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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Nov 20. 2024

엄마의 밥상

형법 제257조 2항에 의거 피고 최영민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변변한 직업도, 학벌도 없다. 그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생사가 불확실하고, 어머니는 어릴 때 잠시만 맡아달라고 가서는 그가 보육원 퇴소할 때 와서 얼굴을 내민다. 참 지지리도 복 없게 생긴 얼굴이다. 가난에서 아직도 못 벗어났나 보다. 이십 년 가까이 버려 놓고 갔으면 돈이나 좀 많이 벌어 둘 것이지. 지금 데려가서 어쩌려고, 이제 아이가 아닌데. 그는 엄마라는 존재를 쉬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빌어먹을. 갈 데가 없다. 퇴소지원금으로 나온 돈을 챙겨서 그녀가 알려 준 주소로 갔다. 반지하가 딸린 허름한 단독 주택. 그 집 전체도 아닌 방 두 칸짜리 전세방. 영락없이 당분간은 여기서 저 복 없는 여자와 살아야 하나?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어마어마한 집안의 자식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평범한 부모 밑에서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 단, 하나뿐이었다. 평범한 부모는 이미 물 건너갔고, 소박하다 못해 청승맞은 소망만 이루어졌다.


 그의 엄마는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야 들어 왔다. 늦잠 좀 잘라치면 좁은 부엌에서 무얼 하는지 달그락거리는 통에 잠이 깨고야 말았다.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잠이 들면, 그녀는 이미 나가고 없고, 해는 중천을 넘어가고 있다. 밤새 게임 하느라 허기가 진 배를 부여잡고 아침내 달그락거렸던 부엌으로 나가본다. 조그만 밥상에 김치 나부랭이와 생선 한 토막, 그리고 멀건 국이 담긴 그릇이 이런 촌스러운 물건은 어디서 구했나 싶을 정도로 구린 밥상보 아래 다소곳이 차려져 있다. 한 번 올렸다가 내리고는 냄비에 물을 받는다. ‘시발, 라면 하나가 없냐? ’ 그는 슬리퍼를 끌고 집 밖을 나선다. 덥수룩한 머리에 며칠 씻지도 않은 남자가 어슬렁거리자, 주변 여자들이 슬금슬금 피해서 간다. ‘못생긴 것들! 관심 없어, 걱정 마셔. 무슨 대단한 미모라도 가졌으면 몰라. 드라마가 다 망쳐 놨어. 대기업 아들이랑 캔디가 만나 사랑하는 게 현실에서 가당키나 해? 꿈 깨! 이 여자들아!’ 라면의 부재가 불러온 짜증을 괜히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푼다.


 편의점에서 라면 하나와 삼각김밥 하나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퇴소 정착금으로 받은 돈은 친구들이랑 술 먹는다고 다 써버렸다. 그의 엄마가 매일 싱크대 위에 올려두는 만원으로 하루를 대충 해결했다. 라면 냄비와 삼각김밥을 들고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이제 슬슬 몰릴 시간이다. 친구들과 만나는 온라인 속 생활, 그에게 그보다 마음 편한 곳은 없었다. 

 퇴근하고 온 그녀의 엄마는 그의 방을 조용히 노크했다. 대답이 없자 그대로 돌아서서 그가 먹고 쌓아둔 냄비며 그릇들을 하나하나 치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손도 안 댄 음식들을 조용히 앉아서 먹는다. 그녀는 피곤이 몰려오는지, 대충 허기만 채우고 자리에 누웠다. 잠시 눈물이 비치는가 싶더니 이내 곯아떨어진다. 

 해가 중천이 되지도 않았는데, 잠에서 깼다. 매일 들리던 달그락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 촌스러운 밥상보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밥도 안 차려주려나 보군. 어차피 먹지도 않을 거지만 신경질이 났다. 이럴 걸 왜 데리고 온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보듬어 주지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 이십 년을 버려뒀으면 매일 매일 고기반찬에 ‘어기야 둥둥 내 새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는 게 모성애라는 거 아닌가? 밥상의 부재는 그의 속을 더 긁어 놓았다. 


 친구 녀석들을 불러냈다. 다 보육원 동기 아니면 형님들이다. 한 녀석은 출소하자마자 절도죄로 붙잡혀서 벌금형을 받았다. 함께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그런 부류들이다. 보육원 출신이라고 다 그의 삶처럼 사는 건 아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던 대학에 장학금까지 받고 들어간 사람도 있다. 그는 이도 저도 아니다. 하고 싶은 것도, 목표하는 것도 없이 대충 살아간다. 그 주위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다. 하루 벌고, 하루 산다. 어쩌다 보니 그게 익숙해져 버렸다. 꿈을 꾼다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꿈꾸는 것조차도 해본 적이 없어서, 방법을 모른다는 핑계를 그럴싸하게 대면서 힘든 일보다 지금 당장 쉬운 쪽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꿈을 꾸는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었다. 그는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위해 그들처럼 지금 열심히 사는 것을 포기했을 뿐이다.


 대화의 반 이상이 욕뿐인 친구들. 주제는 게임 얘기 아니면 여자 얘기다. ‘가진 것도 없는 것들이 욕심은 많아 가지고.’ 그의 주머니엔 싱크대에서 쥐어 나온 만원짜리 하나랑 어제 잔돈으로 받은 몇천 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게임 한판하고, 깡 소주 몇 병 사 들고 친구들을 모아 집으로 향했다. 그의 엄마가 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술집을 찾을 형편들이 안 되었다. 그들의 주머니 사정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집에 온 친구 녀석들은 마치 하이애나처럼 냉장고 안을 뒤적거리더니 그는 손도 대지 않는 반찬들을 꺼내어서는 연신 맛있다는 말과 함께 소주 한 병씩을 비워낸다. 술집에 파는 안주보다 낫다며 한 통, 두 통씩 먹어 치우는 게 신기할 뿐이다. 한 녀석이 거나하게 취해서는 그래도 엄마라도 있지 않냐며 그를 부러워한다. ‘웃기시네, 대화 한번 없고, 같이 겸상해서 밥 먹은 적도 없다. 용돈이라도 펑펑 주던가. 뭐라도 배워보라며 학원을 보내주던가. 시발, 없는 게 더 낫다고. 기댈 곳이 있는데도 기대지 못하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아냐? ’ 빈 병이 늘어가고 시간은 밤 10시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불편한 존재를 맞닥뜨리기 싫다는 듯 하나둘 각자 머물 곳으로 돌아갔다, 빈 술병들과 엉망진창으로 벌려 놓은 주방을 그대로 둔 채, 그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속이 쓰려서 나가려다가 그는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 방 앞에서 살짝 내다보았다. 엄마가 집에 있다. 점심이 훨씬 지난 시간이다. 집에 있을 시간이 아닌데 왜 있는 거지? 일단, 화장실은 가야 하니까 방 밖으로 나선다. 인기척에 그녀가 뒤돌아보며 말한다.

“속 쓰리지? 해장국 끓여놨어. 얼른 와.”

화장실로 들어가던 그는 낯선 엄마 목소리에 당황스러웠다. 볼일을 보고 나와서 주방 쪽으로 가본다. 간을 보고 있던 그녀는 숟가락에 국물을 조금 얹어서 그에게 이리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그에게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보라고 말하며 간이 맞는지 물었다. 황태해장국이었다. 깊은 국물 한 수저에 어젯밤 마신 술이 발바닥까지 내려가는 기분이다. 

“맛있네요.”

“그래? 다행이다. 어서 와, 앉아. 속부터 풀어.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니?”

“친구들이 와서, 죄송합니다.”

“어른인데 뭐. 그럴 수 있지. 근데 언제까지 방 안에만 있을 거니? 뭐라도 좀 배워봐야 하지 않아? 엄마가 지원 해줄 테니까 한 번 찾아봐.”

“네, 그럴게요.”

“그리고, 엄마가 네 이름으로 작지만, 아파트 하나 사뒀어. 월세 준 거 끝나면 고쳐서 너 들어가서 살면 돼.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그때까지는 불편하더라도 여기서 살자. 엄마가 너 많이 보고 싶었어. 그리고, 미안해.”

“아니에요, 저도 많이 보고 싶었어요. 감사해요. 엄마.”

평소와 달리 불고기며 잡채, 듣도 보도 못한 갖가지 반찬들이 밥상에 놓여 있었다. 볼이 터지게 입안에 욱여넣다가 숨이 막혔다. ‘컥컥’거리며 물을 찾느라 주변을 더듬거렸다. 손 잡히는 곳에 있는 생수병을 통째로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내려놓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밝게 켜져 있던 등도 꺼지고, 좀 전까지 있던 그녀도, 밥상도 보이지 않았다. ‘꿈? 아,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무슨.’


 그는 방 밖으로 나왔다. 끔찍한 일은 밖에 벌어져 있었다. 그녀가 주방에 쓰러져 있고, 엎드린 아래로 피가 흥건했다. 그는 너무 놀라 그녀에게 다가가 보지만, 이미 숨은 멎어 있고 시간이 꽤 지났는지 팔다리가 뻣뻣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내가 잠든 사이에 강도라도 들었나?’ 집안을 둘러보니 어제 먹은 빈 술병들과 그릇들이 나뒹굴어 깨져 있다. 손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져서 보니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고, 손바닥은 피범벅이다. 다시 방으로 갔다. 어젯밤 일을 기억해야 했다. 친구들이 집으로 다 돌아가고, 혼자 남은 거까지는 기억났다. 하지만, 그 뒤의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해 내려고 애써보았지만, 무리였다. 강도가 들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112에 신고부터 해야 했다. 엄마가 피를 많이 흘리고 있다. 강도가 든 것 같다며 빨리 와 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은 곧 119대원들과 함께 도착했고, 부검으로 사인을 밝혀봐야 알겠지만, 복부 자창에 의한 실혈이 사인으로 보이며 숨을 거둔 지 몇 시간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곧이어, 과학수사대가 도착해 그의 지문과 손바닥의 혈흔, 그리고, 여기저기 뭔가를 뿌리고 붙이고 한참 동안 알 수 없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는 존속살인죄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경찰서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어젯밤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방지턱을 넘으며 하나, 신호 대기 중에 하나. 그는 밤늦게 귀가한 그녀의 엄마와 크게 다투었다. 해준 게 뭐 있냐며 악에 받쳐 대들었다. 그녀는 미안하다며, 그 와중에 밥은 먹었냐고 묻더니 밥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그놈의 밥상! 그는 옆에 뒹굴던 병을 내리쳐 날카로운 병 끝을 엄마에게 겨눴다. 여기까지 떠올린 영민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췄다. 

“최영민, 너 엄마 보험금 때문에 죽인 거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보험금이라뇨. 술김에 일어난 일이에요. 기억 안 나요.”

“어머니 앞으로 생명보험이 5억짜리가 있던데, 알고 한 거 아냐? 네 명의로 아파트도 하나 있고. 주변 분들 탐문 해보니까 아들 정신 차리면 줄 거라고 그렇게 악착같이 모았다던데, 너 그거 내놓으라고 하다가 죽인 거 아니야? ”


 꿈이 아닐 수 있었다. 왜 아침마다 밥상을 차려놓고 나갔는지 알려고 했더라면, 그녀의 외로운 삶 또한 이해하려고 했었더라면. 먼저 한발 다가갔더라면…. 후회로 몸부림쳐본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밥상을 차려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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