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걸린 두 아이와 집콕 육아 5일째, 결국 고비를 넘기지 못한 나는 고함쟁이 엄마가 돼버렸다.
극강의 예민 포스를 자랑하시는 우리 첫째 공주님은 절대 약을 먹지 않는다. 아기 때부터 억지로 욱여넣으면 무조건 웩하고 토해버린다. 어찌나 몸부림을 치는지 남편과 함께 온몸을 잡고 겨우 먹이는데,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계속 소리 지르고 울면서 푸푸 하며 뱉어낸다.
그러면 다음날 콩콩이 놀이할 때 "콩콩아! 약 먹어야지! 약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야! 약 먹어야 낫지! 먹어!" 하면서 콩콩이를 다리로 고정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약을 먹인다. 네가 알긴 아네... 웃프다.
아는데도 안 되는 아이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비인격적으로 먹여야 하나 싶었다. 그래, 외국도 감기로 아프면 약은 안 먹는다는데.. 어느 순간 포기했다. 어차피 감기는 잘 먹고 잘 쉬면 낫는 거라고 합리화하면서.
문제는 열이 날 때다. 열이 나도 해열제를 먹지 않는다. 억지로 먹이면 다 토해낸다.
설탕에 타 먹여라, 아이스크림에 타 먹여라.. 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안된다. 기가 막히게 약의 맛을 찾아낸다.
작년에는 열이 펄펄 끓는데도 해열제를 먹지 못한 우리 아이는 무슨 수를 써도 열이 내려가지 않았다. 엉덩이로 넣는 해열제를 써보려 했지만 엄청난 몸부림에 그마저도 실패했고, 결국 어린이 병원에 4일간 입원했다.
링거를 꼽고 힘없이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많이 괴로웠다.
아픈데도 엄청난 몸부림을 치는.. 이렇게까지 고집스러운 아이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열이 나는데 입원할 때까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수액을 맞자 그날 바로 열이 다 내려가는 걸 보며 약만 먹었어도 병원 올 일은 없었을 거 같았다.
그때의 기억이 내게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아이가 아프면 온갖 신경이 예민해지고, 열이 나면 불안해진다. 이번에도 처음 감기에 걸린 둘째보다.. 기침하는 첫째에게 유독 마음이 많이 갔다.
목감기가 오면 무조건 열이 나는 우리 딸은 이번에도 열이 났다. 해열제를 먹여야 했다.
소파에 앉혀서 보고 싶다는 시크릿 쥬쥬도 틀어주고, 사탕과 젤리를 다 대령했다. 사탕 먹으면서 약 먹어도 되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기분 좋게 비위도 맞추고 어떻게든 약을 먹여보려고 했다.
그렇게 10분, 20분, 30분.. 조금만 이따가 먹는다는 우리 첫째는 결국 먹지 않는다.
즐거운 방법이 통하지 않자 엄하게도 해봤다. 붙잡아서 억지로 넣으려고도 해봤다. 이젠 힘이 세져서 이전처럼 잡기도 힘들다. 어떤 수도 안 통한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너무너무 화가 치솟았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지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돌아버릴 거 같았다.
엄청나게 꾹꾹 눌러가며 참았지만, 약을 입에 넣자 소리 지르면서 절대 먹지 않는 첫째를 보며 나도 고함을 질렀다.
"신행복!!!!!!!!!!!!!!!!!!!!!!!!!!!!!!!!!!!"
아이는 깜짝 놀랐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도 소리만은 지르고 싶지 않았는데..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던 남편이 나보고 가서 씻고 오라고 했다. 자기가 먹여보겠다고. 어떻게 먹이냐고 신경질을 내며 씻으러 갔다. 남편이 아이를 안아 들어서 괜찮다고 엄마가 너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고 위로하는 말이 들렸다. 아이는 계속 소리 없이 우는 거 같았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울지.. 왜 소리 없이 우는 거냐고........ 괜히 마음이 더 어려워졌다.
샤워를 하고 정신 차리고 안방에 들어가니 아이가 내 기분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그 모습이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행복아 미안해. 엄마가 너한테 소리 지른 거 진짜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는 네가 아프고 열이 나서 걱정돼. 혹시 약을 안 먹어서 더 아플까 봐 걱정되고 속상했어. 먹겠다 해서 계속 기다렸는데 안 먹으니까 엄마도 화가 났어. 엄마가 행복이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데 소리 지르면서 표현해서 정말 미안해."
그랬더니 나를 안아주면서 "괜찮아 엄마."라고 한다. 그래도 약은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절대 약 먹겠다는 소리는 안 한다.......
미온수를 묻힌 수건으로 닦아내고 시원하게 하고 있으니 열이 내려갔다.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떤 건 아닌가.. 또 미안해졌다.
그날 밤, 아이와 함께 지난주 도서관에서 빌려온 그림책을 읽었다.
고함쟁이 엄마
어찌 된 이유인지 이 엄마도 아이에게 고함을 지른다.
이 엄마라고 지르고 싶어서 질렀을까... 이날만은 엄마의 입장에서 이 그림책이 다르게 보였다.
세상에 자식에게 소리 지르고 싶은 엄마가 어디 있어.. 얼마나 참고 참고 또 참다가 결국 폭발했겠지.
엄마의 마음과 상관없이..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내지른 고함소리에 아이는 깜짝 놀란다. 깜짝 놀라 답 못해 온몸이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간다.
우리 아이는 이걸 보고 꺄르르 웃는다. 어딘가 공감받는 거 같았나?
내가 고함질렀을 때 깜짝 놀랐던 아이의 표정과 소리 없이 흐느끼던 모습이 떠올라 왠지 모르게 먹먹해졌다. 그래, 네가 이런 기분이었겠다.
아기 펭귄의 몸이 이곳저곳 흩어진다. 머리는 우주로, 몸은 바다로, 날개는 밀림으로, 부리는 산으로...
날아간 몸을 스스로 되찾고 싶었지만 이미 뿔뿔이 흩어져 버려 아무것도 볼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그 자리에 유일하게 있던 발만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지쳐버릴 때까지 달린다.
그래, 어떤 이유였든 엄마는 어른인데..
연약한 아이를 향해 감정을 담아 아이가 겁을 먹을 만큼 큰 소리를 질렀다면 그건 명백한 엄마 잘못이다.
아이는 스스로 이겨낼 힘이 없다. 그냥 어찌할지 몰라 눈치 보고 견디고 참을 뿐이다.
괜히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나도 이 5일간 몹시 지치고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니 아이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와닿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기 펭귄은 본다.
흩어졌던 아기 펭귄의 몸들을 다 한데 모아 꿰매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야, 미안해"
그림책을 읽으며 아이와 아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도 고함쟁이 엄마였네"
"맞아 행복이 놀랐어요"
"진짜 그랬을 거 같아"
"그래도 나는 펭귄처럼 안 날아갔어"
"ㅋㅋ그러네. 다행이야. 고마워 행복아. 이제 엄마가 아무리 화나도 소리 안 지를게. 행복이도 약 먹기 너무 힘들면.. 대신 밥 다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엄마랑 같이 기도하고 그러는 거야. 이건 할 수 있지?"
"네!!"
아이는 약속을 지켜주었고 금세 잠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밥도 한 그릇 뚝딱 잘 먹었다.
아이야 미안해..
마지막 엄마의 말이 마음에 맴돈다.
육아를 하면 왜 이렇게 미안한 일들이 많은지.. 머리로는 뭘 미안하기까지 하더라도 엄마 마음이 안 그렇다.
행복아 엄마도 잘하고 싶은데.. 진짜 잘하고 싶은데 참 어렵다.
그래도.. 실수했더라도 우리 아이의 마음을 다시 꿰매고 싸매 줄 수 있는 엄마가 될게.
결국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더라도 진정된 후 꼭 안아주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다시 아이 마음을 만져주는.. 완벽하진 못해도 이만하면 괜찮은 엄마이고 싶다.
그래도 고함은 지르지 말아야지.....
엄청난 반성을 하면서 그림책이 재밌다고 한 번 더 읽어달라고 가져온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림책 속표지에서처럼
오늘도 육아의 숱한 고비를 겨우겨우 넘어가고 있는 엄마가 된 나. 아이들을 사랑해서 버티고 있지만 사실은 지겹고 지치고 끝도 없다.. 그럼에도 다시는 돌아오지도 되풀이되지도 않을 오늘 하루일 테니까, 다시 힘을 내서 감사함으로 맞이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