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며칠 전에 소설을 하나 써 봤거든. 너무 힘들었어. 주인공 이름이 분명 동우였는데 진우가 되어 있고, 앞에서 언급한 걸 또 쓰고, 우와.”
“맞아요, 맞아요. 저도 그래서 매번 고치고. 크크”
딸과 나는 한참을 웃었다.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키워드는 ‘글’이다. 지금은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한 시간 넘게도 얘기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아이의 사춘기와 나의 욕심이 불러온 어마어마한 혹한기였다.
우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비범했다. 천재인 줄 알았다. 내 아이보다 똑똑한 아이는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 이상을 알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의 칭찬이 이어지고, 이미 서울대와 미국의 아이비리그까지 넘보는 예비 입학생이었다. 정보는 넘쳐났고 많은 사교육 시장에서 나는 그 문을 찾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빡빡한 일정을 보내느라 집에 오면 녹초인 아이를 붙들고 또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생들도 중간, 기말고사가 있었다. 그 시험에서 어떻게든 올 백 점을 받게 하겠다는 엄마의 욕심에 아이는 곧잘 따라와 주었다.
하지만, 스멀스멀 자아와 에고의 혼란이라는 걸 겪기 시작한 아이는 한순간 모든 것에서 손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자기 방에서 아무에게도 허락하지 않는 자신만의 굴을 파기 시작했다. 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몰아세웠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원망은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게 했다. 아이의 굴이 바닥에 닿을 즈음이 되어서야 아이가 우울증임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해온 걸까?’
방문이 열리기를 포기한 어느 날, 나는 2년을 거슬러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아이가 되었다. 몇 개나 되는 학원 가방을 자그마한 손에 들고 아침 8시에 나선 집은 저녁 6시가 되어야 돌아올 수 있었다. 저녁 한 숟갈 먹고 나면, 엄마는 도끼눈을 하고 식탁에 앉아서 공부할 책들을 잔뜩 늘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했다. 따스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말투였다.
차가운 내 모습을 마주한 그제야 아이의 현재가 이해가 되었다. 진심으로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불쌍했고, 나는 비참했다. 아이의 시간을 내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못 한 것들을 아이가 대신 해주길 바라면서 내가 못 간 일류대학을 보내고 싶었나 보다. 이런 엄마는 되지 않아야지 했었다. 그런 엄마라고 자신했었는데, 여느 욕심쟁이 엄마랑 다를 바가 없었다는 사실이 나를 무한의 수치로 몰아갔다.
‘아, 어떻게 해야 하지?’ 후회는 항상 늦다. 아이는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아이의 미래인데도 아이와 한 번도 의논하지 않았고, 아이의 생각 따위는 물어본 적이 없었다. 새 학기가 되면 학생조사서에 아이는 매년 새로운 꿈을 적었다. 그 옆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직업란에는‘아이가 원하는 직업’이라는 가식적인 글을 적었다. ‘어차피 이 꿈은 안 이루어질 거니까.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이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데 뭐.’ 현명한 엄마의 가면을 쓰고, 욕심쟁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오기를 다 부렸었다. 무식하게도 그게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오만함을 가지고 말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아이의 묵언수행이 이어졌다. 학교 이외에는 아무 곳도 가지 않았고, 방문은 화장실 갈 때와 잠시의 식사 시간 외에는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아이가 짤막한 말이라도 건네면 감사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우리 집이 이렇게 넓었나? 저 길 끝에서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하필 제일 끝방이었던 아이의 방문이 열리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기다림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아이 스스로 더 이상 굴 파기를 포기한 건지, 아니면, 새로운 굴을 파기로 결정한 건지 중학교 2학년 유월의 어느 날, 조용히 내게 다가와 말했다.
“엄마, 저 작곡 공부하고 싶어요.”
“작곡? 피아노를 다시 해야 하는 거야?”
“아마도요, 그런데 클래식 작곡 말고, 실용음악 작곡 해보고 싶어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이건 내 예상 시나리오에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는 이야기 소재였다.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있자, 아이가 덧붙인다.
“이번에 기말고사 1등 할게요. 그럼 하게 해주세요.”
또 예전의 그 욕심쟁이 엄마가 쓱~~ 하고 나타난다.
“그래, 일단 그때 보고 결정하자.”
공부 손 놓은 지 오래다. ‘해 봤자 얼마나 하겠어. 작곡은 아무나 하나? 저러다가 말겠지.’ 하지만, 내 예상은 정확하게 빗나갔고, 나는 아이와 어느 작곡 학원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한두 달만 해보자고 얘기했다. 아이도 그래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작곡 공부에 재미를 붙이더니 실용음악과가 있는 예고에 가겠단다. ‘외고가 아니라 예고. 그래, 그러자.’ 그러다가 글쓰기 공모전에 당선 되어서 금상을 받더니, 갑자기 출판사에 원고투고를 한단다. ‘출판사? 그래. 해봐라. 글 쓰는 게 쉽니?’ 내 예상은 연이어 빗나갔다. 출판 얘기가 오가더니,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이는 청소년 작가가 되었다. 이 모든 게 불과 1년 반 만에 일어난 일이다. 아이는 굴만 판 게 아니었다.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것을 하기 위해 저 욕심쟁이 엄마에게 어떤 미끼를 던져야 하는지까지 세밀하게 계획했다.
더 이상 나는 아이의 길잡이가 될 필요가 없었다. 받침대면 족했다. 처음부터 아이의 길잡이가 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나이고, 아이는 아이인 것을, 탯줄이 끊어질 때 이미 나와 아이는 다른 사람임을 깨달았어야 했다. 다른 존재로 존중하고 이해해야만 아이가 자신의 날개를 펴고 날아갈 수 있음을 오랜 기다림 끝에야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아이의 질문에 간섭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가끔 내 의견을 물어보면 감정을 빼고 제 삼자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했다. 아이가 선택한 길이 성공할지 아닐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하고 싶은 대로 두면 될 일이다. 해보다가 안 되면 다시 하면 된다. 이렇게 쉬운 길을 나는 왜 힘들게 가라고 채근했을까?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그 아이 대신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어차피 내 인생이 아닌 자기 인생인데’ 인생의 주도권을 돌려주고 나니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내 인생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계속 음악 공부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고, 얼마 전 음악과 글쓰기 모두 가고 싶은 대학에 수시로 합격했다. 될까 싶었던 걸 기어이 해냈다. 이런 깡다구면 성인이 되어도 자기 인생에 책임지며 잘 살 것이다. 작가 선배님인 아이와 책, 친구, 더불어 아이의 사생활을 공유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힘들 땐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아이의 징징거림에는 토닥토닥 토닥이며 답해준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 의견을 물어올 때는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방향을 찾아본다. 왼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나 역시도 모를 때는 일단 어느 쪽이든 돌려 보라고 한다. 방향을 찾아나가는 건 아이의 몫이다. 그 키에 내가 손을 대는 순간 아이는 키를 놓치고 말지도 모른다. 혼자 몇 날 며칠 고민하고 결정해서 알려주는 날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몰라서 방황 중인데, 그래도 너는 키라도 잡고 있으니 다행이다. 키만 꽉 잡고 놓지 않으면 돼. 방향이 틀리면 잠시 돌아가면 되고 말이야.’ 나보다 순항 중인 아이 인생에서 내가 감히 아이의 키를 빼앗으려 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한다.
이제야 나는 내 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금씩 보인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어딘지 명확히 보일 때까지만이라도 써보기로 했다. 늦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엔 나보다 더 재주 많은 사람이 넘치고 넘치니까. 가다가 후회하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정박해 두지 않고, 어스름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 보는 거지! 그렇다고 내 배를 다른 사람 손에 넘길 수는 없지 않나? 오십이 다 되어 가는 이제야 나는 그 시절 겪지 못한 사춘기를 겪고 있다. 때로는 아이에게 내가 가는 길이 옳은지 묻기도 한다. 그러면, 내가 아이에게 토닥이듯이 아이도 나를 토닥여 준다.
“엄마는 굉장한 사람이에요. 아직 그걸 엄마만 모를 뿐!! 저는 항상 엄마 1호 팬인 거 아시죠? 할 수 있어요!”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아이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친구 사이다. 때로는 친구 욕도 때로는 아빠 욕도 한다. 무언의 비밀~~이라는 약속도 함께.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며 각자의 사춘기를 잘 이겨내고 있다. 언제가 이 시간이 아이에게 함께할 수 없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애증이 아닌 항상 그립고 보고 싶은 엄마로 남기 위해 아이의 인생에 더는 참견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각자의 삶을 응원하며 간혹 보이는 암초와 지름길 정도만 알려주면 되겠지. 인생의 목표를 함께 나아가는 친구로서 말이다.
아이는 돛을 펼치는 방법을 알았고, 나는 닻을 올리고 키를 잡았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 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