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너의 앞날을 응원해

에필로그

by 열정아줌마

1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는 것은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굳이 잊어버리고 싶은 지난 시간들을 곱씹어 얘기하다가 내가 우울해지는 이상한 경험도 했다. 며칠밤 악몽을 꾸었고, 잠을 설치고 몇 날 며칠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한 번은 들여다봤어야 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진행 중인 우울증이고 앞으로 또 어떤 사건들이 우리를 힘들게 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 인생의 첫 글쓰기로 동생의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나에게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다. 나랑 연년생 여동생이 은우이고, 4살 터울의 막내 여동생.. 막내는 늘 어른스럽고 지 몫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없다. 하지만, 은우는 내게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여서 늘 애가 쓰이고 마음이 불편하다.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또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오죽하면 우리 큰애가 엄마는 아이 다섯을 키우는 거 같다고 말했을까.. 남편, 아이 셋, 은우..


나는 어쩌면 은우에게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한 미안함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은우에게 본인이 겪은 일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다는 게 사실상의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내 감정에 더 치우쳐서 내가 그때 그랬다는 변명이 하고 싶었는지도..

계속 가슴 한쪽에 미안함이 있었다. 그걸 언젠가는 덤덤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은우는 아직도 우울증과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고 나는 늘 잔소리만 해댔다. 누구보다 이 병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문득 은우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독이는 건 은우다. 다 자기 탓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힘든 아이에게 또 다른 죄책감이나 더해주는 언니라니 너무나 한심스럽다.


우울증 가족으로 산다는 건 힘들다는 변명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사자보다 힘들 수는 없다. 잊고 있었던 이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오늘도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치열하게 한판승을 벌이고 있을 은우에게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만 고민해도 부족한 날들이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의 가족으로 무얼 할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말이다.

또한, 이제 다시 시작하려는 은우의 삶에 어떤 희망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하려고 한다.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넘어지면 옆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지켜봐 주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임을.. 혼자서 고민하지 않게 들어주고 또 들어주는 나무 같은 언니가 되어 주는 게 은우에게 더 필요한 일임을 잊지 않도록..






은우야..

우리 참 많이 힘들었다.. 그렇지?

그 긴 시간 동안.. 죽고 싶었던 그 숱한 날들을 잘 버텨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넌 모를 거야.

우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생존 보고라는 표현도 썼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제발 무사하길.. 아무 일도 없길..

밤새 긴긴 시간 동안 혼자 해선 안 될 상상까지 하면서 마음 졸였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무기력한 순간에도 그래도 살아보려고 바등바등 애써 준 너에게 고맙다.

그 힘든 시간 속에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해준 너에게 고맙고,

다시 한번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너에게 고맙다.

자기도 힘든데 주변 사람들 챙기고 특히 가족들에게 베푸는 너에게 고맙고,

길고양이들에게 따뜻한 가족이 되어줘서 고맙다.


은우야, 있잖아.. 근데 이제 너만 생각했으면 좋겠어.

남에 대한 배려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는 은우가 되었으면 좋겠고,

가끔은 미운 사람에게 밉다고 표현했으면 좋겠어.

마음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입 밖으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도 알았으면 좋겠고,

모두가 네 탓이라고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주변에 안타까운 상황에 너무 니 일처럼 마음 쓰지 않았으면 좋겠고,

냥이들 사료보다 네 먹거리에 좀 더 신경 썼으면 좋겠어.


우리 이제 신나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할 거야. 우울증은 이미 친구 먹었으니 굳이 빨리 내쫓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누구나 그런 우울 한 바구니씩은 갖고 살아가니까. 너만의 우울이 아니라는 거. 누구에게나 그런 힘듦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거. 그 친구가 너를 덮어버리지만 않게 손잡고 나란히 가는 방법을 우리 찾아보자. 그러다 보면 이 감정 또한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너를 믿고 응원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우리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될 거니까.


(아, 너만 모르는 사실 하나 얘기해줄까? 너는 꽤 괜찮은 사람이야!

조금만 더 너를 믿어봐. 넌 그럴 만큼 충분히 멋진 아이니까.)





부족한 글이지만 누구보다 은우에게 잘 전달이 되었길...

그동안 은우를 걱정해주고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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