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매점, 영화관 내 오락기에서 나오는 전자음, 작은 스크린에 번호가 뜨면서 나는 띵똥 소리, 웅성웅성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오감을 자극하는 곳, 영화관이다. 그중에서도 영화관에 왔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은 영화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팝콘 냄새’가 코에, 감각에 훅 들어왔을 때다.
국내에서 영화관을 운영하는 회사는 여럿 있고, 딱히 더 선호하는 영화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 가까운 곳이나 상영 시간이 맞는 곳으로 택하는 편이다. 다만, 기왕 비슷한 조건이라면 M사를 선택한다. 다른 영화관에서는 굳이 팝콘을 먹지 않지만, M사로 영화를 보러 가면 ‘팝콘 먹을까?’하는 생각이 자동반사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건 단순한 식성이 아니다. 내 고등학교 시절과 관련되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동네에 영화관은 C 사 하나였다. 나름 일탈을 하고 놀러 가는 것이 고작 영화관에 가서 영화보기와, 영화관이 있는 백화점 안 구경하기 정도였던 시절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난 날은 영화관이 있는 백화점 지하 1층에서 우리 학교 친구들을 수도 없이 만나곤 했다. 그렇게 C사가 동네 영화 사업을 독점하고 있던 어느 날, M사가 생겼다.
4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C사의 영화관은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는 데다가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마을버스의 종점역에 있는 등 지리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영화관의 멤버십 포인트를 착실하게 쌓아가고 있었고, 영화 보러 가는 김에 백화점 구경도 할 수 있어서 굳이 영화관을 옮길 이유가 없었다.
M사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근처 중·고등학교 하교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100% 당첨 스크래치 쿠폰을 나눠주었다. 당시에는 카페랄 것도 별로 없었고, 지금처럼 학생들이 편하게 가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학교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긴 했지만 학생들에게 꽤 큰 돈이어서 자주 가지는 못했다. 하교 후 이야기할 장소가 필요했던 학생들의 단골집은 맥도날드였다. 햄버거를 다 먹고 난 뒤에도 한참을 앉아 다 먹은 종이로 만든 감자튀김 용기나 트레이에 깔아 둔 전단지를 만지작거리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친구들이 왔다. 잘 모르는 친구여도 어차피 다 같은 학교라 네 친구가 내 친구가 되어 그쪽 무리에 합류해 감자튀김을 뺏어먹기도 하고, 리필 가능한 탄산을 리필하면서 저렴하고 양 많은 감자튀김이나 너겟을 추가해 몇 시간이고 카페처럼 맥도날드에서 놀곤 했다.
그랬던 우리에게 무료 팝콘과 탄산 쿠폰이 주어진 것이다. 그것도 거의 매일 같이 학교 앞에서 쿠폰을 나눠주었으므로 한 사람 당 세네 개씩은 늘 갖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교 후에 영화관으로 향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원에 가기까지 시간이 남는 금요일은 자율학습을 빠지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새로 생긴 영화관이라 관객이 적었고, 심지어는 상영관에 관객이 우리만 있는 날도 있었다. 말 그대로 상영관을 전세 낸 기분이었다. 영화 볼 돈이 부족하거나 시간이 되지 않는 날에도 그냥 영화관에 가서 팝콘과 탄산 쿠폰을 이용해 간식을 마련하고, 영화관 내 오락실에 가거나 영화관 벤치에서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M사는 우리의 새 놀이터가 되었다.
고3이 되면서 점점 영화관에 가는 횟수가 줄었지만 이때의 기억이 내게 ‘팝콘=M사’로 각인되었다. 내 머릿속 팝콘 맛의 표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카라멜 팝콘이 제일 맛있어 이곳에서도 캐러멜 팝콘만 먹는다.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여전히 지금도 M사 팝콘을 선호한다. 요즘 많이 나오는 다양한 맛의 고급 팝콘보다도.
이건 다 내가 마케팅에 너무 취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주식 계좌를 처음 만들었을 때 곁눈질로 보면서 공부나 하려고 만들었을 뿐 실제로 거래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한 증권사에서 일정 금액 이상 거래하면 현금을 준다는 게 아닌가. 이왕 만들 거라면 치킨값이라도 벌자는 생각으로 이벤트만 참가하려고 거래를 시작했다. 무엇을 사고 팔지 고민하게 되고, 매일 주식 가격을 주시하게 되고, 무서웠던 주식거래가 점점 편해졌다. 그렇게 주식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 피 같은 돈을 허공에 날리고 있는 중이다(그러나, 버티면 언젠가는 회복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업 전략인 줄 뻔히 알면서도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유도하는 대로 방향을 틀어 그대로 가는 게 나다. 그래도 그 덕분에 M사 팝콘은 내게 학창 시절 소중한 추억을 여럿 만들어 주었고, 나 역시 그에 보답하고자 M사 팝콘에 무의식적으로 충성하고 있다. 공격적인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우리같이 팝콘이나 탐내고, 오락이나 하고 가는 학생들만 있었는지 이후에도 영화관은 늘 한산했다. 이러다 곧 없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영업 중이다.
얼마 전 톰 크루즈가 주연인 영화 <탑건: 매버릭>을 보고 왔다. M사의 카라멜 팝콘 L사이즈도 함께. 공교롭게도 내가 톰 크루즈 영화를 처음 본 것이 고등학교 때 팝콘 먹으러 왔다가 이 영화관에서 본 미션 임파서블 3다. 이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빠져 전 시리즈를 다 보았다. 지금도 ‘뚠뚠 뚜두 뚠뚠 뚜두’하는 영화 오프닝 음악만 들어도 흥이 나는 열혈 팬이 되어 톰 크루즈가 나오는 영화는 모두 본다. 마음은 아직도 공짜 팝콘을 먹던 고등학생 시절과 같은데 생물학적·서류상의 나이는 그때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내 나이만 변했지 톰 크루즈도, 이 팝콘 맛도 그대로다. 어둑한 영화관에 앉아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비상 탈출로 설명을 들으면서 팝콘을 한 입 물면 꿈 많던 18살,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어처구니없게도 팝콘을 먹으면서 <어린 왕자>를 떠올렸다. 나는 이 영화관에, 이 팝콘에 길들여져 버렸기 때문이다. M사가 무료 쿠폰으로 길들인 장미가 나고, 동시에 나에게도 M사의 캐러멜 팝콘이 너무 소중해졌다. 그러므로, M사는 장미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 얼렁뚱땅 결론은... M사 팝콘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