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선배 R의 SNS 피드는 온통 빵 사진뿐이다. 사진마다 열 줄은 되는듯한 글에는 오늘 먹은 빵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난다. 자기소개란에는 ‘빵 추천받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한 내게도 안 그래도 이번 주말에 갈 빵집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잘됐다며, 빵집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얼마 전 이 선배와 망원동 빵 투어를 다녀왔다. 이름이 좀 알려진 빵집은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가게 앞에 30-40명이 줄 서 있어 아쉬울 것도 없이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
친구 P는 최근 SNS를 시작했다. 평소 SNS를 하지 않는 친구인데 빵을 먹으려면 도저히 SNS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요즘 인기 있는 개인 빵집은 주로 공지를 SNS를 통해 올려서 그날 나오는 빵 목록, 가게 운영일 등을 알기 위해서는 가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가입한 김에 먹은 빵을 기록하는 용도로 계정을 사용하기로 한 친구의 피드는 온통 빵과 카페 사진이다.
사실 나도 SNS 계정을 가지고 있다. 게시물은 하나도 없고 친구들 팔로우만 하는 계정이다. SNS를 통해 정보를 받고는 싶은데 메신저 프로필 사진도 몇 년째 아무것도 올리지 않는 내게 SNS에 올리고 싶은 내용이 있을 리 없다. 이런 내게 비밀이 있는데, 사실 나도 먹은 것을 올리는 용도의 부계정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이 계정으로 누굴 팔로우한 것도 아니라 팔로워도 팔로잉도 소수인 계정이다.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만들었다기보다 5년째 사용 중인 핸드폰 저장 공간이 부족해 핸드폰에 가득 찬 음식 사진을 영구적으로 보관할 장소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빵이 너무 좋아 진작에 제과 제빵 자격증을 모두 갖고 있는 나의 피드 역시 말할 것도 없이 빵 위주다.
나 말고도 빵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유유상종이라고 내 주변 사람들이라 그런 건지, 평균적으로 이렇게 많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주말 아침 요가 수업을 마치면 오전 11시 50분이다. 집에 가는 길, 점심을 뭘 먹을까 고민하면서 일단 빵집으로 향한다. 12시 조금 넘어 소금 빵이 나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소금 빵 말고도 아침에 갓 구운 빵이 나오는 시간은 놓칠 수 없다. 가게 문을 열자 빵집 안에는 조금 전에 요가원에서 본, 같은 수업을 들은 사람들이 이미 쟁반에 빵을 담고 있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로 빵집이 북적인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 열심히 운동하고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빵집에서 다시 만나다니. 조금 민망하고 또 재미있는 풍경이다.
빵케팅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다. 빵을 택배로 주문하기 위해서 티켓팅 버금가는 진땀 나는 클릭이 필수인 빵집이 셀 수도 없이 많다. 오픈런을 해야 살 수 있다, 웨이팅을 한 시간 한 후에 맛보았다는 후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도대체 빵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다들 빵을 좋아하는 것일까. 혹시 다들 나처럼 맛있는 빵 찾아다니는 것 말고는 딱히 재미랄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주중에는 출근하고 퇴근하면 끝나는 하루를 주말 빵 투어로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