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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Oct 07. 2024

기대의 늪

 지나간 과거를 가까스로 딛고 오늘은 열심히 살아야지 마음을 먹어도 나도 모르게 내일을 기대하고 마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어쩌면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오늘을 열심히 살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좋아질 거란 희망도 확신도 없는데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냅다 열심히 살아보자. 말은 쉽지만, 아니, 그렇게 살려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내 보지만, 결국 잠들 무렵이면 내일이 과연 오늘보다 나을까 하는 물음을 쉽게 떨치기는 어렵습니다. 


 요즘 제 큰 아이는 수시전형의 굴레에서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고 있습니다. 인생 첫 시험대에 오른 셈입니다. 밝고 긍정적인 아이인데도 불합격될까 봐 걱정이 많은 모양입니다. 열심히 준비했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아이인데도 다른 이의 평가를 객관적으로 받아야 하는 입장에 서니 불안감을 떨치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엄마, 나 다 떨어지면 재수해도 돼요? 아니다, 재수 안 하고 그냥 집에서 알바나 할까요?"

"그러든지~."

"저 받아줄 거예요?"

"받아주야지ㅎㅎㅎ. 걱정도 참. "


 저는 딸아이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해서 꿈꾸는 길을 가기를 누구보다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운이 없으면 쉽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1초 간격으로 사람의 운명이 갈리는 경우도 우린 자주 목격합니다. 대입 또한 그날 실기담당교수를 누구를 만나는지, 준비한 면접에 맞는 질문을 받을 수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게 오늘입니다. 열심히 준비한 대로 탁탁 이루어진다면 운이 좋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너무 잘 아는 저로서는 아이에게 '무조건 잘해라! 꼭 합격해야 한다!'라고 닦달할 수가 없습니다. 불합격했다고 아이가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 계기를 통해 다른 방향을 찾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의지와 하려는 열망만 있다면 말이죠. 무엇보다 저는 딸을 믿습니다. 그래서 좀 돌아가도, 다른 방향으로 가도, 느리게 가도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서두르다 보면 주변을 놓치기 쉽습니다. 오히려, 한 걸음 쉬어갈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아이의 실기시험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캠퍼스 안에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느리게 살자고 마음먹은 이후 하늘을 좀 더 자주 보려고 노력합니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을 하고 제 앞에 나타나는 하늘처럼 내일도 다양한 모습으로 제 앞에 다가올 겁니다. 하늘이 어두우면 우산을 준비하면 되고, 내일이 두려우면 기대를 좀 덜하면 되지 않을까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어떤 내일이 오더라도 "까짓 거! 생각보단 괜찮은데?"라는 배포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에게 이 또한 살아가는 과정일 뿐임을 얘기해 줍니다. 수험생들에게 합격이라는 기쁨은 찰나일 뿐, 닥쳐오는 내일을 준비해야 할 또 다른 오늘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기대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내일은 잘 될 거야. 내년은 잘 될 거야."가 아니라 "내가 오늘 뭘 하면 최선일까?"를 생각하는 오늘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말하는 저도 잘 되지 않는 것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오류를 범하더라도 최선의 하루를 매일 살아내다 보면 기대라는 막연하고 불안한 내일이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무기가 생길 겁니다. 어떤 내일이 오더라도 막아낼 수 있는 자신만의 방패말입니다. 좀 돌아가면 어떻습니까? 좀 더디 가면 또 어때요? 어느 작가님의 말처럼 멈추지만 않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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