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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ssion Azumma Feb 12. 2024

조급함 때문에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미래는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with 타로카드

주문. 위 000을 공인중개사법 위반 벌금 100만 원 형에 처한다.



 '그때 이걸 알았더라면'을 반복하고 사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의 그것인지라 평생이 후회투성이인 건 저뿐만은 아니겠지요. 그 수 많았던 후회들 중에 저는 잊지 못할 잊어서도 안될 그리고 다시 반복되어서도 안 될 치명적인 후회를 몇 년 전에 경험했습니다.


아이 셋 키우며 인강으로 밤마다 공부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평범한 아줌마로 살아가던 나에게 주육야독하는 시간은 상상의 나래를 펴며 미래의 어느 날 당당히 커리어우먼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자신감도 불어넣어 줬습니다. 보험이란 생각에 든든하기도 했어요. 어리석은 사람인지라 그때만 해도 따기만 하면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 사용할 타이밍이 드디어 왔습니다.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해 더불어 남편이 이직하는 사이에 생긴 공백기였습니다.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그 해. 꺼내는 것조차도 힘든 저 깊숙한 곳의 그것을 이제 꺼내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지난 몇 년간 그 일은 제 머릿속에 떠올려서도 안되고 꺼내서도 안 되는 금기 같은 거였습니다. 그만큼 힘들었고 그만큼 수치스럽고 그만큼 죄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힘든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된 시작과도 같은 그 일을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으면 매일 이 같은 삶은 계속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해성사 같은? 아무튼 그날로 다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자격증을 딴 지 몇 년이 지난 바람에 공인중개사 교육부터 다시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교육생들 중 1등이라는 타이틀도 받고 그 동안 쌓아온 실력이

녹슬진 않았구나 자신감이 생겼어요. 바로 창업하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저는 공백기가 길었기에 더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바뀐 부동산법들이며 세법도 다시 공부하고 부동산자산관리사 시험까지 치면서 업무능력을 배양시켰습니다. 더불어 주말에는 재개발 수업도 열심히 듣고 스스로 떳떳하고 자신감 있는 공인중개사가 되려고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어느 부동산에 소속공인중개사가 되었습니다. 창업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선배들에게 좀 더 배우자라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밑에서 일하는 걸 선택했습니다.


일은 너무 재밌었습니다. 늘 집에만 있다가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을 하고 계약까지 하면 그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어 이제 내 사무실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소장이 공동으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더군요. 남편과 상의했는데 남편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창업비용이나 권리금등을 생각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게 낫지 않냐는 투였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저한텐 결정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같은 사무실에 개업공인중개사로 등록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말이지 운수 좋은 날이었어요. 분양권이 하루아침에 몇 천씩 프리미엄이 붙던 부동산 활황기였습니다. 아침부터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 전날 밤에 받은 매도 물량이 인기가 너무 많았어요. 다른 분양권보다 조금 싸기도 했고 층수도 좋았고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문의가 오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젊은 여자분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동 그 층수가 맞냐 대뜸 묻더니 바로 계약을 하겠다며 계약금 2천을 10분이 채 되기도 전에 보냈습니다. 분양권 계약금을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나. 걱정이 되었지만 옆에 있던 원래 소장도 지금 그렇게 하는 분위기라며 괜찮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매도자와 연락이 안 됩니다. 그때의 그 싸한 기분... 신종 보이스피싱을 당한 겁니다. 분양권 거래의 특성상 일단 각종 서류들을 팩스나 핸드폰으로 받고 계약단계에서 실물서류와 본인 확인을 하던 관행적 맹점을 악용한 겁니다. 그 길로 계약자분과 경찰서로 갔지만 보이스피싱이라 볼 수 없다며 계좌정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 빼갔을 텐데... 속이 타들어갔어요.


그날부터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서류도 맞았고 이상이 없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 계약자들도 보내 준 서류를 확인하고 계약금을 보낸 건데 어떻게 된 일이지? 수수료를 두 배로 준다는 계약자의 말에 잠시 제가 이성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한 번 더 확인했어야 할 것을 놓쳐버렸습니다. 나는 이 고객을, 그는 이 물건을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서로의 목적때문에 조급했던 겁니다. 그 날 이후 저는 그 계약자에게 사기꾼 취급을 당했습니다. 사무실은 물론이고 구청에 경찰서에 민원 폭탄을 넣기 시작했어요.


"니도 당한 거다. 니도 피해자라고"

남편이 애써 위로합니다.

"협회에 1억 보증보험이 가입이 되어 있으니 그걸로 지급하면 된다. 내가 변호사 하고 얘기 다 해놨으니까 니는 니나 신경 써라"


그날부터 대인기피증에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래기 일쑤였고 그렇게 저는 집에서 은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그날 바로 계약자분들께 2천만 원을 보상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공인중개사로서의 책임감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게 세상에 없어요. 일단 돈줄 쥔 남편이 안된다고 끝까지 가야 한다 하니.. 돈 벌러 나가서 돈까 먹고 온 나로서는 달리 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때의 무력감은 지금도 저를 괴롭힙니다.


그렇게 저는 공인중개사법 위반 벌금 100만 원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계속 일을 할 힘이 없었습니다. 사무실은 폐업을 했고 협회에  보증보험 구상권을 청구받아 결국 2천만 원보다 많은 돈을 저는 경험의 대가로 지불했습니다. 그렇게 보험같던 내 미래가 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 란걸 그 때 알았더라면 남편을 설득해서 그 돈을 돌려줄 수 있었을까요? 저에게 그 정도의 뭉칫돈이 있었더라면 그 날 바로 정리하고 저는 다시 그 일로 돌아갔을까요? 뭐가 옳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렇게 세상을 배우고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퍼주기만 하고 살았던 제 인생을 되돌아볼 때 그 일은 저한테는 반드시 일어났어야 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지나고 난 뒤에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고 한 인간이 삶을 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인지도 모릅니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받아야 할 가르침 말입니다. 그냥 '그래서 그런거였구나' 라고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요? 여기까지 오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저는 덤덤히 그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PS. 진짜 보이스 피싱범인 피고인이 나에게 보낸 옥 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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