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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십분만에 일어난 일

by 자향자

며칠간, 일면식 한번 없는 온라인 유저의 댓글이 머릿속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하프 마라톤 뛰면 풀코스 뛸 수 있어.' 그게 진짜 가능하다고? 계속 되물었다. 믿을 수 없어 AI에게도 물어봤다. '하프 마라톤 뛸 정도면, 풀코스 마라톤도 완주할 수 있어?'라고 물어봤던 것. 그의 대답은 어땠을까?



하프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지구력이 있다는 뜻이나, 이는 단순한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더불어 체계적인 준비만 더해진다면 충분히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 첨언했다. 그러나 거짓말을 잘한다는 AI의 말을 내가 곧이곧대로 믿을 리 없었다.



하나,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AI의 말이 전혀 틀린 건 아니었다.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에 매진한다면, 못 해낼 일도 아니지 않을까'라는 긍정의 시그널이 뇌리를 스쳤다. 곧바로 마라톤 대회 일정을 확인했다. '마라톤 온라인' 홈페이지에 접속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때는 초여름 6월이었다. 4~5개월의 준비한다고 가정했을 때, 10월 또는 11월 즈음이면 마라톤 풀코스 도전해 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만 보자. 10월은 회사 바쁘게 돌아가니까, 11월 초 즈음 대회 참가하면 되려나.' 어느새 나의 뇌는 풀코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염두에 두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보통 자기 계발의 일환으로 '뇌를 속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가장 똑똑한 것 같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속이기 쉬운 기관이 바로 뇌라는 이야기.' 혹시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지 않은가. 뇌를 속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실행하는 것이다. 아무리 출근하기 싫어도 어느새 출근해 퇴근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 하나의 방증이 될 수 있다.



사실 의도적으로 이를 행한 건 아니었다. 그저, AI와 나눈 대화의 시작이 나의 뇌를 속이는 트리거가 되었을 뿐이었다. 천만 러너 시대인 요즘, 마라톤 대회에 접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춘천 마라톤, JTBC 마라톤 같은 메이저 대회의 경우, 접수창구가 열리자마자 빠르게 마감되어 버린다. 나 또한 이런 메이저 대회 풀코스에 도전할 요량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내 기준은 아주 단순했다. 근교에서 열리고 참가비가 저렴한 대회. 서울에서 열리는 웬만한 대회는 비싸기도 할뿐더러 그 당시 마감인 대회도 많았다. 지방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로 눈을 돌렸다. 저 멀리 경상도나 전라도는 심적으로 부담이 됐던 탓에 자연스레 나의 눈은 충청권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도 않고 하루 정도면 다녀올 수 있을 곳이었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온 대회 하나가 있었다.



'제14회 부여 굿뜨래 마라톤 대회'. 풀코스 참가비 5만 원. 나쁘지 않았다.(보통 6~7만 원 정도 한다.) 집에서 대략 130km 정도 되는 거리였으니, 전날 도착해 찜질방 등에서 하루 보내고 다음 날 대회 참가 후 다녀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빠르게 개인 정보를 입력하고 입금까지 마쳤다. 단 십분 남짓한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저 멀리 미국 텍사스에 폭풍이 올 수 있다는 나비효과. 그 이론이 내게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올해는 아니었어도 그 언젠가는 뛰어보고 싶었던 풀코스였으니, 시기를 조금 당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긍정적의 시그널도 동시에 작동했다.



그 당시 하프 마라톤에서 개인 최고 기록으로 완주한 나였으니, 자신감을 등에 업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도 했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사실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시작하기도 전에 괜스레 겁을 먹을 필요 또한 없었고 말이다.



호기롭게 아내, 회사 사람들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공언했다. "나 마라톤 풀코스 뛸 거야." 아내는 나의 이런 말에 또다시 말도 안 된다는 소리라고 했고, 주변인들은 이런 나의 얘기를 아마 귓등으로 들었을 테다. 어쨌든 그런 상황을 등 뒤에 업고 마라톤 풀코스 도전 여정에 첫 발을 내디뎠다. 과연 39살 아저씨는 이 도전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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