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 인터뷰 中
달팽이로 살고자 마음먹은 날부터 저는 "나"로 살기 위해 매일을 노력 중입니다. 누구의 딸, 누구의 언니, 누구의 와이프, 누구의 엄마. 이런 수식어를 하나씩 "나"보다 뒤로 두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물론 없어질 수 없는 내 이름입니다. 영원히 남을 것이며 내가 죽어도 따라다닐 이름이죠. 하지만, 그보다 내 이름 석자가 먼저 생각나는 삶, 이제 얼마 남았을지도 모를 내 인생에서 한 번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얼마 전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도 내려고 미용실을 찾았습니다. 잠시 짬이 나 잡지를 뒤적이는데 스쳐지나가듯 윤여정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같은 페이지를 반복하며 읽었습니다.
"나에게 자존감은 중요하다. 친절과는 또 다르다. 친절과 비굴을 혼돈하는 사람이 있는데, 난 친절한 사람은 못 돼도 비굴한 사람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누구한테 잘 보여 뽑히는 게 싫었다. 그냥 잘해서 뽑히고 싶었다"
되뇌며 읽다 보니 내가 친절과 비굴을 혼돈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만의 뚜렷한 잣대와 세계관을 갖는다는 게 인간에게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오는지 새삼스럽게 뇌리에 꽂혔습니다. 아마도 윤여정 선생님은 자신의 보이지 않는 미래의 어느 모습을 세팅해 놓고 자신을 롤모델로 삼고 사셨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내가 꿈꾸는 삶.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고 나 스스로 최선의 노력을 한 후에 얻어지는 내 모습과 내 커리어. 그렇게 당당하게 얻어 낸 결과라 자연스럽게 본인을 껴안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나?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며칠을 생각해 보니 역할극에만 충실하게 살아왔던 거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지금 당장만 살아온 셈이죠.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이런 사람이니 그냥 최선만 다하자. 현실은 있는데 미래가 없었습니다. 인생을 터널에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긴 터널을 지나가다가 멈추면 그곳은 동굴이 되는 것이고 언젠간 끝이 날거라 믿고 계속 나아가면 결국 터널의 끝을 마주하게 됩니다. 남편이 있으니 내 인생에 터널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고속도로 아니면 좁은 시골길, 늘 앞이 트인 곳만 달려오다가 인생에서 터널과 굴을 몇 년간 경험하다 보니 걱정은 끊이질 않습니다. '괜찮아 잘될거야' 주기도문처럼 외우고 있지만 희망적이다가 절망적이기릴 아직도 반복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이 터널의 끝이 있음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킬로가 남았는지 안내판도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터널에 있다 보면 주저 않고 싶어지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 자신을 괴롭힙니다. 인생에서 내가 우선이었던 적이 없었기에 내가 나아가지 않으면 이 터널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던 겁니다. 남편에게 얹혀서 남편이 가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 삶을 살아왔으니까요. 하지만, 그도 나도 지금은 터널 속에 갇혀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또 서로에게 길라잡이가 되어주며 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남들은 1년 만에 또 누군가는 10년 만에 터널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4년째 못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쯤 이 긴 터널의 끝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도 한 발이지만 내디뎌 봅니다. 책을 읽고 배우고 스스로 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10년 뒤의 제 모습을 상상합니다.
타로카드가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네요. 저의 내적인 힘이 결코 약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물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에게 너무나 지지가 되는 카드의 내용을 흘려보낼 수가 없네요. 나 자신이 내 이름 석자로 우뚝 설 수 있는 그날, 나도 윤여정 선생님처럼 나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앞으로의 나 자신에게 기대가 됩니다.
10년 뒤 제 브런치엔 어떤 글이 올라오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