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본 건 2년 전이다. 40대 후반 평범한 주부였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얼굴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다.
“잠을 못 자서요.”
수줍게 그녀가 꺼낸 첫마디였다. 그리고, 내 방에서 나갈 때까지 그녀는 시종일관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억지로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늘 저 미소를 유지하며 살아왔을 것 같은 자연스러워 보이는 미소다. 예진으로 받은 우울증 검사지를 확인했다. 1점. 불면증으로 내원한 환자가 우울 점수가 1점이라.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얼마나 못 주무셨어요?”
“한 3년 정도 잠자는 게 힘들었는데 최근에 삼일을 꼬박 못 잤어요.”
“힘드셨겠네요. 그럼, 하루에 보통 얼마나 주무셨어요?”
“많이 자면 2~3시간? 술 마시면 그나마 좀 잤는데 이젠 그것도 안 되네요.”
‘술까지, 이거 긴 싸움이 되겠는데’
“지수 님, 혹시 요즘 힘든 일이나 걱정거리 같은 게 있나요?”
“아뇨, 딱히 없어요. 그냥 잠이 안 와요. 자려고 누우면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선생님 잠만 좀 자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일단, 약 이틀분 처방해 드릴게요. 드시고 다시 오세요.”
“네.”
‘저 사람은 무슨 이유로 잠을 못 잘까? 환자명단에 요주의라고 나름의 표시를 해둔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지만, 성급하게 다가가면 다시 나를 찾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자기를 보여줄까? 그보다 다시 오기는 할까?’ 이 선생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이 앞선다. 얼굴은 웃는데 뒷모습이 슬프다. 앞뒤가 같으면 오히려 쉽다. 이런 경우는 본인이 자각하지 않으면 치료라기보다 처방밖에 답이 없다. 그녀 같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들이 나를 찾지 않을 뿐. 혼자 삭이다 병이 되고, 심각해질 때까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어쨌든 나를 찾았다. 그녀가 다시 오길 바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틀 뒤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이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순번에 그냥 들어오면 될 텐데 노크하고 내 대답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아이고, 지수 님! 어서 오세요. 좀 어떠세요?”
“서너 시간 정도는 안 깨고 잤나 봐요. 얼마 만인지, 너무 감사해요”
“너무 다행이네요. 잠을 좀 주무셨다니.”
“네, 선생님. 약을 좀 더 처방해 주실 수 있나요?”
“그건 얼마든지 해드리죠, 그런데 우리 얘기 좀 나눠볼까요?”
“뒤에 할머니들이 많이 기다리시던데요. 저는 괜찮습니다. 약 처방만 해주시면 한가하실 때 다시 와서 얘기할게요.”
“다른 분들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지금은 지수 님 진료 시간입니다. 저하고 얘기를 좀 하셔야 제가 약을 드릴 건데요? 그냥은 못 드려요. 하하.”
“아, 네, 그래도 기다리는 분들께 죄송해서요.”
“괜찮습니다. 미안해하시면 안 됩니다. 어떤 분은 저하고 한 시간 넘게 얘기하는 분도 있는데요. 당연한 지수 님 시간이니까 눈치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얘기하실 거 없으면 조금 앉아 있다가 나가셔도 되니까요. 당장 일어나시는 건 안 됩니다. ‘저놈은 약만 지어 보낸다’라는 소리 나오면 안 되니까요. 제 입장도 좀 고려해 주세요.”
“아, 그렇구나. 죄송해요. 선생님.”
“아뇨, 아닙니다. 죄송하긴요.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네, 죄송합니다.”
그렇게 1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은 동생이 있어요. 한 살 터울의 여동생.”
“아, 그러시구나.”
“동생이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어요. 공황장애도 있고, 근처에 사는데, 밤에 약에 취해서 문자가 와요. ‘혹시나, 비밀번호 ****이야.’ 이렇게요. 아침에 미친 듯이 뛰어가서 확인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 아마 그즈음부터 잠을 못 자기 시작한 거 같아요.”
“힘드셨겠네요. 그래서, 지금 동생분은 좀 어떠세요?”
“지금은 부모님이랑 합가했어요.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거든요. 엄마한테 부탁해서 동생이랑 같이 살아달라고 제가.”
“혹시 그 일에 죄책감을 느끼세요?”
“그 방법밖에는 없었어요. 제가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엄마한테 떠넘긴 거죠.”
“지수 님. 동생을 책임질 사람은 언니가 아니라 부모님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부모님이 연로하신 게 아니라면요. 아주 잘하셨어요. 동생분이 부모님 댁에 들어간 건 얼마나 되었나요?”
“6개월 정도 지났어요.”
“지금은 잘 지내시나요? 동생분은?”
“네, 잘 지내요. 처음에는 다 큰 딸 데리고 사느라 엄마도 힘들어하고, 동생도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저도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잘한 거 같다고 서로 다 이야기할 정도고요.”
“그러니까요. 아주 잘됐네요! 그런데 왜 못 주무실까? 이제 해결된 거 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 못 자는지. 선생님, 이제 약 처방을. 너무 오래 있었던 거 같아요.”
“네, 그래요. 다음에 오시면 그때 또 얘기하면 되니까요. 시간 넉넉하게 잡고 오세요.”
그렇게 그녀는 일주일 분의 약을 처방받아서 돌아갔고, 일주일 뒤 아침 일찍 이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떠셨어요? 약 드시고 잠은 좀 주무셨나요?”
“두 시간이 지나도 잠이 안 오는데 제가 비정상일까요?”
“아니에요. 아직 적응하는 중이라 제가 약을 약하게 드렸어요. 좀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나신 거 같은데, 제가 볼 때는. 맞나요?”
“그런 거 같아요.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더 예민해진 거 같기도 하고.”
그런 식의 가벼운 대화가 몇 번 더 이어지고, 이 선생은 그녀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갔다. 그리고, 그녀와 상담한 지 1년이 가까워진 어느 때였다.
“어서 오세요! 지난주는 좀 어떠셨어요?”
“선생님, 오늘 저희 시아버님 1주기에요. 그래서, 아침에 아버님 뵈러 다녀왔어요. 그래서 마음이 시려요.”
그녀의 말이 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시아버지와 아주 가까웠다. 남편이 아이들 육아나 집안일엔 관심이 없어서 시부모님 잔심부름에 병간호까지 애 셋을 키워가며 혼자 다 했다고 했다. 그런 그녀의 힘듦을 잘 알아주셨던 시아버지가 항암 중에 유언 한마디 못 하시고 돌아가셨고, 그의 아픈 과정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한 그녀는 심한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마음이 시리다, 어쩌면 이게 원인이려나?’
“남편분은 어떤 분이세요?”
“저희 남편요?”
그동안은 단지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란 느낌으로 이야기했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K 40대 직장인. 한동안 얘기가 없던 그녀는 남편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감정조절도 못 하고. 폭언이 심해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님이 죄송하다고 하셨어요. 너니까 내 아들이랑 산다고 고맙다고.”
그 한 문장을 내뱉고 그녀는 꽤 긴 시간 동안 흐느꼈다. 술이나 물리적인 폭력의 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만,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자신의 노력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많아 보였다.
“남편분 사랑하세요?”
“모르겠어요. 그 사람 보면 불쌍해요. 엄마 사랑을 못 받고 자랐대요. 시아버지 배 타는 동안 바람피우고 도박하고, 그런 엄마를 보며 자라서 엄마에 대한 미움이 엄청나요. 지난 시간 돌이켜 보니까 제가 자신의 엄마 역할을 해주길 바란 거 같아요. 그 사람은 저한테 순종하는 아내, 모성애 넘치는 엄마를 기대했던 거 아닐까? 그래서, 선생님이랑 상담받고 집에 가서 그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얘기를 하다 보니 그에게 저는 엄마라는 단어의 정의여야 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남편에 동생, 자녀분들. 총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운 거나 마찬가지네요. 힘드셨을 거 같아요. 그래도 조금씩 대화를 하신다니, 잘하고 계십니다. 지난 이야기 하면 남편분 반응은 좀 어때요?”
“조금씩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나도 이제는 좀 기대고 싶다고 했더니, 기대라고. 그리고, 오늘은 선생님께 자기 욕도 하라고 하던데요?”
“하하하, 남편분 시원시원하시네요! 자, 이제 해봅시다. 욕! 이제부터 제일 중요한 건 나예요 나! 내일의 나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오늘은 오늘의 나에게 집중해 봅시다. 아시겠죠? ”
이렇게 이야기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그녀는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남편’이라는 어디서 어떻게 튈 줄 모르는 화살을 정확하게 막아 줄 방패 시아버지를 잃었다. 동생은 불면의 불쏘시개였고, 남편은 그녀를 끝없이 그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루하루가 버거웠던 그녀는 모든 걸 내일의 자신에게 미뤄두고 오늘의 나에게 끊임없이 술을 권했을 것이다. 그렇게 회피하고 미루는 식으로 20년 가까이 버티면서 말이다. 늘 남이 우선이었던 그녀는 타인의 짐을 내려놓는 법을 알게 되었고,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법을 찾아냈다. 남들이 보기에 화목해 보이는 평범한 가정. 하지만, 그 평범함은 한 사람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여전히 그녀는 나와 보름에 한 번씩 만난다. 그녀는 지금 내려놓는 법을 연습 중이다. 해답은 본인이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답을 찾아가는 길에 가로등만 놓아 주었을 뿐, 그 길을 걸어가는 건 그녀 자신이다. 불을 켜고 갈 것인지, 어둠 속에서 헤맬 것인지, 그 또한 그녀의 선택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