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된다

by 열정아줌마

집은 일사천리로 구해졌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축 아파트 임대동이 전월세로 매물이 제법 나와 있었다. 아는 부동산 언니의 도움으로 원룸이지만 신축 아파트의 인프라는 다 이용할 수 있는 제법 큰 사이즈의 전셋집을 구했다. 풀옵션이라 부담도 없었고 심지어 전세대출도 70프로까지 가능했다. 지긋지긋한 월세살이가 끝났다. 하지만 서울 집의 기간이 6개월이나 남아서 다음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월세는 은우가 부담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지..


은우는 그렇게 보름 만에 서울에서 벗어났다. 두 고양이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오는 내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징글징글한 서울에서의 삶을 끝내고 익숙한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대와 희망이었을까? 또 다른 사람들에 적응해야 하는 두려움이었을까? 우리는 서울만 벗어나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착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시 땅 하면 리셋되고 곧바로 새로운 출발이 가능할 거라고. 현실은 우리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데 말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되돌릴 수도 없다.

집에서 가까운 경찰서로 지원을 했다. 팀도 과학수사가 아니라 다른 수사과다. 결원이 있어야 할 텐데 걱정하면서 기다렸다.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결정이 됐다. 교대 근무가 익숙한 은우에게 매일 출근해야 하는 건 새로운 문제다. 잠만 잘 자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불면증이 심한 은우가 과연 어떻게 적응을 할지 내심 걱정이 앞섰다. 굳이 입밖에 내진 않는다. 무조건 '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희망 회로를 돌리는 수밖에.. 걱정한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방이 고향인 사람들이 서울 근무를 더 희망하는 게 지방은 텃세가 심해서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그래서 서울에 더 남기를 원했던 것도 있었고 커리어를 쌓는 것도 서울이 훨씬 낫다는 생각에 그동안 버티고 버틴 것도 사실이다. 은우의 상태만 괜찮았더라면 서울에서 과학수사 업무를 계속했겠지.

지방근무를 희망했다가 몇 년을 못 버티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동료들도 제법 있었다 하니 겁이 날 만도 하다. 늪에서 나왔는데 눈앞에 보이는 곳이 육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가족과 같은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하나의 이유로 부산행을 택한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그제야 은우도 나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부산에 와서 첫 명절은 모든 가족들이 다 모였다. 이게 얼마만인지.. 밤새도록 웃고 떠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냈다. 엄마는 따로 나가 살기로 한 은우가 내심 서운했는지 말 끝마다 툭툭 내뱉는다. 같이 살면 돈도 아끼고 그 돈으로 집도 사고 얼마나 좋냐며.. 하지만 나는 엄마 성격도 은우 성격도 아는지라 둘이 같이 살 경우 발생할 문제들이 더 크게 다가왔다. 결국 은우는 독립을 할 거다.


그렇게 은우는 부산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 서울에서 지구대, 구치소, 경제팀, 과학수사까지 여러 가지 업무를 해온 탓에 업무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늘 사람이 문제다.

걱정했던 일들은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몇몇의 사람들 때문에 힘든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은우에게도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즉시 말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오해가 쌓이고 그것들이 문제가 되곤 한다. 참으면 되는 게 아니다. 나만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힘든 건 힘들다고 얘기해야 한다. 작은 마찰이 두려워 피하다 보니 사소한 것들이 나중에 큰 문제가 되는 경우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때만 지나면, 나만 괜찮다 하면 모든 게 다 좋아질 거라고 착각한다. 사실은 더 이용당하고 외면당하는 길임에도 은우는 거기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고향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철저하게 은우를 이방인 취급했다. 서울에서의 경력 10년은 깡그리 무시했다. 자기들 방식이 다 옳다고 주장했다. 아는 걸 알려주면 잘난 척한다는 뒷말이 들려왔다. 잘하면 잘한다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지 않나? 그들은 '다르다'는 것과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답답할 노릇이다. 어딜 가나 이런 사람들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무시하고 지내기엔 그들의 입은 세고 거칠었다.


또 벙어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살려고 부산에 온 게 아닌데 잠시 괜찮아지던 우울증이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또 숨어들기 시작했다. 나오라고 해도 나오지 않고 혼자만의 은둔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출근한다는 카톡이 오기까지 나는 걱정으로 밤을 보냈다. 팔과 다리엔 상처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은우의 화는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행위로 삭히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늘 하루는 무사한지 확인하는 것뿐. 그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의 가족으로 산다는 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걱정의 연속이다. 몇 번을 뛰어갔는지.. 한 번씩 농담처럼 나 죽으면 아무도 못 보게 해 달라고.. 부검도 필요 없다는 말을 할 때가 있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렇다면... 119부터 불러야 하나.. 이렇게 섬뜩한 생각을 몇 번을 했는지.. 자는 듯 누워있는 아이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그 공포감은 상상도 못 할 거다. 은우가 그렇게 혼자만의 우울과 싸우는 동안 나 역시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많이 힘들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고 약도 나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기를 몇 달.. 다행히도 은우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은우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그들을 '나쁘다'라고 말해주었다. 은우의 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바보야!"라는 농담 섞인 진담을 듣기도 했지만 진심을 알아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몇몇의 사람들이 은우를 힘들게 했지만 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은우의 진짜 모습을 봐주기 시작했다.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은우에게 '착한 게 다가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착하다고 하지 않는다고.. 병신 호구로 알지... 라며 충고를 해준다. 그 말은 나도 늘 했던 말이고 은우도 이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못 고치니 병인 건가. 그렇게 은우 편을 자처해주는 사람들 덕에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며 주말도 없이 열심히 일했다. 그랬더니 은우의 업무능력을 높게 사서 새로운 팀을 만들어 주는 상사도 생겼다. 또 어떤 이는 과학수사를 다시 해보는 건 어떠냐고 권해 주기도했고, 그동안 서울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상사들이 여기저기에서 응원을 보내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은우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것은 아니었던 거다. 몇몇의 행동에 기죽고 숨어든, 당당하게 맞서지 못한 은우의 문제였던 거지. 바보 같은 은우를 기억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은우가 잘못 산건 아니라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은우에게 조금씩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으로 잊는다고 하지 않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되어야 하나보다. 그렇게 은우는 조금씩 늪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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