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 만에 만난 의사는 나에게 믿기 힘든 얘기들을 쏟아낸다. 중증 우울증이 의심되며 공황 장애가 오기 직전이란다. 하늘이 나한테 너무 하신 거 아닌가. 아직 은우도 버거운데 딸아이까지.. 정말 주저 않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가 함께 듣고 있으니 티를 낼 수도 없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약을 웬만하면 처방을 안 하고 치료를 하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용량을 적게 해서 약물 치료도 병행해야 할 것 같네요"
약물 치료.. 중2짜리 아이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막막했다. 아이는 오히려 홀가분한 모양이다. 무당보단 우울증이 낫다며 다행이라고 한다. 내 운명인 건가.. 심리상담 결과지를 내게 내미신다. 다음 주 진료 예약을 잡으면서 집에 가서 보란다. 무슨 내용이길래 그러지..
저녁을 먹고 결과지를 천천히 읽었다. 아이의 우울증상은 부모탓이었다. 결론은 그랬다. 큰아이가 여섯 살 때 둘째가 태어났고 그 이듬해에 막내까지 연이어 태어났다. 모든 관심은 아기들에게 모아졌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때부터 큰 아이는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하는 아이로 키워졌다. 어리광을 부리면 다 큰 게 어리광 부린다고 혼났고, 떼쓰면 철없다고 혼났다. 고작 8살, 9살이던 아이는 그렇게 큰 딸로 키워졌다. 은우랑 비슷한 아이라고 하지 않았나. 속으로 삼키고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성향으로 태어난 아이는 그렇게 엄마 아빠의 큰딸 기대에 억지로 끼워 맞춰지고 있었다. 남편은 주춤거리는 아이가 마땅찮아서 자주 큰소리로 혼을 내기도 했고, 나는 아이에게 공부 공부 공부만을 얘기했다.
아이가 6학년 때 사춘기를 심하게 했다. 집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학교에서 선생님께도 반항을 했다. 나는 아이를 입학시키고 처음으로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그전까지는 칭찬만 듣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공부도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6학년 1년을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과 후엔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잔소리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지켜보는 거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고, 사춘기도 그렇게 지나간 줄 알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아이의 우울은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서 우울을 키워왔을지도. 마치 은우처럼 말이다.
"여보, 검사 결과 나왔는데 우리한테 받은 상처가 많은 거 같다.."
"무슨 말이고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사람마다 기억하는 포인트가 다르다고 하더니 딱 맞는 말인가 보다.
"율 이리 와 봐!"
기어이 아이를 부른다.
"네..."
"머가 그렇게 불만이고 엄마 아빠가 니한테 뭘 어떻게 했는데?"
"......."
갑자기 아이가 바들바들 떨기 시작한다. 욱하는 아빠의 큰 소리에 익숙할 법도 한데 심하게 떨었다.
너무 떨면서 말해서 한참을 생각해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땐가 심하게 혼이 난 적이 있다. 그때 쭈뼛거리면서 대답이 늦자 아빠가 발길질을 했던 모양이다. 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아이는 그 상황을 너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일은 기억이 나나보다. 그런데 자기가 아이한테 그랬다는 게 스스로도 믿어지지가 않는 거 같았다. 잠시 말을 못 하더니 이내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격하게 흐느끼던 아이는 한동안 진정이 안돼서 애를 먹었다.
"여보.. 게안나?"
"내 혼자 좀 있을게.."
방문을 걸어 닫은 채 그렇게 밤이 지났다. 아침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출근을 하길래 보내고 아이들을 깨우려는데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장문으로 뭔가 써 내려간 글이다.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울고 말았다. 밤새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카톡을 쓴 거다. 진심으로 사과했고 아빠가 잘하겠다. 아빠도 처음이니 앞으로 지켜봐 달라. 저 자존심 센 사람이 자식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소리를 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젯밤에 그렇게 아이에게 카톡을 보냈고 아이 역시 저도 죄송해요 아빠 사랑해요라는 답장을 보고서 잠이 든 모양이다. 그렇게 주고받은 카톡을 캡처해서 보내고 다시 한 줄을 더한다.
'상상도 못 했다. 그랬을 줄은.. 나 때문인 거 같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화가 한 번 나기 시작하면 화를 내다가 더 화가 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마지막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모른다. 그걸 깨닫게 된 건지.. 쉽지 않았을 텐데 아이의 우울증과 공황 진단이 아빠인 남편에게도 큰 충격이었나 보다. 자기가 아이의 우울증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 다 서툰 어른으로 아이를 낳았고 키웠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네 마음을 들여다봐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이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렇게 딸아이의 치료는 시작이 되었다. 우울증 동생과 우울증 딸의 치료를 지켜봐야 하는 나를 좀 지켜봐 달라고 하늘에 공허하게 소리 질렀다. 기도가 통할까.. 제발 낫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엄마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어떻게든 살 구멍은 있다는 소리다. 엄마가 그리 살았고 인생은 포기하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진다. 그 해에 부산지역에 아파트 신규 청약이 많았다. 나도 집을 팔고 다자녀 특별공급 청약을 노리고 있을 때라 은우가 부산에 오자마자 청약통장 가입을 권유했다. 그렇게 청약 일정을 공유하고 첫 청약을 시도했다.
당첨발표가 있던 날.. 나는 예비당첨에 당첨 되었지만 가능성은 없다. 순번이 올리가 없다. 은우는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다. 하긴 11점으로 무슨... 점수가 턱도 없이 낮아서 인기가 덜 한 타입에 넣긴 했지만 경쟁률을 보니 후들후들이다. 그냥 넣어본거다 기적을 바라면서 말이다.
"언니야.."
"어 안다.. 떨어진 거"
"아니.. 10*동 1***호 당첨 축하한다는데?"
"뭐라고? 진짜?"
그러더니 이내 받은 문자를 전송해준다. 11점으로 무주택 추첨 당첨이다..기대도 안했어서 문자 확인도 생각못하고 있었단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