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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l 03. 2024

“동장님, 저 육아휴직 쓰겠습니다.”

혹시 주변 지인 중에 아빠가 육아휴직 썼다는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직까지는 좀 어색하게 느껴지시죠. 제가 2016년에 입사 한 이후 남자 공무원이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야기 저도 사실 많이는 못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공무원 조직에서조차도 고민이 되는 게 아빠의 육아휴직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맞벌이 부부라면 보통 출산을 앞둔 아내가 먼저 휴직을 들어가게 됩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벌어다 줍니다. 그런데 꼭 그러라는 법 어디 있나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것에도 언제나 예외는 있으니까요. 그 예외를 저희 부부가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육아휴직은 회사의 정기인사 시즌에 맞춰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육아휴직 사용을 독려하고 있으며, 휴직 기간 동안 필요한 자금도 어느 정도 준비된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에 임하는 제 마음가짐도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해 있었습니다. 이제 동장님께 “저 육아휴직 하겠습니다.”라고 보고만 드리면 모든 게 끝입니다.



모두가 “아니요”라고 말할 때 나 홀로 “예스”라고 말해본 적 저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학창 시절, 사회생활 중에도 제 주장을 오롯이 펼쳐 본 적이 머릿속에서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매번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선택을 따라가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대부분이 가보지 않은 길과 익숙한 길 두 갈래 길 가운데서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제가 총대를 메고 직접 말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던 거죠.



사내에는 2022년의 늦가을 즈음부터 육아휴직 관련한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직장예절이라는 것도 무시할 순 없어 실무자인 옆 사수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고 팀장님 그리고 동장님께 보고 드리는 절차로 진행했습니다. 어렵게 꺼낸 육아휴직 이야기에 사수는 응원을 보태줬고, 주변 동료들도 많이 응원해 줬습니다. 빈말인지 뭔지는 몰라도 힘은 나더라고요. 이 기세를 이어받아 정기 인사 시즌에 육아휴직 사용할 것 같다고 팀장님도 무리 없이 보고 드렸습니다. 6개월만 쉬고 돌아오라던 팀장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육아는 사실 쉬는 게 아닌데 말이죠.



육아휴직을 사용할 계획이라면 번거롭더라도 사내의 절차를 차근히 밟아 보고 드리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육아휴직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이 맞으나 그래도 조직에 몸 담고 있으니 격식과 절차는 어느 정도 맞춰주는 게 보기도 좋고 본인에도 좋습니다. 퇴사하는 거 아니잖아요.



이제 마지막 관문 하나가 남았습니다. 바로 동장님께 보고드릴 차례입니다. 동장실 문을 똑똑 두드리고 간단한 업무 보고 이후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동장님, 저 육아휴직 쓰겠습니다.” 본래 동장님께서는 저희 아이가 아픈 상황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계셨습니다. 간간히 동장실에서 업무 보고 드리면서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 전해드리긴 했었거든요. 흔쾌히 수긍해 주셨습니다. 아이가 치료 잘 받아서 예쁜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해주셨고 아내 잘 챙기라는 말씀도 해주시고 조금만 쉬고 돌아와라는 기분 좋은 잔소리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육아휴직 보고도 순조롭게 마무리 됐고 11월 즈음을 기해서 육아휴직 신청 희망자를 받는 인사 관련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결정 이후 내심 기다렸던 공문. 회신 이후 조금 있으면 육아휴직 들어갈 사람이라고 일 대충 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다음 인계자를 위한 인수인계서도 재정비하고 업무도 꼼꼼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육아를 하러 가는데 기분이 참 후련했습니다. 육아를 위한 휴직은 맞으나 한편으로는 딸아이가 제게 선사하는 안식년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웃기죠? 이제 저는 아내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육아 전선에 함께 뛰어들 준비를 마쳤습니다. 궁금했습니다. 과연 저는 아이에게 어떤 아빠로 그리고 아내에게는 어떤 남편이 될 수 있을지 말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육아휴직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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