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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y 02. 2022

세상 하나뿐인 내 그릇 만들기 (#로쇼어 세라믹 룸)

기록하는 2022년│Episode 85│2022.04.30

올해 초 미술학원에 다니기 전 도자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까워야 편하게 자주 갈 것 같아서 집과 가까운 곳 위주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봤었다. 집 근처 도예 공방이 있긴 했으나 내 취향과는 약간 맞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그 일대가 재개발 지역에 속해 어느 순간 문을 닫았다.) 한참 도자기 공방을 찾던 그때 발견한 곳이 하나 있다. 바로 <로쇼어 세라믹 룸>이다.

비록 사진으로만 봤을 뿐이지만 그곳의 그릇과 그곳의 공간이 무척 예뻤다. "수 십 가지의 컬러 샘플 중 맘에 드는 안료를 골라 색깔 흙을 직접 반죽해서 마블 무늬의 그릇 1개와 술잔 1개를 만듭니다."라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설명 역시 마음에 들었다. 


이곳을 발견하자마자 당장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왜인지 용기가 안 났다. 너무 좋은 곳일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달까. 겨우 원데이 클래스 하나 가면서 이렇게 오버스러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나는 좀 그랬다. 이게 나다. 아껴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냥 한 번 가버리고 끝나고 싶지 않달까. 물론 주말마다 무엇인가 하나씩은 일이 생겨서 여유롭게 갈 수 있는 시간이 없기도 했다. 그렇게 그냥 매주 시간만 보다 못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마침 토요일 오전에 잠깐 일이 있다고 했다. 지난주 내내 조금은 피곤해서 남편의 일이 끝날 때까지 늘어지게 잘까 싶었다. 누웠는데 문득 <로쇼어 세라믹 룸>이 떠올랐다. 급하게 예약을 찾아보니 다행스럽게도 오전 11시 타임이 비어있었다. 바로 예약을 했다. 이거라면 좋은 주말을 보내기에 충분하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았다. 눈이 번쩍 떠졌다. 날씨도 좋다. 간단하게 집안일을 하고 삼십 분 일찍 출발했다. 여유롭게 오늘의 봄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꽃이 예뻐서 한 다발 샀다.

얼굴도 모르는 사장님께 선물하고 싶었다. 혹시 불편할까. 어떡하지. 그렇지만 그곳과 잘 어울릴 것 같다.

<로쇼어 세라믹 룸>에 도착했다. 종종 가던 <필구커피> 2층에 있었다. (지난 3월 발견 후 동네에 종종 가는 곳들이 여럿 생겼다. 낯설기만 하던 이 동네였는데 점점 더 좋아진다. 따뜻하고 편안하다.)

신기하다. 이곳을 몇 번을 왔는데 여기에 있는지 몰랐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나 보다. 공방에 들어가니 사장님이자 선생님이 나를 맞이한다. 벌써 좋다. 공간은 사진보다 예쁘다. 


오늘의 클래스는 나 혼자 한다. 나는 술잔 두 개와 그릇 한 개를 만들 것이다. 선생님과 둘 만의 시간이 약간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아니었다. 선생님은 간단하게 오늘의 그릇 만들기 수업에 대해 설명한다. 곧이어 책상 위에 수십 가지의 색깔 칩이 올려진다. 벌써 신이 난다.

그릇과 잔 한 개당 최대 3-4개의 색을 고르면 된다고 한다. 나는 각각 3개, 3개, 2개의 색을 골랐다.

붉은 계열과 푸른 계열이 각각 잔이 될 것이고, 보라색과 노란색이 그릇이 될 것이다. (만약 다시 만든다면 너무 비슷하지 않은 계열의 색을 두 개씩만 선택해보고 싶다.) 색깔부터 오롯이 내 것이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흙을 나누고 그다음으로 색료를 나눈다.

그리고 그것들을 반죽해서 색을 낸다. 꽤나 정교하고 꽤나 즐거운 시간이다. 이 노력의 시간들을 건너뛰지 않고 내가 직접,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재료들을 손으로 찢고 붙이기를 반복하며 최종 반죽을 만든다.

그리고 만들어진 반죽의 공기를 빼고 모양을 잡아가며 술잔을 만든다.

술잔의, 그릇의 모양을 잡고 만들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의 계속되는 응원과 실질적인 도움을 통해서 어쨌든 완성했다. 하나의 그릇과 두 개의 술잔을.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을 한 달 뒤에 만날 수 있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건조와 두 번의 굽은 시간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그마저 도자기의 특성상 어쩌면 제대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말로 더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두 개의 술잔과 하나의 그릇이 오롯이 내게 돌아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주 만에 하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만진 흙의 감촉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내가 선택한 나만의 색깔로, 내가 직접 찢고 붙이면서 두 번은 똑같이 만들 수 없을 무늬를 담았다. 말 그대로 세상에 정말 하나뿐인 것들이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냈다니. 뿌듯하다. 세상 하나뿐인 내 그릇이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런 곳을 알게 된 것은 내게 큰 선물이다. 언제고 흙을 만지고 싶을 땐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선생님을 알게 된 것 역시 큰 선물이다.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나이가 같다는 것과 가끔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선생님이 문자를 주셨다. 동네 지나가다가 가끔 놀러 오라고. 동네 친구 느낌으로 편히 들리라고. 부끄럽지만 동네 친구라는 단어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설렜다. 이렇게 멋진 사람과 동네 친구라니. 이 동네가 좋아지는 하나의 이유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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