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ssion Azumma Feb 05. 2024

불면, 은둔, 중독

저는 불면증과 알코올 의존증 환자입니다

저는 타로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명리심리학 자격증도 있습니다. 내 사주팔자를 스스로 볼 자신은 아직 없어서 처음으로 저를 위해 타로 카드를 석 장 뽑았습니다. 공부를 하면서도 '해석하기 나름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카드는 '지금 내 상태는 어떨까'라고 생각하며 뽑은 카드입니다. 보기만 해도 섬뜩하지 않나요?


말 그대로 불면과 은둔, 중독의 카드입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대표 키워드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하나라도 희망적이면 안 되는 거야? 내 인생이 너무 잔인한데 싶어서 우울하지만 지금 제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 같아서 조금 무섭기도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다 보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거의 저와 지금의 저를 알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섬으로 이사 온 후 남편과 하루 종일 함께합니다. 매일 저녁 반주를 가장한 음주를 하고요. 술빨로도 잠을 못 자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어야 4시간 잘까 말까의 생활을 1년 넘게 계속 중입니다. 물론 어떤 날은 여섯 시간씩 잘 때도 있습니다. 약 덕분에요.


어려서부터 술이 가까운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친가도 외가도 모두 음주가무를 즐기는 분들이고 엄마는 술을 못 드시지만 아빠는 어릴 적 본인스스로 일기장에 내가 다시 술을 먹으면 개자식이라고 써 놓을 정도로 평생 술을 드신 분입니다. 일흔 중반을 넘긴 오늘까지도 매일 말입니다


제가 그 피를 타고났나 봅니다. 술을 좋아합니다. 아빠한테 술을 배웠고 주사도 없고 숙취도 없습니다. 술을 막 시작할 즈음엔 몇 번의 블랙아웃과 숙취도 경험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니 조절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또한 핑계고 변명인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저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나 속상해서 마시고 어제는 비가 와서 마셨습니다. 오늘은 책을 두 권이나 읽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또 한 잔 마시게 될 거 같아요. 얼마나 마시냐고요? 소주 병이요. 거기서 한두 잔씩 늘 때도 있어요. 남편은 알쓰여서 술을 하는데 요즘 동네 막걸리에 빠져서 한두 잔씩 즐깁니다. 같이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하며 짠하는 재미를 핑계 대며 술을 찾습니다. 남편은 잔만 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개지는 타입인 데다가 어릴 때부터 엄마의 술주정을 보고 자라 술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인데 어쩌다 저 같은 주당 마누라를 만났을까요? 


답은 제가 그 양반보다 술이 세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제가 술에 취한 모습을 저희 가족들은 본 적이 없어요. 늦잠을 자 본 적도 없고 아이들 챙기기 남편 챙기기를 놓친 적도 없거든요. 그래서 저의 음주는 저희 집에선 당연한 일이 된 것이 지금의 알코올 의존을 부른 건지도 모르겠어요. 안마실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하루에 백가지도 더 마실 일이 생깁니다.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를 매일 찾습니다. 저 스스로도 제가 알코올 의존증이 있음을 시인합니다. 하지만, 끊기가 어렵습니다. 주사도 없고 밖에서 술 먹는 건 귀찮습니다. 오로지 방구석 혼술입니다. 남편은 한 잔이면 끝이고 그 뒤엔 저 혼자 벽 보고 앉아서 마시거나 아예 컵에 들이붓고 티브이 앞으로 갑니다. 그렇게 멍하게 한두 시간 앉아있다 보면 마신 술은 이미 해장이 되어 가고 멀쩡해지죠. 그럼 책을 꺼내서 잠자리에 듭니다. 이게 저의 매일 저녁 루틴입니다. 


혹시 저처럼 무언가에 의존하거나 숨어들고 계시진 않나요? 이런저런 생각과 자신에 대한 학대를 이어가고 계시는 분 없나요? 저는 저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으로 술을 택한 것 같습니다. 나를 학대하면서 나를 내려놓는 방법으로 음주를 선택한 미련퉁이인 거죠. 이걸 그만두면 오히려 불면증도 해결이 될 거라는 걸 아는데도 끊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포기가 아니라 방치죠. 저 자신을 저는 그렇게 방치한 거 같습니다.


얼마 전 친한 언니가 이사 6개월 만에 집에 놀러 왔어요. 제가 계속 미루고 미뤄서 왔는데 그대로 들이닥친 거죠. 세제를 캐리어에 정도로 많이도 사 왔더라고요. 언니야 나를 세탁해야 해?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실제로 그날 저는 새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잦은 연락을 터라 언니의 하루가 어떤지 알지 못했는데 그동안 미용기술을 익히고 자격증을 땄더라고요. 저는 마디로 충격받았습니다. 1년이란 시간 밖에 지났는데.. 그동안 나는 한숨만 쉬고 있었는데.. 언니는 뭐야?? 새로운 도전을 서슴없이 해치운 겁니다. 


"나도 자존감이 바닥까지 가서 매일 집에만 있었는데 친언니가 보다 못해 자기 미용실에 와서 샴푸알바라도 좀 하라더라고, 집에 있으면 뭐 하나 싶어서 나갔는데 그게 내 목표가 될 줄 나도 몰랐지 뭐. 지금은 너무 신난다. 도전할 일이 생기니까 잠도 잘 자고 나는 술 끊었어"


"와 나보다 더 한 술쟁이 언닌데 술을 끊었다고?"


"바쁘니까 술 마시는 시간도 아깝더라고 그래서 요즘은 아예 안 마신다"


경력단절 여성이 느끼는 자존감바닥.. 그날 뭘 할 수 있을까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걸 구체화하기 시작했어요. 난 오늘부터 금주다. 이런 각오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대신에 술을 덜 마시게 될 이유를 찾아볼까 합니다.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생긴다면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술을 좀 줄이지 않을까요? 이 연재를 생각하게 된 것도 어쩌면 언니의 방문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래서 찾았냐고요? 찾았습니다. 저는 민간자격증이지만 두 종류에 도전했고 둘 다 1급으로 자격증을 땄습니다. 제대로 해 볼 생각입니다. 한국사 1급 시험도 5월에 도전하려고요. 일단 한 걸음 뗐으니 더디더라도 천천히 시작해 볼 겁니다. 이제 시작이거든요. 지금 저처럼 방구석 혼술에 갈 방향을 잃은 분이 있다면 제 이야기를 좀 더 들어주세요. 아직 할 이야기가 많아요. 다음 연재는 아마 저의 불면증이 시작된 '그 일'에 관한 이야기가 될 거 같아요. 


이전 01화 The FooL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