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만인을 위한 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한 사람의 신은 누구나 있습니다.
이상 [날개]
태생이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나 봅니다. 공부가 이렇게 재밌는 걸 30년 전에만 이라도 깨우쳤더라면 인생이 좀 달라졌을까요? 놀기 바빠서 F로 날려먹은 교직수업도 아쉽고, 젊었던 그때 외국에도 좀 가고 큰 세상을 알려고 노력했더라면 지금 좀 다르지 않을까? 늘 그렇지만 인생은 후회의 나날입니다.
육아에 지쳐서 늘 쉼을 외치고 살았지만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생각보다 많은 자격증들이 제 손에 있습니다.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냥 이끌리듯 이거 공부해 볼까? 생각하면 시작해야 합니다. 성질머리가 그렇습니다. 흐지부지한 건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그 텀이 짧아요. 하나가 끝나면 다음 걸 시작하는 데까지 또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걸 왜 한 건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쩌다 보니 민간자격증이 수북하게 쌓였어요. 민간자격증이라고는 하지만 공부 많이 해야 합니다. 사실은 쉽게 딸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꼼수는 부리지 않아요. 정확하게 공부하고 정직하게 시험 쳐서 제대로 받아낸 것들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저 많은 것들을 따게 된 걸까요?
일단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더 이상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그냥 한 순간 열심히 산 적도 있었다 정도로 제 마음속 박물관에 저장해 두려고 합니다. 대신 세상 보는 눈과 부동산에 대한 지식을 얻었으니 그 또한 저에겐 필요한 공부였을 겁니다. 미신에 지쳐서 타로를 공부하다가 아예 명리학 공부도 해버렸어요. 그런데 명리학은 진짜 어렵더라고요. 아직도 제 사주조차 볼 엄두가 안 납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언젠가 제 아이의 진로 정도는 고민해 줄 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지 않겠습니까?
최근에 글 쓰기 지도사 1급이랑 독서논술 지도사 1급도 땄어요. 저는 일어일문학이 전공인데 국문과 학사편입까지도 사실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좀 가르쳐 볼까 하고요. 일단 저희 아이들이 실험대상이 되겠죠? 그다음 다른 집 자제분들까지도 감히 욕심을 내어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저는 5월에 있을 한국사 검정 시험에도 도전할 예정이고 철학 공부에 논술 공부에 고3 때보다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하고 있있습니다. 일단 저 스스로가 남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많은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느라 하루가 아주 바쁘게 흘러갑니다. 5월 한국사 시험이 끝나면 현재 국어 강사인 친구에게도 코칭을 받으려구요. 각 학년 국어책과 하브루타 수업법, 인문학적 지식을 늘리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곧 다가올 제 미래를 준비하고 있어요.
목표가 생기니 그동안 왜 이 자격증들을 따면서 공부를 했을까? 구색이 갖춰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불면증의 원인을 알고 싶어서 심리학에 관한 책만 대략 100권은 넘게 읽었을 겁니다. 실제 심리학과 학생들 교재까지 섭렵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다 타로와 명릭학을 접했죠. 저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글을 가르치면서 말하고 쓰는 기술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더불어 아이들과 부모님의 심리상담과 코칭까지도 가능하다면 해 볼 생각입니다. 갈 길은 멀지만 목표가 생기니 그동안 헛 산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이제 제가 벌어야 하거든요. 남편이 언제 직장을 다시 다니게 될지 아직 정해진 바가 없기에 이제 제가 나서야 할 차례입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 아이들만큼은 제가 가르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밑져봐야 본전이니까요. 아니, 적어도 저란 인격체가 조금은 완성되어 갈테니까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 보다야 낫다. 제 인생관과도 맞아떨어지구요.
타로가 참 신기합니다. 할 수 있다 마음을 먹고 뽑으니 타로 카드도 제 마음을 아는 듯 반응해 줍니다. 물론 제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합니다. 저에겐 밝은 미래가 있고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주변에 도사리는 위험도 있겠죠. 이제 먹을 만큼 먹은 나이와 그 간의 경험으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끔은 왜 나에겐 행운이 따르지 않을까. 어디 있는지도 모를 신을 원망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신은 늘 제 옆에 있었습니다. 건강하게 아이 셋을 가지게 해 주셨고 아프지 않은 몸과 다시 시작할 열정을 늘 저에게 불어넣어 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고요. 새삼스레 모든 것에 감사해졌습니다.
저만의 방식으로 교안을 만들고 질문지를 만들어가며 왠지 모를 쾌감을 느낍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보다 지금 더 잃을 건 없다. 해보자! 적어도 나의 신만큼은 나를 응원해주지 않을까? 스스로 나는 아무 것도 못해라고 생갹했던 과거의 저는 이제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이뤄냈는데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짧은 열정 뒤 긴 휴식기를 가졌었다면 이제는 매일 열정을 가지고 한 템포 쉬어가며 나아가면 될 일입니다. 대신 급하지 않게 천천히 단단히 다지면서 앞으로 나아가야겠죠? 이제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거든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기에 매일을 아끼며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저에겐 저만의 신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