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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ssion Azumma Mar 19. 2024

지금 죽으나 더 살아 보고 죽으나

결국 사람은 한 번은 죽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신과 진료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방문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선생님입니다.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으시려는 선생님의 눈빛이 감동스러워 집에 있는 숟가락 개수까지 말할 정도입니다. 처음에 닫혀있던 제 마음이 어느 순간 풀려서 선생님을 신뢰하게 되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지난 듯합니다. 처음엔 속을 다 보일 수가 없었는데 이젠 사춘기 딸아이얘기까지 스스럼없이 하게 됩니다.


"꾸준하게 운동하고 계시죠?"

"네 날 좋을 때 등산 계속하고 있어요"

"조만간 약 그만 드셔도 될 거 같습니다. 처음에 오셨을 때랑 표정이 정말 달라요"

"그래요? 그래도 아직은..."

"네네 천천히 하자고요"


접수데스크 간호사선생님들이 엄청 친절하시거든요. 그분들도 제 변화를 얘기하시더라고요. 조만간 못 뵙는 거 아니에요? 라며 혈색이 다르다고 말입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니 오롯이 서 있는 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쓰거나 아이들에게 내 미련을 대신 심거나 남편에게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됨으로써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보게 됩니다.

저는 당분간 달팽이로 계속 살게 될 거예요.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매일 내딛는 걸음의 수와 보폭은 조금씩 넓어지겠죠? 달팽이도 언제나 아기이진 않을 테니까요. 달팽이가 자라나는 속도에 맞춰 저도 저라는 사람의 속도를 천천히 맞춰가겠습니다.


잠시 동생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얼마 전 동생이 청약 당첨된 집으로 이사한 후에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니야~ 내 그때 죽었음 어쩔 뻔했노. 지금 이렇게 좋은데 살려줘서 고맙다. 그때 죽었더라면 지금 이 시간은 아예 없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다리가 후들거린다.  너무 행복하다."


동생의 긴 이야기는 제 첫 브런치북에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한 번 더 죽을 고비를 넘긴 동생은 결국 본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혼자 둘 수 없게 되어버렸거든요. 부모님이 다 큰 자식을 다시 품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초반엔 마찰도 많았습니다. 같이 사니 마니 속 꽤나 썩었습니다. 그래도 서로가 포기하지 않았고 그 시간들을 하루하루 변화하며 버텨냈습니다. 그렇게 새 집에 다 같이 이사했고 지금 셋 다 만족한 생활 중이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제 동생은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물론 저와 부모님과 동료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지금 삶을 놓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면 주변에 손을 뻗어보세요. 누군가 당신의 손을 잡아줄 겁니다.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사람은 한 번은 죽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나를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세상이 힘들다 생각되어도 이 고통은 벗어날 수 있습니다. 조금 더디고 힘들지라도 그날그날에 진심이다 보면 어느새 세월은 훌쩍 지나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달팽이보다도 못 한 사람입니다. 흔한 미물들도 나름의 살아갈 이유를 찾으며 자기만의 시간에 최선을 다합니다. 오늘 먹은 풀잎의 색깔이 초록색인지 하얀색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달팽이는 열심히 먹고 열심히 뱉어냅니다.


이제 저는 이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오늘은 타로카드를 열지 않습니다. 이제 뭘 해야할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거든요. 달팽이로 살기 위해 스터트를 한 이상 매일 열심히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뭘 했는지 아무런 흔적도 안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달 후, 1년 후, 10년 후엔 시작점이 어디었더라 고민하는 시간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저처럼 내가 누구인지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의 나에게 집중해 보세요. 그것부터가 내가 포기하고 싶었던 어제의 나와 이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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