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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코스, 가능하다고? 감히 내가?

by 자향자

2025년 5월 24일 토요일, 내 생에 첫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 거리로는 21.0975km, 정확히 풀코스 마라톤의 절반 거리에 해당한다. (사실 대회마다 이 거리를 정확히 산정해 루트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아주 조금 못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이날의 나는 2025년 내가 그토록 이루고 싶던 버킷리스트였던 '하프 마라톤 완주'를 오롯이 내 두 발로 달성했다.



삶이 충만해진 느낌이었다. 그간 내가 살아온 삶을 돌이켜 봤을 때, 목표를 세우고 조금만 어려워져도 쉽게 포기해 버리던 나였으니, 이날의 완주가 내게 시사해 준 부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왜였을까? 시작하면 끝을 볼 줄 아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날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목표 달성이라는 뿌듯함을 다시금 느낀 날이기도 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그날의 기록 또한 내 기준에선 너무나 훌륭했다. 1시간 39분 06초. 그간의 연습을 미루어봤을 때, 말도 안 되는 기록이었다. 마라톤 대회 당일엔 도파민 터지는 특별한 분위기가 대회장에 흐른다. 이 덕분에 참가자들은 기존에 자신이 연습했던 기록보다 훨씬 더 대단한 기록을 남길 기회가 생긴다. 나도 덕분에 그 혜택을 보게 됐다.



'마라톤 대회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은 이는 스스로였다.'라는 이봉주 전 마라토너의 이야기 같이 그날 하루는 절대 후회 없는 하루였고, 내 인생을 살아오며 최선을 다해 살아낸 주말의 어느 날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오롯이 버킷리스트 하나 달성하겠다며 무리하게 주행을 한 덕에 나의 발목 그리고 발등은 부상이라는 흔적을 남겼다.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아내 그리고 딸아이의 환대를 받고 난 판타지와 같았던 대회 당일을 뒤로하고 다시금 보통의 일상이 찾아왔다.



혹시 경제용어 중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들어봤는가. 소비자가 같은 재화를 계속 소비하면 할수록 추가적으로 얻는 만족감은 점점 줄어든다는 경제학의 원리. 우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던 물건을 구입했을 때, 만족감이 오래가지 못하는 사례가 한 예시가 될 수 있겠다.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하프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그다음의 러닝 연습부터는 이전만큼의 만족감이 돌지 않았다. 물론 대회 당시 얻은 부상 때문에 한 동안 뛰지 못했던 이유도 한몫했겠지만, 이를 번외로 하고도 체감할 수 있는 효용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가 선수될 것도 아닌데, 사실 건강 유지하는 게 목표잖아.'

'올해 목표 달성한 거면 충분해. 이 정도면 됐어.'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알 수 없는 찜찜함은 더해갔고 갈증 또한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 그즈음을 기해 나는 SNS 하나를 새로이 시작하게 됐다. 일천만의 유저가 사용하고 있다는 '스레드'라는 플랫폼. (텍스트 위주의 플랫폼으로 짧은 글을 전개하며 유저들과 소통하는 형태의 SNS다. X와 유사하지만 조금 더 길게 텍스트를 작성할 수 있다.) 세상에 나를 알리기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였다.



이곳에 나의 일상 이야기를 많이 남기곤 했다. 내가 오늘 뭘 먹었는지, 어떤 일상이 있었는지를 족족 피드로 남기며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을 이어갔다. 당시 집중했던 러닝 이야기 또한 꽤 많이 풀어냈는데, 내 생에 첫 하프 마라톤 완주 이야기 또한 빠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저 하나가 해당 피드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하프 마라톤 뛸 수 있으면, 풀코스도 뛸 수 있어.'

'응? 진짜?'

'가능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한 온라인 유저의 댓글에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풀코스를 뛸 수 있다고? 내가 경험한 건 기껏해야 풀코스 마라톤 절반에 달하는 하프 마라톤에 불과했는데?' 전력을 다해 간신히 하프 코스를 완주한 나로선 참으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그의 댓글이었다. 과연 진심이었을까?



'보통 도전하는 거리의 7할 정도는 뛸 수 있다면, 완주할 수도 있다.'라는 소리는 귓등으로 많이 건너 듣기는 했었다. 근데 7할은커녕 절반밖에 안 되는 거리를 처음 뛰어본 이에게 이런 댓글은 사실 좀 부담스럽기도 그리고 과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동시에 꿈같은 이야기라고 여겼다.



'말도 안 돼.' 휘발성이 강한 SNS 특성상, '그 또한 내게 별다른 의미 없이 댓글을 남겼겠지.'라고 치부하며 흘려보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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