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중순 어느 날 즈음, 그렇게 덜컥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호기롭게 접수했다. 단지 접수만 했을 뿐인데, 내 마음은 이미 풀코스 완주에 닿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프 마라톤을 이제 갓 정복한 상태였던지라 자신감은 뿜어져 나왔고, 이전과 같이 연습만 꾸준히 한다면 못 해낼 것도 없겠지 싶었다. (당시에는.)
이런 자신감을 등에 업고 훈련 일정을 계획했다. 이번 풀코스 마라톤 역시 지난번 하프 마라톤 대회와 마찬가지로 AI를 활용해 훈련 일정을 만들었다.(그가 제시한 대로 모두 이행할 순 없었다만, 훈련 일정은 꽤나 괜찮았다.)
그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하프 마라톤 경험이 있어, 5달 뒤에 풀코스 마라톤을 나가려고 하는데 훈련 계획 좀 짜줄래? 주에 2회 훈련이 가능할 것 같아.' 명령어를 입력하자, 인공지능이 제안하는 풀코스 마라톤 훈련 일정이 촤르르 공개됐다.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한 계획이었다.
점차 주행 거리를 늘여가는 방식의 훈련 프로그램. 1주에 2회 정도 이런 방식으로 5달 동안 훈련이 이어진다면 대회까지 시간은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훈련 일정을 출력해 냉장고 문에 붙여두는 것을 시작으로 39살 아저씨의 마라톤 풀코스 훈련의 첫 막이 올랐다.
혹시 여름철에 러닝을 해본 적 있는가. 고온다습한 날씨 덕분에 조금만 달리기를 해도 셔츠는 땀으로 흥건해진다. 러닝 후 헤어밴드를 꾹 짜면 매번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곤 했다.(땀을 유독 많이 흘리는 편이어서 개인적으로 여름의 계절을 가장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내게 여름철의 러닝은 부담스러운 환경이었다. 호흡도 불안정해 거친 호흡을 내뱉기 일쑤였다.
간과했다. 겨울의 마지막 그리고 러닝 하기 정말 좋은 봄 날씨에만 뛰어봤지, 여름철 러닝은 군대에서 알통 구보를 해본 이후 16년 만의 일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극기훈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한 여름날의 러닝 훈련을 차질 없이 해낸다면 다음 계절이 왔을 때 나는 한층 더 성장해 있으리라 생각하며 러닝 훈련에 집중했다.
1주에 2회 훈련 일정을 계획했다만, 솔직히 말해 매주 2회를 뛰기란 쉽지 않았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러닝을 하는 일은 잠이 많은 내겐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고, 퇴근 이후 육아 그리고 늦은 밤까지 글쓰기 한답시고 사부작 거리는 바람에 저녁 러닝도 쉽지 않아 주중에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핑계 맞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일주일에 한 번을 뛴다. 대신 뛸 때는 전심을 다해서 뛴다.' 그런데 일주일에 딱 한 번을 뛰는 것으로 풀코스 마라톤 완주가 가능한 일일까? 글쎼 가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부분은 개개인의 능력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니 쉽게 말하긴 힘들다. 하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한 여름철의 러닝은 강인한 체력을 요구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바람에 갈증도 심했고 내가 경험한 이전의 계절보다 훨씬 높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10킬로 러닝을 한다면, 내가 느낀 체감도는 14~15킬로의 거리를 뛴 느낌이었다.
참고로 나는 훈련 중 급수는 별도로 하지 않는다. 속에 부담이 될까 봐라는 이유 하나와 조금 더 강도 높은 훈련을 위해서라는 변명을 내놓고 싶다. 어쨌건 러닝 후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로 편의점에 들러 1+1으로 판매하는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는 게 주말의 일상이었다. (그 맛을 대체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다행인 건, 의도치 않게 일주일에 딱 한번 훈련을 진행한 탓에, 여름 러닝을 크게 두려워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시기를 극복한다면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한 걸음 더 다가설 것이라는 확신만 내게 있을 뿐이었다. 몸이 뇌를 속인 것일까. 나의 몸도 조금씩 한 여름의 러닝에 적응되어 가고 있었다.
인류는 빙하기, 사막 등의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며, 문명을 발전시켰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발전은 인간의 적응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인간은 위대하다. 환경에 맞추어 살아남는 것을 넘어 환경을 바꾸고 재창조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억 인류 중 하나인 나 또한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마라톤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