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씨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을 보자 수지는 한숨이 내려앉았다. 오늘 엄마를 저 푸른 하늘로 보내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담당의가 마지막을 함께 할 가족들을 다 오라고 한 상태다. 오빠 내외가 과연 올까? 서로 연락을 안 한 지 오래되었다. 메시지를 보냈으나 답은 없다. 수호라도 제시간에 와야 할 텐데…. 호출이 오면 중환자실 어딘가에서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맑고 구름 한 점 없는 날, 우리 엄마는 하늘로 갈 예정이다. 엄마도 좋을까? 당신 가시는 날이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어서.
수지는 현실적인 생각도 동시에 해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엄마의 사후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엄마와 둘이 함께 산 지 1년 남짓…. 수지는 이제 진짜 혼자가 되는구나 홀가분하면서도 마음 밑바닥에 자리 잡은 죄책감도 마주해야 했다. 수지는 급히 핸드폰 검색창을 열었다. 엄마가 있는 병원의 장례식장은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대부분 부의금으로 장례식비를 충당한다고는 하지만, 수지는 일가친척도 없고, 회사 사람 몇몇과 친구들 말고는 부를 사람도 없었다. 장례식장 한 단어만 넣었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줄 서는 곳들을 보니 오히려 더 막막해졌다.
A 장례식장, 가격이 비싸다. B 장례식장도 비싸다.… 그렇게 하나씩 비교하며 보던 중에 기이한 장례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장례식장의 이름도 그냥 장례식장이다. 비용이니 뭐니 그런 설명은 고사하고 광고 문구 하나와 전화번호만 눈에 들어왔다.
“곡할 시간에 고인(故人)과 추억을 나누세요.”이게 무슨 말일까? 으레 상주들은 조문객이 오면 아이고 아이고를 하는 게 그동안 다녀 본 장례식장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곡을 하지 말라니. ‘별 희한한 마케팅을 하네.’ 싶으면서도 눈은 거기에 멈춰 있었다. 수지는 낯선 번호를 그녀의 전화기로 옮겨 버튼을 눌렀다.
“네, 장례식장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장례 절차 문의 좀 드리려고 하는데요.”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일반 장례식장이 있고 이상 장례식장이 있습니다만, 어느 쪽으로 연결해 드릴까요?”
“가격별로 다른 건가요? 방 크기라든지?”
“아니요, 장례 절차가 다릅니다. 보통 알고 계시는 장례식장도 있고, 저희는 이상 장례식장이라는 곳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지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이상 장례식장이란 게 뭐죠?”
“제일 궁금하신 거부터 말씀드리자면, 비용이 저렴합니다. 술과 음식을 제공하지 않아요. 가장 많이 나오는 비용이 식대거든요. 조문객을 위한 공간과 상주분들을 위한 공간이 떨어져 있고, 날짜는 하루부터 최대 닷새까지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수지는 통화 중 대기로 들어오는 번호를 보았다. 병원이다.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급하게 전화를 끊은 수지는 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수호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거의 다 왔다기에 중환자실로 바로 오라고 말하고, 뛰다시피 엄마에게 향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무거운 발걸음이다. 분명히 발은 뛰고 있는데, 납덩어리 서너 개는 달아놓은 듯 한 발 한 발 떼는 게 버거웠다. 엘리베이터는 또 얼마나 느린지. 8층 중환자실 앞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고 엄마의 이름을 댔다. 끄트머리 어느 방으로 안내받았다. 병실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담당의는 오늘만 다섯 번째라는 식의 감정 없는 말투로 엄마의 상황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김미순 님의 생체 기능은 거의 정지되었고, 심장 기능만 약물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마 30분 이내로 숨이 멎게 될 겁니다. 마지막 인사 나누세요.”
길게 설명해 주었지만 수지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마지막 30분이라는 말만 귀에 들어왔다. 엄마 손은 아직 따뜻하다. 오래 잠들어 있어서 그런지 얼굴도 평소보다 좋아 보였다. 불러도 대답 없고, 손을 잡아도 내 손을 거머쥐지 못했다. 죽음을 이렇게 마주하는 건 처음이다. 아빠의 마지막은 전해 들은 게 전부였다. 서른일곱 살이나 되었지만, 30분 내로 죽게 되는 빈약한 몸뚱이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비현실적인 감각으로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고 엄마의 얼굴을 만져보고 엄마의 귀에 대고 “이제 편하겠네. 미순 씨.”라고 말하는 동시에 드라마에서나 보던 빨간 줄이 모니터에 떴다. 그러자 담당의가 기다렸다는 듯 다시 들어왔다.
“김미순 님, 10월 10일 오후 5시 15분에 사망하셨습니다.”하고는 짧게 묵념했다. 현실 같지 않았다. 잠들어 있는 엄마에게 흰옷을 입은 남자가 사망선고를 하고 간호사는 옆에서 그의 말을 어딘가에 받아 적었다. 이제 10분이 지났을 뿐이다. 그리고, 아직 수호가 오지 않았는데….
“선생님, 우리 막내 아직 안 왔어요. 안 왔다고요!!”
수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야 엄마가 죽어 버렸다는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수호는 사망선고가 떨어지고 5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따뜻한 엄마를 만지고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들에게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두 남매는 흰 천에 덮여 중환자실을 나가는 엄마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해. 누나?”
“모르겠어. 나도.”
“여기 장례식장에 모셔야 할까?”
“알아봤는데 여긴 너무 비싸더라. 아, 거기 다시 전화해 봐야겠다.”
수지는 최근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장례식장입니다.”
“아까 전화했던 사람인데요. 일반 장례식장 말고, 다른 곳이 있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곳으로 모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 계시는 병원 알려주시면 저희가 차량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상주분들은 지금 같이 계시나요?”
“네, 두 명 있어요.”
“같이 타고 오시면 되겠네요. 도착하시면 더 자세히 설명드릴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수지는 수호의 손을 잡았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캄캄했다. 장례식장을 잡긴 했는데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인지, 엄마의 마지막을 너무 초라하게 보내는 건 아닌지, 내심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렴하다는 말에 결정했다. 일평생 변변찮게 산 엄마를 마지막까지 초라하게 보내는구나 싶어 서글프고 미안했다. 하지만, 마음과 별개로 현실은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고 갖가지 비용들을 정산하느라 바빴다. 30분 남짓 기다렸을까? 엄마를 실은 사설 앰뷸런스에 둘은 나란히 올라탔다. 엄마는 흰 천을 곱게 감고 있었다. 감히 만져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 좁은 공간에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한다. 복잡한 감정들이 몰려왔으나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건장한 남자들이 와서 예의를 갖추어 엄마를 모셔갔다. 마흔쯤 되었을까? 검은색 슈트를 스리피스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우리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상심이 크실 텐데 이런 복잡한 문제를 또 겪으셔야 해서 힘드시겠습니다만, 과정이니까요.”
“네.”
수지는 뒷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비용이 정확하게 얼마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안내받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장례식장은 이전에 다녀 보신 곳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용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짜를 정하셔야 하는데, 하루부터 닷새까지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수지는 수호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익숙한 3일이 좋을 것 같았다. 수호도 같은 생각이었다. 비용은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저렴했다.
“네, 3일로 하셨습니다. 3일째 되는 날 화장장 예약까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주세요. 이곳은 조문객이 방문하는 곳과 상주분들이 머무는 곳이 다릅니다. 그리고, 음식과 술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상주분들은 알아서 생전 고인과 즐겨 드셨던 걸 드시거나 1층 식당에서 해결하시면 됩니다. 조문객을 꼭 받으시려면 별도로 준비되어 있는 방명록에 추모의 글만 남기게 하시고, 그분들과는 장례가 끝난 후 따로 만나십시오. 조의금은 온라인으로만 가능합니다. 부고를 보낼 때 본인 계좌번호를 첨부하시면 되겠죠? 근조화환도 여기는 놓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 되십니까?”
조문객이 와도 육개장 한 그릇 대접할 수 없다? 음식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듣긴 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찾아온 조문객을 만나지도 못한다고? 그걸 사람들이 이해나 해줄까? 내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스리피스 남자는 재차 강조했다.
“일반적인 장례식과는 다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걸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스리피스 남자는 노트북을 갖고 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수지와 수호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수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보낸다고요? 3일을?”
“네, 그렇습니다. 처음엔 길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중간에 날짜 연장은 힘드니 변경을 원하시면 지금 하셔야 합니다. 대부분 연장해달라고 하시거든요.”
“그럴 리가….”
수지와 수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영상을 다시 바라보았다. 더불어, 조문객을 위한 맞춤 메시지 문구를 알려주었다. 모든 게 낯설고 기괴했지만, 이미 엄마는 이곳 어딘가에 모셔져 있고, 이제 와서 다른 곳을 찾아갈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부고를 보낼 만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가족분들은 두 분뿐인가요? 어머님께서 보고 싶어 할 사람들이나 아주 가까운 분들은 상주분께서 원하시면 상주 방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수지는 오빠네가 생각났지만 일단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일어나시죠. 상복은 굳이 안 입으셔도 됩니다. 혹시나 어머님이 좋아하셨거나 추억할 게 있으면 자유롭게 가지고 오셔도 됩니다. 노래하셔도 되고 춤을 추셔도 됩니다.”
‘엄마가 좋아하던 거….’수지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노래? 춤? 그럴 리가…. 수지는 알겠다고 대답만 하고 그가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서늘했다. 그는 벽에 걸려 있는 패딩점퍼를 가리키며 추우면 입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 안에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밖과 달리 온기가 있었고, 가지런히 정리된 이부자리와 욕실 겸용 화장실이 있었다. 수지와 수호는 그가 나가고 난 후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빈소도 없다. 그야말로 빈방이었다. 아까 본 영상대로 여기서? 수지는 덜컥 겁이 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커다란 침대 같은 것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영상에서 본 그대로였다. 엄마였다. 그들의 엄마는 중세 시대 여왕 같은 옷을 목까지 올려 입고 레이스 장갑과 꽃신을 신었다. 얼굴은 곱게 화장을 한 채로 잠들어 있었다. 아무도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무릎을 꿇으면 닿을 정도의 높이였다. 향기로운 꽃으로 장식된 단상 위에 누운 그녀는 너무나 온화하고 편안해 보였다. 단상은 드라이아이스라도 넣어둔 듯 차가웠다.
‘이 단상과 이 방 온도 덕에 시신 보존이 5일까지 가능한 거구나. 그나저나 엄마랑 이 상태로 3일을 어떻게 보내지?’
아무리 엄마라 해도 죽은 사람이다. 이렇게 3일을 보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다. 수지가 머뭇대는 동안 수호는 거침없이 엄마에게 다가갔다.
“누나, 나 엄마 이쁜 얼굴 오랜만에 봐. 이렇게 화장한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머리를, 그녀의 얼굴을, 그녀의 손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엄마를 끌어안고 맥없이 무너졌다. 엄마의 손을 한없이 주무르며 “왜 이렇게 굽었어. 왜 이렇게 굽었냐고!”
수호는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서럽게 우는 수호를 보고 있으니, 수지도 덩달아 울음이 터졌다. 수지는 엄마와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 올랐다.
“너 그거 기억나? 우리 어릴 때, 엄마가 일 마치고 시장 들리면 사 오던 찐빵. 오빠는 그딴 거 안 먹는다고 골내고, 우리 둘이 그거 서로 먹겠다고 싸웠잖아.”
수호는 울먹거리다 말고 수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기억나. 맛있기만 했는데, 그거 말고도 옥수수도 사 오고, 또 뭐였더라? 자주 사 온 게 있었는데….”
“닭발!”
둘은 동시에 말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 닭발! 처음엔 어떻게 먹냐고 이런걸 왜 사 왔냐고 투덜댔는데 나중엔 없어서 못 먹었어.”
“맞아. 그랬어. 말 나온 김에 우리 닭발에 소주나 마실까? 어차피 오늘 잠도 안 올 거 같은데.”
그새 밤 10시가 넘었다. 수호는 배달앱을 켜고 순식간에 주문까지 마쳤다. 옹기종기 앉아서 닭발 먹던 때가 생각났다. 유일하게 엄마가 행복해 보이던 때이기도 했다. 아빠가 집 나가고 몇 달 안 되어 엄마는 남편의 애인에게 그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졸지에 혼자가 된 엄마는 세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경력 단절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렸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보험 영업을 했지만, 내향적인 엄마 성향에 안 맞았는지 1년을 못 버티고 그만두었다. 그 뒤로는 주로 아파트와 건물을 돌며 청소일을 했다. 오전에 아파트 청소를 하고 야간에 건물 청소를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허리가 아프고 손마디가 휘어도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지지리 궁상맞은 한 여자의 일생이다. 수지는 그쯤에서 생각을 멈췄다. 주문한 닭발과 소주가 왔다. 수지와 수호는 먼저 엄마에게 한 잔 올리고 닭발도 따로 담아서 앞에 두었다. 단상 위에 마치 그런 걸 놓아두라는 듯한 공간이 있었다. 엄마와 ‘짠’도 해가며 남매는 술잔을 기울였다.
“누나, 엄마랑 다 같이 있어 본 거 진짜 오랜만이지 않아?”
“그러네, 엄마랑 같이 살아도 내가 늘 늦게 들어가고, 너도 지방에 있으니까, 넌 혹시 강수영이랑 연락하니?”
“형이랑 연락 안 한 지가 언젠데. 엄마 죽었다고 해도 안 올 거야. 그 인간.”
수호는 화가 난 듯했다. 엄마가 힘들게 번 돈으로 대학 나오고 결혼까지 해놓고, 엄마 마지막 재산인 집까지 잡아먹었다. 수지와 수호는 그들의 오빠와 형에게 억하심정이 많았다.
“엄마! 엄마는 왜 오빠한테 집을 덜컥 내준 거야? 왜?”
수지도 골이 났다. 편안하게 누워 있는 엄마를 보니 더 화가 치밀었다. 술기운을 빌어 엄마에게 떼를 쓰고 싶었다.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갑자기 폭발해서 대답 없는 엄마에게 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었다. 수호는 어느새 흐느끼며 들썩거리는 누나의 어깨를 뒤에서 꼭 안았다.
“누나, 형한테 영상이라도 보내주자. 우리한텐 미운 사람이지만 엄마에겐 귀한 아들이었잖아.”
수지는 눈물을 멈추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마지막에 누가 가장 보고 싶었을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대답하라고 어깃장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그래, 오든 말든. 이제 우리랑 더 만날 일도 없어.”
수호는 엄마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서 형에게 보냈다. 역시나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했던 게 있었을까? 아, 엄마 핸드폰. 거기에 뭐라도 있을지 몰라. 한번 보자.”
수지는 병원에서 받은 엄마의 유품에서 오래된 스마트폰을 찾았다. 사용을 안 해서인지 꺼져 있었다. 충전기에 연결하고 전원을 켰더니 바탕화면에 어릴 때 세 남매의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거 우리 몇 살 때 사진이야? 완전 꼬맹이 때 같은데? 이런 사진이 있었나?”
“나 세 살쯤 되어 보이지 않아? 누나는 한 대여섯 살?”
바탕에 깔린 거라고는 전화 기능과 카톡, 그리고 잡다한 앱들만 보였다. 먼저, 전화 기록부터 봤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진 게 열흘 전이다. 그날의 기록은 없었다. 그 전날, 수지와 전화를 한 번 했고, 수호랑도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였다. 수지에게는 저녁에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고, 수호에게는 밥 잘 챙겨 먹고 다니라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끝내 받지 않은 한 통의 전화.
“강수영, 이 자식은 엄마 마지막 전화까지 씹어먹었네. 나쁜 자식.”
수호는 동영상을 보낸 걸 이내 후회했다. 전화기를 이리저리 보다가 엄마 핸드폰이 자동으로 녹음 설정이 되어 있는 걸 알았다. 음성 메시지를 재생시켜 보았다.
‘수지야, 오늘 저녁에 너 좋아하는 청국장 할까? 아니야, 먹고 들어갈 거야. 엄마 먼저 먹어. 그래그래. 알았어. 너무 늦지 않게 조심해서 와.’
다음은 수호와의 통화였다.
‘수호야. 엄마가 돈 조금 보냈어. 맛있는 거 사 먹어. 미안해. 많이 못 보내서. 엄마, 나 바빠. 알겠어. 나중에 확인할게. 끊어.’
둘은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전화 기록은 수지와 수호, 그리고, 받지 않는 강수영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걸려 온 보험 영업 전화도 엄마는 친절하게 받았다. 단조로운 그녀의 삶이 전화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 엄마 많이 외로웠겠네. 일찍 들어가서 말동무나 해줄걸.”
수지는 또 목이 메여 왔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수호는 계속 엄마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나, 엄마 클래식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어? 유튜브 구독이 다 피아노 음악 쪽이야.”
“그럴 리가. 엄마가 음악 듣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수호가 말한 것처럼 엄마의 핸드폰은 온통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으로 알고리즘이 맞춰져 있었다. 수호는 그녀가 즐겨 들었을 것 같은 채널을 골랐다. 순간이지만, 엄마의 얼굴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세 시를 넘었다. 한두 시간 지난 거 같은데 시간은 금방 흘러버렸다. 엄마의 핸드폰에서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쇼팽의 녹턴이었다.
“아! 생각났어. 어릴 때 엄마가 울던 거. 아빠가 집 나가기 전에. 그리고, 그때 아빠가 갖고 있던 CD 재생기를 집어던진 것도.”
“그런 일이 있었어?”
“응. 아빠랑 바람 난 여자가 피아노학원 원장이었어. 맞아, 틀림없어. 그때 나 일곱 살 땐가 그랬는데, 그걸 잊어먹고 있었네.”
수지는 엄마가 피아노곡을 왜 들었을까 이해하려고 해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원래 좋아했는지, 바람난 남편의 여자에 대한 질투였는지, 열등감이었는지. 수지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그 여자가 그렇게 미웠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왜 혼자 끙끙댄 거야. 나한테 욕이라도 하지. 바보 같이.”
술기운이 떨어지자 추워졌다. 벽에 걸려 있던 점퍼를 껴입고 수지와 수호는 나란히 기대어 잠이 들었다. 이부자리가 있는 따뜻한 방을 두고, 두 남매는 서로에게 기댄 채 엄마와 함께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엄마는 어제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중간에 관리자가 와서 엄마의 얼굴화장을 한 번 수정한 게 다였다. 여전히 평화로운 모습이다. 회사에 나가지 못하니, 어젯밤 담당 부서장에게만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스리피스 남자에게 안내받은 메시지를 그대로 활용했다.
‘어머니가 소천하셨습니다. 가족끼리 조용히 지내고 싶어서 따로 부고는 전하지 않습니다. 혹여 근태 처리에 필요하다면 출근 시 사망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운해 하지 말아주시고, 어머니와의 마지막을 깊이 애도하고 싶어서임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밤새 부고 소식에 놀랐는지 부서장은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조의금을 보내왔다. 자기는 손님 치르느라 정작 고인과는 제대로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내용도 함께. 그리고, 부서 직원들이 너나없이 조의금을 보내왔다. 수호 회사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기분 나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경험을 후회하는 내용이 많았다.
수지는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장례식장을 나왔다. 수호도 나름대로 엄마에게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집으로 간 수지는 앨범과 엄마가 즐겨 입던 옷.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던 과자들과 수지와 수호가 먹을 것들을 사 들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수호가 복도에 나와 있었다.
“왜? 엄마 혼자 두고 나왔어? 너 혹시 무서워서?”
“아니, 누가 왔어.”
“누가 와. 아무한테도 안 알려줬는데…. 혹시, 강수영 왔니?”
“응.”
수지는 방으로 달려갔다. 그는 엄마 앞에 철퍼덕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오라고 보낸 거 아니야. 너도 자식이니까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보낸 거지. 엄마 쓰러졌다고 해도 답장도 없고, 엄마 죽었다고 해도 말 한마디 없더니 왜 온 거야? 왜? 죽어서 엄마 만나면 혼이라도 날까 봐?”
수지는 달려가서 오빠를 밀쳤다. 몇 년 만에 본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결혼식 이후에 한 번 이나 봤을까? 벌써 10년 가까이 흘렀다. 그런데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엄마 집까지 해 처먹고, 왜 이런 꼴로 앉아 있는 건데? 올케언니는 왜 안 왔어? 오려면 같이 와야지. 왜 혼자 이러고 왔냐고? 대답 좀 해 봐!!”
수호가 수지를 말리지 않았다면, 수지는 오빠의 따귀라도 한 대 후려칠 기세였다.
“누나, 엄마 앞이야. 진정해.”
수지는 갖고 온 짐들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엉엉 울었다. 어제 그만큼 울었는데도 눈물은 마르지 않았나 보다. 다 같이 울었다. 하지만, 우는 사연은 다 달랐다. 수지는 오빠가 미워서, 수호는 엄마가 그리워서, 그리고, 수영은 죄책감이었다.
“이제 말해봐. 어떻게 된 건지.”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오빠, 뭐냐니까?!!”
재차 다그치자, 수영은 알아듣기 힘든 말투로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벌 받은 거야. 엄마 힘들게 하고. 네 말처럼 곧 엄마 만날 건데 무섭더라.”
그는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았다. 올케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고 이혼서류만 보내왔다고 한다. 한동안 술로 살았고, 최근에 초기 파킨슨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마흔 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엄마가 알면 당장 나 보러 올 거 같아서 일부러 연락 두절하고 살았어. 이 꼴로 나타날 수가 있어야지. 미안하다. 내가 정말 미안하다.”
수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처럼 엄마가 알았더라면 이대로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엄마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돌아가실 줄 몰랐을 테고 말이다.
잠자코 듣던 수호는 수지가 챙겨 온 앨범을 펼쳤다. 그곳에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녹아 있었다. 얼마나 보고 또 봤는지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엄마의 외로움이었겠지. 그리움이었겠지. 세 남매는 엄마를 만지고 또 만졌다. 이미 엄마의 몸은 뻣뻣해져서 쓰다듬는 거 외엔 할 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부러질 것 같았다. 앙상하게 메마른 엄마의 몸은 그녀의 삶 그 자체였다. 그래도 함께 있어 좋았다.
“누나, 이 사진들 내가 핸드폰으로 다 찍었어. 이거 엄마랑 같이 보내주자. 내가 사진은 다시 인화할게. 형, 그래도 되지?”
수영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수지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엄마가 클래식 음악 좋아한 거 알고 있었어?”
어눌하긴 하지만, 아직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아버지 바람난 여자, 피아노학원 했었어. 엄마가 한 번 찾아가기도 했고, 나도 우연히 보게 된 거지만.”
“엄마! 찾아갔으면 간 김에 엎어버리지 그랬어!!!”
수지는 답답한 마음에 대답 없는 그녀에게 또 다그쳤다.
“엄마가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쇼팽 들은 거.”
“맞아. 형, 엄마 유튜브 채널이 거의 쇼팽이야. 아무도 몰랐어. 엄마가 음악 듣는 거.”
“내가 알아버렸거든. 엄마가 듣는걸. 그때부터 몰래 듣지 않았을까?”
“우리 셋 다 참 나빴다. 우리라도 엄마 편 좀 들어 줄 걸. 하나같이 이 모양이니. 그나마 수호 네가 제일 낫다. 오빠도 이 꼴이고, 나도 이혼하고.”
“엄마는 누나 이혼한 거 좋아했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수지는 눈이 똥그래져서 수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처럼 안 살아서 다행이라고. 나한테 그랬거든. 엄마가.”
“그런 줄 알았으면 엄마한테 그놈 욕이라도 실컷 하는 건데. 아쉽네. 엄마! 그 자식도 바람피웠어. 그래서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 나 잘했지?”
곱게 누워있는 엄마는 잘했다고 했다. 자기처럼 당하지 않고 먼저 거절해서 잘했다고. 당신 딸의 홀로서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세 남매는 엄마 앞에서 어릴 적 우애 좋던 모습으로 앉아서 도란도란 두서없는 얘기들을 했다. 그때 내 옷을 네가 가져갔니 어쨌니, 엄마한테 일렀어야 하는데 아쉽다니 어쩌니, 욕심쟁이였던 수영에게 왜 그랬냐고 나빴다고도 했다. 장난꾸러기들처럼 엄마 앞에서 밤이 새는지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잠시 졸기도 하고 또 일어나 엄마를 쓰다듬다가 울고, 또 웃다가 울다가…. 어릴 때 엄마가 불러주던 동요도 몇 곡이나 같이 부르며 율동도 했다. 다 큰 자식들의 재롱잔치였다.
3일째 아침이 되었다. 스리피스 남자가 면담을 요청했다. 수영은 엄마 옆에 있겠다고 하고, 수지와 수호가 그를 만났다.
“어머님과의 시간은 어떠셨나요?”
“연장은 정말 안 되는 건가요?”
수호는 하루만이라도 더 엄마와 있고 싶었다. 스리피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디로 모실 건지 물었다.
“아…. 아직 생각을 못 했는데, 납골당을 알아봐야겠죠?”
“많이들 그렇게 하시죠. 수목장도 하시고.”
장례식 이후 화장장과 정해진 납골당 또는 수목장이 있는 곳까지 모시는 게 그들의 마지막 일이라고 했다.
“누나, 수목장이면 산 같은데 아냐? 엄마는 벌레 많아서 산 싫어하는데, 답답한 곳도 싫어하는데….”
수호가 걱정하며 얘기했다. 맞는 말이었다. 한겨울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는 했으니까. 죽음도 장례도 그 이후의 일도 모두 처음인 이들에게는 하나하나가 어려운 일이었다.
“혹시 고인께서 바다는 좋아하셨나요?”
“바다 좋아하셨어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엄마가 바다 한번 가자고….”
수지는‘그러든지,’ 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게 생각났다.
“인천에서 바다장으로 하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인천이랑 부산 두 군데가 정해져 있습니다. 아무 바다에서나 뿌리는 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요.”
세 남매는 엄마를 모신 조그마한 나무 상자를 들고 요트에 올랐다. 그리고, 아직 따뜻한 엄마를 돌아가며 한 줌씩 바다로 보내주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일까? 눈물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대신에 사랑한다고 말했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그리우면 바다를 찾겠다고 말했다. 수지는 오빠는 자기가 보살필 테니 걱정 말라고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엄마는 푸른 하늘이 아닌 푸른 바다로 사라졌다. 그녀는 영원한 헤어짐이 못내 아쉽다는 듯 세 남매가 타고 있는 요트 곁에 한참을 머물렀다. 베이지색 엄마가 요트를 따라오다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렇게 그들의 엄마는 푸른 바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