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바닥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큰 애가 4살이던 해에 남편이 갑자기 실직을 했다.. 아파트 대출금은 한 달에 백만 원씩 내야 하는데 남편은 일을 구할 생각조차도 없이 매일을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다. 그렇게 된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내가 모든 걸 제치고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 인생의 바닥이 아니었나 싶다. 모든 건 주관적인 거니까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내 문제가 아니면 남일인 거다. 그게 가족이라 하더라도.. 은우가 힘든 10년을 보낸 거와 별개로 나는 그 1년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내가 아무리 은우 일을 걱정한다 해도 결국은 '내 문제'만큼 힘든 일은 없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은우의 힘듦을 나는 너무 은우의 일로 여겼던 건 아닌지..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이 가득하다.
그렇게 바닥에서 1년을 헤매다가 우연찮게 비상구를 발견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이렇게 가까운 곳에 길이 있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은우에게도 은우의 10년은 비상구를 찾지 못해 빠져나오는데 오래 걸렸을 뿐인 바닥이었기를.. 그렇게 비상구를 찾기 위해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던 시간들이었기를..
큰 아이는 분명 자기의 길을 찾아내기 시작한 듯했다.
어둡고 무서운 길에 혼자 놓였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 길 끝에 아빠와 엄마가 있다는 믿음이 생기자 자기 길을 찾아가는데 거침이 없다.
우울증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얘기할 시간을 좀 내달라고 한다.
얘기하자고 하면 두렵다. 그래도 내색은 하지 않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고개를 아이 쪽으로 돌렸다.
"저 이번 중간고사 잘 치면요. 학원 하나 보내주세요"
"시험 치기 전에 가야 되는 거 아니가?"
"아뇨, 공부랑 상관없는 학원이에요.."
"어딘데?"
"작곡 학원이요?"
"머라고?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고?"
"실용음악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요. 클래식 작곡 말고 미디 작곡이라고 컴퓨터로 하는 거"
갑자기 작곡 공부를 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하지만, 티를 낼 수도 없고 난처하다.
"일단 시험 끝나고 다시 얘기하자. 엄마도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일단 대충 시간을 벌어놓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아이에게 무조건 안된다고 할 필요는 없다. 아직 시간이 많은 아이이니 지켜봐도 되겠지. 그러다가 싫증내면 할 수 없는 거고,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거 보단 낫지 않은가. 그리고 일단 시험을 잘 칠리가 없다.
그렇게 중간고사를 쳤고, 이제껏 공부라고는 안 하던 아이가 웬일로 열심히 한다 싶어 일단 모르는 척 내버려 두었다. 시험 결과는 반에서 1등.. 등수를 요즘은 안 내니까 공식적으로 1등이라 하긴 그렇지만 평균 점수가 반 최고 점수니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얘기한다.
"엄마, 내가 봐 둔 학원이 있어요. 저랑 같이 가요"
"그래, 가야지.. 약속은 약속이니까.. 대신에 한 달 다녀보고 니가 아니다 싶음 바로 관두는 걸로 하자. 알았제? 내일 이모한테도 전화해서 같이 가자고 하고"
그렇게 큰 아이는 작곡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고등학교까지 예고 작곡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이는 우울했던 그 시간 동안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썼고 여기저기 출판사마다 투고를 하더니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가 들어와서 진행 중에 있다.
사람일은 어디서 어떻게 방향이 전환 될지 알 수가 없다. 불과 1년 전, 아니 6개월 전만 해도 우울증 약을 먹는 그냥 중증 우울증 중학생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약물 치료는 아직 진행 중이다. 단기간에 낳는 병은 아닌 게 틀림없다. 멀쩡해 보이다가도 한 번씩 심장이 부서질 거 같다며 조퇴를 하고 온다. 그렇지만,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고 선생님에게도 신의가 두텁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쓰고 친한 친구들에게는 자기 사정을 대충 얘기해뒀다고 한다. 혹시나 힘들다 하면 도와달라고 말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우울증과의 싸움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앞으로 이 아이가 어떻게 자기 인생을 풀어나갈지 조금은 기대도 된다. 단지 들뜨지 않게, 자만하지 않게, 혼자 있지 않게 그리고 힘들지 않게 옆에서 지켜봐 주고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은우가 큰 아이만큼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골이 너무 깊어서 당장은 힘들다. 중증 우울증과 자살위험군에 속하는 은우의 우울증은 색깔부터가 다르다. 아이의 우울이 블루라면 은우의 우울은 검다. 다른 색을 아무리 섞어도 검은색은 좀처럼 지 색깔을 버리지 못한다. 조금씩 나아지고 또 나아지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한 발씩 떼는 걸음은 참으로 더디고 더디다. 그렇게 매일을 걱정 속에서 보내다가 만난 청약 당첨은 은우에게 '비상구'가 되어줄 거라고 믿고 싶다. 처음이다.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대화를 하게 된 게. 입주까지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상상 속의 인테리어까지 끝냈다.
"언니야, 내 과수로 다시 가까?"
"가면 좋기야 한데 니가 괜찮겠나?"
"사실은 예전에 같이 일했던 친구가 아는 사람이 논문을 쓰는데 과수 쪽 경험 많은 친구 소개 좀 해달라 해서 내를 소개했다네. 공저로 같이 써보는 건 어떻냐고.."
"그래? 그런 건 니가 대학원 다닐 때 공부하던 것들 아니가?"
"어, 그래서 한 번 해볼까 싶다. 그리고 과수 쪽에 결원 생기면 바로 지원도 해보려고"
"뭐든 해봐.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근데 또 자료들 보다가 니 이상해질까 봐 그게 걱정이다"
"아니다! 그럴 일은 없다. 걱정마라"
"제발 감정이입만 하지 마라. 그것만 아니면 뭐가 문제겠노"
도전하는 건 적극 찬성이지만, 은우의 성격을 아는지라 괜히 또 자료 조사하다가 감정 이입할까 봐 걱정이다. 과학수사 쪽도 그동안은 말 한번 안 꺼내더니 먼저 가고 싶다고 하니 말릴 이유가 없다.
그래도 그동안 감정을 객관화시키는걸 나름 연습해왔으니 괜찮겠지. 아이는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거 같은데 은우는 언제쯤 지난 모든 일이 '과거'가 되는 걸까. 아직도 그 경계가 모호한 것 같아서 나는 걱정이다.
하지만, 적어도 은우 자신은 자기 미래에 대해 무언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수동적이었던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것. 그리고 주변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 그런 것들을 새로운 인생의 첫걸음으로 생각한다면 내가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 조심스럽지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잔소리와 걱정 대신 믿어주려고 한다. 은우도 큰 아이와 마찬가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