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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09. 2022

오디를 줍다

 알바 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아 공공근로를 신청했다. 갑자기 전화를 받고, 오월 둘째 주 월요일부터 출근을 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직종도 아니고, 가라는 대로 갔다. 제초 작업 일이었다. 도시에서 자란 난 단 한 번도  풀 뽑기를 해본 적이 없다. 난생처음 호미라는 걸 들고 풀을 뽑기 시작했다. 어떨 땐 풀을 구별 못해서 꽃이나 화초를 뽑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풀은 끝도 없이 자라 무성하고, 오랜 가뭄 끝이라 호미는 땅바닥에 잘 들어가지도 않고 마른 먼지만 폴폴 난다. 

 오후엔 창이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땡볕에 앉아 풀을 뽑는다. 이마에 땀이 흐르고, 등이 따갑고, 숨이 턱턱 막힌다. 하지만 힘든 와중에서도 무엇보다 좋았던 건 아침마다 동산에 올라가서 오디를 줍던 것이었다. 동산은 공사 중이라 작업을 하는 사람 이외는 통제되었다. 한적해서 좋았다. 아홉 시 즈음에 동산에 올라 떨어진 오디를 주워 흐르는 물에 씻어 입안에 넣는다. 갈증 해소도 되고, 입안도 달달하다.

 점심을 먹은 오후에는 동산 위의 사무실 청수기에서 물을 받아온다. 물은 참으로 시원하다. 조경학과를 나와 6년째 근무 중이라는 젊은 총각은 더운지 일자로 드러누워있다. 참으로 선하게 생긴 얼굴이다. 땡볕 아래서 혼자 풀을 깎는 모습을 보곤 했었다.  나무와 풀, 화초 속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저런 얼굴이 될까. 한 번씩 나타나는 작은 독사를 죽이기 그래서 피리를 불어 다른 곳으로 유인한다는 그의 말이 재미있다.


5월은 떨어진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줍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바람에 떨어진 오디들을 손바닥에 주워 담았다. 몇 개 줍지 않아 손바닥은 이내 가득 찬다. 가득 쥔 오디는 아이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거칠게 다루었다가는 짓무르기에 십상이다. 짓물러진 보랏빛 오디 진액은 손가락에 묻어서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입안도 거멓게 물든다. 오디 한 개를 입 안에 넣으면 달고 싱싱했다. 갈증이 해소된다. 금방 수확한 오디는 블루베리나 포도보다 풍성하다.

 주변의 새파랗던 살구도 살색 빛으로 변해가고, 자두도 붉게 물들어가고, 조그만 앵두도 빨갛게 익어간다.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던 어성초의 비릿한 냄새도 적응돼 간다. 토실토실 매실도 열렸다. 가뭄이라 작년보다 열매가 적게 달렸다. 대나무밭의 죽순도 한 뼘 정도 자랐다. 아직은 작은 크기이나 시간이 지나며 좀 더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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