 벗어난 순간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