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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쳐 맞은 날

by 자향자

2025년 8월이 되자 온도와 습도가 한껏 치달았다. 뜨거운 여름날을 배경으로 뛰는 날이 잦다 보니 몸도 서서히 적응해 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8월의 중순을 넘어선 시점, 나는 최소 일주일 한 번은 여름 러닝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그럼 풀코스 마라톤 준비를 위해 나는 순항 중이었던 걸까? 그건 아니었다. 문제 하나가 있었다. '주행거리가 쉽게 늘지 않는다.'라는 점이었다. AI가 만들어준 러닝 계획대로라면 그 시기 즈음에는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러닝을 실시해야 했고 주행할 수 있는 거리도 25km 즈음은 도달했어야 했다.



하나 내 실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연습하는 게 나의 루틴이었으니, 내가 수용할 수 있는 거리가 당연지사 쉬이 늘리 없었다.



당시 나의 최대 주행거리는 18km였다. 내 최대치였다. 계획 상 완주해내야 할 거리보다 7km나 부족한 상태였다. 이를 보고 그럼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금 자만했다. '마음만 안 먹을 뿐이지, 진짜 속된 말로 각 잡고 달린다면 할 수 있다.'란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해댔다. (돌아보면 창피한 일이다.)



8월 말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러닝길에 나섰다. 그날의 목표는 당연지사 25km였다. 20km 이상의 거리를 여름 내 단 한 번도 뛰어본 적도 없었던 내가 무리한 계획을 잡은 날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지난 봄날, 우연히 대회 빨로 얻어걸린 기록 하나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었다.



운동의 매력 중 하나는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비교적 빠르게 나온다.'라는 사실이다. 내 경우에도 공부는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운동은 이보다 훨씬 빠르게 결과가 나타나곤 했었다. 나는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날은 늦잠을 자버린 덕에 평소보다 조금 늦은 오전 8시 반을 기점으로 러닝길에 올랐다.



여름 시즌에 있어, 이 시간은 사실 러닝을 하는데 사실 최적의 조건은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보다 가파르게 온도와 습도가 올라가는 탓에 러닝 중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라고 달랐을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통 삼십 분 남짓의 러닝으로 몸을 풀곤 하던 나였는데, 그날은 워밍업에서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발은 무겁고, 몸은 햇볕을 그대로 맞는 상황. 갈증이 증대되니 멘털 또한 곧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명의 러너를 만났다. 인사는 한번 한적 없지만, 매주 비슷한 시간에 뛰던 그. 나보다 주력이 좋은 그를 만날 땐 늘 긴장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날은 호기롭게 그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를 따라잡을 수 있다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멘털을 승리로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심산이었다.



내겐 이상한 러닝 습관 하나가 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러너 하나를 가상의 상대로 정하고 꾸준히 따라가는 연습을 한다. 이런 식의 훈련은 내게 채찍질이 되기도 하며, 때론 새로운 성취감을 맛볼 기회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그날은 그가 나의 가상의 라이벌이었다. 발도 무겁고, 멘털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를 열심히 따라갔다. 결과는 어땠을까?



처참했다. 내 정신력이 제발 내 몸을 이기길 바랐던 건은 그저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그와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더불어 나의 정신력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더 멀리 가버린 그를 보며 속으로 외쳤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오늘은 제 컨디션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무렵, 사실 나는 그날의 레이스를 멈췄어야 했다.



뜨겁게 내리는 햇살 그리고 지면의 열기를 뿜어내는 그날의 환경에 맞서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니야. 그래도 할 수 있어.'를 수십 번 외치던 나는 어떻게 됐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구간에서 그대로 멈춰버리고 만다.



'도저히 못 뛰겠어.' 더 뛴다면 정신줄을 놓아버릴 것 같았고, 몸에 사달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늘 어렵지 않게 지나치던 구간이었는데, 그날은 그곳이 나의 결승점이었다. 한달음에 편의점으로 들어가 이온음료 두 개를 손에 들고 나와 벌컥벌컥 마셨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그러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달리기 하다가 퍼져 버렸어. 헤헤."

"에? 괜찮아? 그러니까 무리하게 달리지 말라했지."

"더위 먹었나?"

"어디야 데리러 갈게."

"아냐, 오지 마. 그냥 충분히 쉬고, 천천히 들어갈게."



그날 나는 11km 남짓을 뛰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다시 뛰어보겠다며 다시 발동을 걸었지만, 3km를 가까스로 뛴 게 내 체력의 한계였다. 그토록 러닝에 자신 있어하던 내가 더위에 제대로 처맞은 날이었다. 러닝을 시작한 이후, 처음 경험 겪어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 하루 종일 이불속에 누워 끙끙 앓았다.



더위를 먹은 게 분명했다. 30도 넘치는 날씨에 무리하게 주행을 했던 것도 한몫했을 테고, 오만방자한 마음으로 러닝에 임했던 게 화근이 아니었을까. 마라톤을 시작하며 '겸손'이란 단어를 다시 배워간다. 러닝에 사실 타고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한 노력형 인간이었다. 지난 3년 간의 수험 생활이 내 삶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예가 아니었던가.



이불속에 누워 그날을 복기했다. '분명 여름날의 훈련을 제대로 해낸다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 하나, 지금처럼 뜨뜻미지근한 연습으로는 풀코스 정복은 쉽지 않다. 연습량을 한 번이라도 더 늘여야 한다.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다시 러닝 하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갔다.



연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완벽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더 많은 운을 끌어당기기 위해,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성장과 성공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다면, 나와는 다른 행보로 하늘이 감동할 만큼 노력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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