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우가 부산에 와서 한참 생과사의 고민을 이겨내는 동안 큰 딸아이에게 이상 징조가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 나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무슨 소리?"
"사람들 소리.. 아무도 없는데 자꾸 들려요"
"피곤한가 보다 좀 있어보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 번씩 피곤하면 이명현상 같은 게 있지 않나?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아이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환청에 이어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자기 방에서 잠들지 못했고 거실에서 나와 함께 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어머니는 신내림을 받으셨다. 점을 보고 손님을 받는 건 아니고 집에서 혼자 기도하는 정도이긴 하지만 시댁에 갈 때마다 벽에 걸려 있는 칼이며 애기 옷 등을 볼 때면 무섭기도 하다. 옛날에 무당의 대물림은 한대를 지나서 이루어진다고 들은 적이 있다. 할머니가 신내림을 받았으니 손녀인 딸아이에게 온건가. 오만 간지 생각이 다 들었다. 화장실을 들어가다가 소리를 지른다. 욕조 안에 누가 누워있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여보, 어떡하지? 병원에 데리고 가볼까?"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 자기도 놀랬겠지.. 그러면서도 자기 엄마와 같은 경우는 아닐 거라고 말을 시작했다.
"민지한테 물어볼게. 병원 가야 되는지.."
여동생이 정신과 의사니 한 번 물어보겠다는 말이다. 잠시 통화하더니 당분간 지켜보란다. 청소년기에 그런 경우가 가끔 있다고.. 딸아이에게도 얘기했다. 고모가 잠시 그러다가 말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좀 더 지켜보자 한다고. 그랬더니 딸아이는 풀이 죽었다. 아무도 자기 말을 안 믿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걱정은 되지만 무작정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나는 정신과라면 지긋지긋한 사람이다. 제발 일시적인 현상이길....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딸아이가 조퇴를 하고 왔다.
"엄마, 나 병원 좀 데리고 가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앞 뒤 생각할 것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와 함께 상담을 하는 동안 의사는 시누이와 같은 말을 했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잠시의 상담으로는 망상이나 조현병 등은 의심되지 않는다고. 헛게 보인다는 이유로 모든 게 정신과적인 질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정확한 것은 심리상담과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주저할 이유가 없지 않나. 4시간짜리 검사를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아이 얼굴이 똑바로 보였다. 얼굴이 말이 아니다. 혼자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어했을지..
핸드폰 검색어엔 무당부터 시작해서 조현병까지 혼자서 고민했던 흔적이 역력했다. 아.. 이게 무슨 일인지..
검사는 토요일 오전 4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은우도 걱정이 됐는지 같이 따라나섰다. 은우랑 병원에서 기다리면서 많은 얘기들을 했다. 은우는 자기 때문인 거 같다고 걱정했다. 그게 왜 너 때문이냐고. 이제는 별별 일이 다 지 탓이다.
조카지만 은우랑 비슷한 면이 많다. 서로 말이 잘 통해서 나보다도 더 카톡도 많이 하고 얘기도 많이 한다. 외모도 많이 닮았고, MBTI도 똑같다. 그렇다고 은우의 탓은 아니다.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이런 면에 약한 것인가 정도는 유추해볼 수 있지만 너 때문은 아니란 걸 4시간 동안 설명해야 했다.
오랜 시간 검사를 했으니 지칠 만도 한데 아이는 속에 있는걸 시원하게 털어놓고 나와서인지 훨씬 밝아 보였다.
"엄마, 배고파요..!"
"뭐 먹을래?"
"마라탕이요~~!!"
중2짜리의 요즘 입맛이다. 아침보단 표정이 많이 밝아져서 다행이다 싶다. 일주일 뒤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제발 '아무 이상 없음'이어야 할 텐데... 일주일은 생각보다도 너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