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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Sep 07. 2024

갑작스러운 이별

 개학날이 되었다. 2주의 방학은 금방 지나갔다. 학년은 바뀌지만, 다행히 민석이와는 같은 반이 되었다. 유일한 친구다. 그 외에 다른 친구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친구가 많으면 감정적 소비가 많아져 좋을 게 없다고 말했고, 그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민석이 주변에 누가 있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오른쪽 팔목에는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악몽은 더 이상 꾸지 않았다. ‘뭐 어때.’ 순조로운 나날이었다. 엄마의 기대가 갈수록 부담스럽긴 했지만, 잘하고 싶은 건 우진도 마찬가지였다.

 2년을 다녔지만, 고3이 되어 맞이하는 학교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교문 입구에서 민석이를 만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하며 새로운 반에 들어섰다. 자리가 정해지고, 흔한 고3들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열심히 하는 놈과 그렇지 않은 놈, 이도 저도 아닌 놈.

 첫날인데 자습이 많다. 우진은 자기만의 공부법이 있으니 자습 시간이 오히려 좋았다. 한참 어젯밤 하던 부분을 이어서 풀고 있을 때였다. 1교시부터 내내 엎드려 자던 놈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교실을 한 번 쓱 훑고는 매섭게 내질렀다.

“야, 이 반에선 누가 공부 제일 잘하냐?”

 다들 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하던 일을 이어갔다. 자던 놈은 다시 자고, 공부하던 놈은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누가 제일 잘하냐고, 씨발 내 말 안 들려?”

 의자를 발로 차며 큰소리를 치자, 여기저기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조용히 좀 하지? 다 공부하잖아!”

 가만히 있던 민석이가 그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 너냐? 이 반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게?”

 민석이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다시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그 녀석은 성큼성큼 민석에게로 다가가 민석이의 뒤통수를 갈겼다.

“이 새끼가 돌았나? 뭐 하는 짓이야?”

 민석이는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자, 그 녀석은 뒤통수로 만족이 안 됐는지 민석이의 멱살까지 틀어잡았다.

“내가 말이지. 공부 잘하는 놈만 보면 배알이 꼴리거든. 너 올해 잘 걸렸다. 네 녀석 인생도 꼬이게 해 주지. 내가. ”

 몇몇 아이들이 교무실로 가서 담임을 데려왔다. 담임은 그 녀석의 손을 민석에게서 겨우 떼 내고는 교무실로 데리고 갔다. 우진은 너무 놀라 민석이에게 달려갔다.

“너 괜찮아? 저 녀석 뭐야?”

 우왕좌왕하던 아이들이 민석이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민석은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때, 앞줄에 있던 아이 하나가 후다닥 다가오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형수 저 새끼 유명해. 아버지가 4선 국회의원인가. 뭐 하여튼 유명한 사람이야. 그런데 공부를 지지리 못하니까 맨날 집에서 까이지. 그 화풀이를 학교 와서 한다니까. 작년에 우리 학교로 강제 전학 왔을걸? 전 학교서도 공부 잘하는 놈 강냉이 여러 개 날리고 말도 마. 걔도 아빠가 의사였나 뭐 그랬는데, 다른 애 같았으면 퇴학이지. 그런데, 형수 아버지가 거액으로 합의하고 전학 조치로 끝냈다나 봐. 조심해. 너네 둘 다.”

 그 아이는 나는 어쨌든 말해줬다는 뉘앙스로 빠르게 할 말만 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공부 잘하는 녀석들과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겠다는 투로 말이다.

“괜찮아, 갑자기 당해서 놀랐을 뿐이야.”

 민석은 겨우 진정된 듯했다. 우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자리로 돌아와 앉자, 형수라는 녀석도 교실로 돌아왔다. 웅성거림은 순식간에 침묵으로 변했고, 그의 살기 가득한 눈빛에 교실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긴장하고 말았다.

‘이 중요한 시기에 저런 녀석이 하필 같은 반이야.’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공부 잘하는 놈들에 속하는 우진이다. 우진이랑 민석이가 전교 3등 안에서 서로 왔다 갔다 하니, 형수의 레이다 망에 둘 다 포착되어 있을 것이다. 뒤에 더 들은 바에 의하면 반 배정 후, 아이들 성적부터 물으러 다녔다니 할 말이 없다. 인생 참 나쁘게 산다 싶다. 어떻게든 엮이지 않아야 하는데, 우진은 눈에 띄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민석이 녀석도 가만히 있었더라면 첫날부터 멱살 잡힐 일은 없었을 텐데. ‘정의의 사도냐?’ 우진은 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고3의 중압감은 우진의 반에도 찾아왔다. 아이들은 갈수록 생기를 잃어갔다. 첫날부터 교실을 뒤집었던 형수는 등교하는 날보다 안 오는 날이 더 많았고, 등교해도 늘 잠만 잤다. 모의고사 날이 되었다. 고 3의 첫 모의고사는 입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지표가 된다. 우진도 어제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잠을 설쳤다. 그런데, 등교한 민석의 얼굴이 영 좋지 않다. 사실 며칠째 말도 없고, 수업 시간에도 엎드려 있는 일이 많았다. 간단한 대화 외엔 말수도 줄었다. ‘계속 저러네. 밤새고 공부해서 그러나?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다고 매번 그러더니, 저 녀석도 고3 스트레스인가?’ 우진은 그제야 슬 걱정이 되었다.

“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아무렇지도 않아.”

“너 엄청 얼굴 안 좋아. 보건실 가서 약이라도 좀 먹고 오는 게 낫지 않겠어?”

 걱정하는 우진을 민석이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성적 안 나오면 넌 좋잖아? 아니야?”

 우진은 어이가 없었다. 시작종이 울리는 바람에 더 이상 대화는 불가능했다.

“인마!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해. 너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

 우진은 화가 났다.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시험은 끝났다. 우진은 민석이와 얘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이미 가버렸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저만 고3이야? 왜 안 하던 짓을 하냐고!’ 우진은 화가 나면서 걱정도 되었다. 할 수 없이 학원에서 민석이를 기다렸다. 모의고사 풀이하는 시간이라 꼭 올 거라 기대했지만, 민석이는 결국 오지 않았다. 그 친구가 없는 학원 수업은 처음이었다. 문제 풀이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몇 주 동안 어두운 표정이었던 게 마음에 걸리면서 아침에 본 민석이의 얼굴이 마치 판화처럼 우진의 머릿속에 찍힌 채 사라지지 않았다.

‘아파서 예민했겠지. 별일이야 있겠어.’ 우진은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선 우진은 평소와 다른 어수선한 분위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삼삼오오 모여 술렁술렁했다. 민석이 이외엔 딱히 말하고 지내는 친구도 없는데 이 녀석은 아직이다. 오기만 해 봐라 벼르던 찰나, 앞자리 아이가 조심스레 묻는다.

“너는 아는 거 없어?”

“뭘 말이야?”

"아.....모르는거야? 혹시?"

"뭐냐니까???"

“뭐냐니? 어제 걔 지네 아파트에서 투신했대. 죽었다고. 민석이랑 제일 친한 거 아니었어? 넌 뭘 좀 아나 했더니만.”

 우진은 묵직한 둔기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현실감이 너무 없었다. ‘에이, 아파서 병원이라도 갔겠지. 무슨 농담을 살벌하게 해. 저 자식은.’ 우진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담임이 들어와 민석이 자리에 국화꽃을 놓았다. 수업이고 뭐고, 민석이가 있다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빈소 안은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성민의 웃는 얼굴 위로 검은 띠가 둘려져 있다. 작년 여름께 찍은 사진이다. 웃고 있는데 저렇게 웃고 있는데, 오열하는 민석이 엄마를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나 해맑은 아이였다. 게다가 우진보다 마음이 더 넓었다. 가끔 민석이의 성적이 더 좋으면 우진은 싫은 티도 곧잘 냈는데 그런 우진을 늘 기죽지 않게 끌어주던 아이다. 그런데 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녀석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내가 성적 안 나오면 넌 좋잖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 말은 토네이도처럼 우진의 머릿속에서 무섭게 휘몰아쳤다. 모든 게 자기 탓인 거 같았다. 우진은 자기가 민석이를 죽인 것 같은 죄책감에 휩싸여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 혼자 고열에 시달렸다.

 

 민석의 장례가 끝난 후 학교에서는 진실조사에 착수했다. 민석의 핸드폰에서 형수와 주고받은 내용이 나왔다. 메신저로 지독하게도 괴롭혔다고 한다. 한밤중에도 메신저에 응답을 안 하면 집에 찾아가겠다며 협박했고, 자기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부모와 동생에게 해코지하겠다는 둥, 괴롭힘의 정도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형수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곧 자퇴할 거란 소문이 돌았다. 반 아이들 한 명씩 조사실에서 면담이 시작되었다. 혹시,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는지 개인별로 물었지만, 아는 아이는 없었다. 우진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차례가 되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우진에게 위클래스 문은 넘기 힘든 곳이었다. 한동안 서성이고 있자, 상담 선생님이 직접 우진을 데리고 들어가서 다른 아이들에도 했을 법한 평범한 질문들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참 고민했다는 듯 힘들게 말을 꺼냈다.

“민석이가 형수랑 나눈 카톡에 네 이름이 있었어. 민석이가 너는 지켜주려고 했나 보더라. 너랑 안 친하다고. 자기만 괴롭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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