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방울, 설탕 두 스푼의 여름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은 꽤 넓었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마당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평상에 앉아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그들을 쫓아다니며 혼자 놀곤 했다.
어느 날 대청마루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웃으셨다. 그리고 손짓을 하셨다.
“이리 와 보이소.”
나는 생글거리며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나만 따로 부를 땐, 늘 뭔가 맛있는 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날도 기대에 부푼 눈으로 따라갔다.
할아버지는 오래되고 손때 가득한 자개문갑 한쪽을 열었다. 그 안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을 꺼낼 때의 동작처럼 조심스럽게, 종이에 싸인 곶감 하나를 꺼내어 나에게 내미셨다.
그 문갑 안에는 비누, 로션, 호랑이연고 같은 할아버지의 물건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인지, 곶감에서는 그것들이 묘하게 섞인 향들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곶감을 정말 맛있게, 아주 아껴 먹었다.
그건 내 입 안에서 퍼지는 단맛만으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나를 특별하게 여겨준 한 사람의 마음’으로 남아있다.
어릴 적 나는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탔다.
기진맥진한 얼굴로 매일 물먹은 솜처럼 늘어져 있던 내 모습이 안쓰러우셨는지, 할머니는 꼬부라진 허리를 펴고 시장까지 다녀오셨다.
무거운 수박 한 통을 들고서.
그 시절, 할머니는 이런 속설을 믿으셨다.
“더위 먹은 얼라한테는 수박에 얼음, 설탕, 소주 타묵이면 낫는다.”
지금 생각하면 어질어질하지만, 그 여름에 나는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화채를 누구보다 많이 먹었다.
쌩쌩하던 동생들과 달리, 잔병치레가 많던 나만을 위해 준비된 여름의 특식이었다.
그 사실을 지금 동생들이 알면 좀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그 무거운 수박을 들고 돌아오시던 할머니의 등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게 나에게는… 그 시절 가장 귀한 대접이었다.
그 사랑은 조금 투박했지만, 오래도록 애잔하게 남는다. 할아버지는 문갑을 열어 곶감을 꺼내주셨고,
할머니는 수박화채에 소주를 한 방울, 설탕을 두 스푼 가득 담아 내게 주셨다.
그건 당신들만의 사랑법이었다. 나는 여름이 다가오면 그 사랑의 방식이 자꾸 떠오른다.
지금도 여전히, 나를 감싸는 듯이.
이 글을 쓰며 알게 된 점
–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 그들은 말을 아꼈지만, 마음은 풍성하게 건넸다
– 어쩌면 지금의 내가 누군가를 아끼는 방식도, 거기서부터 왔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