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동 808호.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냄새. 다른 거라고는 달력의 숫자가 한 칸씩 멀어져 가는 것뿐. 이들의 시공간은 늘 변함없어 보인다. 밀려간 달력의 칸만큼 그들의 하얀 머리카락 한 두올이 더 빠지고, 얼굴 고랑이 좀 더 깊어지는 건 어쩌다 한 번 봐야 알아차릴 뿐, 그들에겐 그가 나이고 내가 그다.
마치 슬로우라도 걸어둔 듯 느릿느릿 흘러가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바쁜 건, 요양사들과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뿐이다.
“이봐, 나 축축해. 나부터 좀 해 줘!”
“네, 어르신. 잠시만 기다리셔. 영미 할머니 먼저 하고 갈게.”
“아니야, 저 할머니 먼저 해드려요. 나는 괜찮아요.”
늘 괜찮다는 영미 할머니다. 그래서인지 요양사 인선은 더 영미 할머니부터 챙기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괜찮다는 말에 항상 마지막으로 순서가 밀려 욕창으로 고생한 게 한두 번이 아니면서도 매번 다른 사람이 먼저란다.
“영미씨~. 영미씨도 이제 욕심 좀 부려요. 저기 남순 할머니는 욕심쟁이야. 왜 맨날 다 양보해요. 안 그래도 되는데.”
“난 괜찮아요. 언니, 난 괜찮아.”
예쁘장한 영미씨는 말도 항상 곱다. 늘 인선에게 언니라고 부른다. 인선이 이 요양원에 들어온 지 만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한 번도 인상 찌푸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영미 할머니 자녀분들은 좋겠다. 저런 엄마가 있어서’ 하지만, 한 번도 영미씨의 가족을 본 적은 없다. 요양비가 매달 정확하게 들어오는 거 보면 보호자가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녀를 보러 오는 이는 없다. 궁금해서 영미씨에게 물어보면,
“나 시집가야지. 아버지가 신랑감 데리고 온대.”
엉뚱한 대답뿐이다.
영미 할머니는 열일곱 살이다. 올해도 작년에도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도 열일곱이었다. 종종 인선이 장난친다고,
“영미씨는 맨날 열일곱이야?”라고 물으면,
“나 열일곱~ 이제 곧 시집가요. 아버지 오시면.”
해맑은 미소로 대답하곤 했다.
“아버지 언제 오시는데?”
“일본 가서 돈 많이 벌고, 내 신랑감도 데리고 온다고 기다리라고 했어요.”
이내 풀죽은 얼굴로 다섯 살 아기인 듯 손가락을 빨면서 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인선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는 웃는 모습이 훨씬 예뻤다. 그녀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인선은 매일 ‘영미씨는 몇 살이야?’라는 질문만 되풀이했다. 그때가 영미씨는 제일 행복해 보였다.
“저 할망구는 노망이 단단히 들었어. 자기가 무슨 열일곱이여. 구십이면 벌써 가도 가야지. 뭐 좋은 거 볼 거라고. 쯧쯧쯧”
남순 씨는 그런 영미씨가 어지간히도 꼴 보기 싫은 모양이었다. 영미 할머니보다 한 참 어린 남순 할머니지만 틈만 나면 영미씨를 못살게 굴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발이 하나 없는 남순 할머니는 곱디곱게 늙은 영미씨를 늘 구박했다. 아니, 부러운 듯했다. 자기 다리 바라보고 영미씨 쳐다보고, 한숨 푹 쉬기를 하루에도 몇 번을 했다.
누가 봐도 영미씨는 고운 할머니다. 그녀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 인선은 알지 못했지만, 얼굴과 말품과 인성을 보아 큰 굴곡 없이 살아온 인생 같았다. 늘 존댓말을 하고, 서울 표준말을 쓴다. 물질도 감성도 풍족하게 살아온 사람의 여유가 그녀에게서 느껴진다. 인선은 요양사 일을 한 지 10년 정도지만, 이렇게 예의 바른 할머니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영미씨를 더 살뜰히 챙기고, 좋아했다. 기억이 열일곱에 머물러 있는 영미씨. 그녀의 삶이 궁금했지만, 일만 해도 바쁘고 벅찬데 남의 가정사까지 알아볼 여유는 없었다.
“인선아! 밥맛이 왜 이래. 갈수록 맛이 없냐?”
이번에는 영옥 할머니다. 남순 할머니와 영옥 할머니는 이 방의 대장들이다. 늘 둘이 ‘나 먼저, 나 더 많이’를 외치며 싸워대는 통에 인선 씨와 다른 요양사들은 출근과 동시에 이내 진이 빠졌다. 밤낮 교대근무라 밤에 일하는 요양사는 그나마 좀 나은 시간을 보내는 듯했지만, 낮 담당 인선은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여기 저기서 불러 대는 통에 정신이 훅 나갈 지경이었다. ‘이러다가 내가 이 방에 들어오겠는데?’ 이제 갓 50을 넘긴 인선은 지레 걱정이다.
인선은 남순, 영옥, 영미 할머니를 비롯해 2명의 할머니까지 총 다섯 명의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서열로 따지자면 남순, 영옥, 나머지 두 명의 할머니, 그리고 영미씨다. 남순, 영옥 할머니의 보호자들은 엄마가 부탁한 것들을 사 들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면회를 온다. 면회를 와도 좋은 소리 못 듣고 ‘이제 왔냐, 이거 말고 다른 건 없었냐?’ 자식들은 와도 지랄 안 와도 지랄이라며 툴툴거리긴 하지만 잠시라도 엄마와 마주하며 미운 정이라도 나눈다. 영미 할머니는 늘 그 모습을 먼발치서 무표정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영미 할머니는 딸 없어?” 인선이 물었다.
“그런 거 없어요.” 영미 할머니는 예의 그 미소로 답을 한다.
어느 날, 밤 근무 요양사가 퇴근하면서 자판기 커피 한 잔씩 하자며 휴게실로 불렀다.
“저기, 영미 할머니 말이야.”
“네, 언니, 영미 할머니 왜요?”
“낮에 좀 주무셔?”
“아뇨, 거의 안 주무세요. 정정하셔. 잠시 한두 시간? 누워 계시는데 그때 주무시나? 글쎄요. 주무신다는 느낌은 거의 없어요. 왜요?”
“영미 할머니, 밤에 거의 못 주무셔. 하다 하다 우리가 수면제를 드리는데, 입 꾹 다물고는 안 드시고 밤새 그러고 계셔. 매일 그러는 건 아니시지만, 잠 못 주무시면 그 연세에 큰일나잖아. 혹시 자기는 할머니 얘기 들은 거 없어?”
인선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다른 방에서 옮겨와 3년을 지켜봤는데 할머니가 밤에 못 주무신다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피곤한 기척도 없었고, 늘 생글생글한 표정이다. 아, 그러고 보니 가끔 남순 할머니가 ‘저년은 잠도 없나? 갈수록 가관이여.’라고 하는 걸 들은 적은 있다. 늘 심한 말을 해대는 남순 할머니라 ‘또 뭘 트집 잡으려고 저러나?’ 했을 뿐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방으로 돌아와 할머니들의 아침을 챙기고는 유심히 영미씨를 바라보았다. 밥을 한톨 한톨 세어 먹는 느낌이다. 그것도 아주 곱게 입가를 휴지로 닦아 가며. 인선은 영미씨의 삶이 궁금해졌다. 영미씨의 나이 외에는 그녀에 대해서 더 이상 아는 게 없다. 하긴, 인선도 생활고에 지쳐 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남편이 실직하고 첫 2년은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일했다. 할머니들 상대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만둘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그러길 10년이 지났다. 이제야 자기가 담당하는 할머니들이 그 나름의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인선에게 영미씨는 그동안 요양원에 버려진 치매 할머니, 일하러 와서 만나는 기분 좋은 고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인선은 쉬는 시간을 틈타, 영미 할머니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곳에 들어온 지 15년 정도 되었다는 것 외에는 다른 요양사들도 아는 게 없었다. 원무과 직원들에게 물어도 그녀의 이름과 주민등록증 나이, 입소할 때의 주소지밖에 모른다고 했다. 보호자가 있는데 연락 안 온 지가 꽤 되었으며, 요양비는 밀리지 않고 들어오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며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 자기들 일하기에 바빴다.
“인선 언니, 나 오늘 시집간다?”
영미씨는 갑자기 점심 식판을 내려놓는 인선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네? 진짜요?”
인선은 호들갑 떨며 대꾸했다.
“쉿, 부끄럽게. 나 오늘 시집가면 이제 인선 언니 못 볼지도 모르는데, 슬퍼서 어째. 가는 발길이 떨어지려나. 그래도 가야지. 그래야 우리 남편 만나지.”
영미씨는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면서도 인선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눈, 코, 입. 하나하나 기억에 남기려는 듯 훑고 또 훑는다.
웬일로 영미씨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먹고는 졸린지 하품하면서 자리에 눕는다. 그 곁에서 한참을 지켜보던 인선은 다른 요양사가 부르는 소리에 영미 할머니 곁을 마지못해 비웠다. 오늘따라 좀 더 곁에 있고 싶었다. 고운 손을 한 번 쓰다듬고는 ‘좀 주무시고 계셔요….’인선은 자기를 부르는 쪽으로 서둘러 갔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 늘 그렇듯, 남순 할머니와 영옥 할머니를 챙기고 마지막으로 영미씨의 식판을 들고 그녀에게 갔다. 영미씨는 여전히 꿈나라 중이다.
“영미씨. 아직 자는 거예요? 저녁 먹어야지. 이제 일어나요~.”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 순간, 아까 인선을 눈에 담던 영미씨의 눈동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등 밑에 급히 손을 넣었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채로 의사를 불렀다. 순간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90세 이영미 님, 오후 6시 사망하셨습니다.”
인선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방 안의 모든 할머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매일 못살게 굴던 남순 할머니가 제일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이제 가면 실컷 만나. 도련님! 결혼식 전날 남편 전쟁터 끌려가고 미친년처럼 살았다더니. 알아볼 거구먼. 열일곱 살 때 그대로라. 그동안 미안했어요. 언니. ”
영미씨의 부고 소식에 조카라는 사람이 와서 모든 절차를 진행했다. 그녀의 엄마, 즉, 영미씨의 언니가 평생 돌봐왔는데 암투병하느라 동생을 요양원으로 보냈단다. 그리고, 그녀의 언니는 항암으로 고생하다가 수년 전 먼저 떠났다고 했다. 어머니의 유언이라 보살폈어야 했는데 사는 게 바빠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소리죽여 흐느꼈다.
“꽃보다 아름다운 영미야! 영원히 소녀로 살아. 내가 꼭 기억하고 있을게!”
인선은 마지막 가는 영미에게 들꽃 한 다발을 전했다. 그녀의 영원한 열일곱, 그녀의 웃음, 그녀의 소곤거림을 나 하나쯤은 기억해도 되지 싶었다.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인선의 머리 위를 돌다 유유히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