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시간은 번개처럼 지나갔다.
오래된 아파트라 집안에 따뜻한 기운이 돌기까지 한참 걸리긴 했지만 아이들은 처음으로 방문한 이모집에서 아주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아마도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건 은우와 나뿐이었을 거다. 낯선 잠자리에 들어서야 은우가 홀로 보낸 서울생활 10년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은우는 어떤 마음으로 이 낡은 아파트에서 매일 밤을 보냈을까. 그래도 빌라보다 낫다며 웃으며 얘기한다. 늘 그런 식이다.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하면 될 것을. 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로 아슬아슬하게 겨우 나뭇가지 하나 잡고 버티고 있는 은우였다. 만나니 너무 좋다며 해맑게 웃는 은우를 나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잠자리가 낯설어서라기 보다 내 마음속에 미안함이 그제야 삐죽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은우도 그래서 자매인가.. 힘든 건 회피하고 싶다. 정면으로 맞닥뜨려 싸우고 터지기보단 안 보려고 애쓰고 돌아가려 한다. 그러면서 괜찮다 괜찮다 한다. 그래서 그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어쩔 수 없이 당면하게 되면 주저 않고 마는.. 너무나 닮았다. 밤새 무언가에 쫓기고 쫓겼다. 그동안 밀어두었던 서랍 속 두려움과 슬픔, 지나간 공포가 한꺼번에 나를 쫓아왔다.
두어 시간이나 잤을까. 아침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출근하는 은우가 걱정이다.
"잘 잤나 언니야?"
"어 잘 잤다. 바닥 뜨끈하니 좋더라"
은우 얼굴을 보니 밤새 잠을 설친 게 분명하다. 뭐라도 챙겨 먹여 보내야겠다 싶어 뻔하디 뻔한 냉장고를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음식을 해먹은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식기들은 아주 예전부터 '난 싱크대 안에만 있었다'는 느낌이다. 몇 개 있지 않은 라면은 유통기한이 지난 지가 한참이고. 그나마 컵라면 정도.. 냉장고엔 물과 맥주가 끝.. 좋아하는 과일 하나가 없다. 너무 속상한데 내 입은 쉬지 않고 잔소리만 해댄다.
"돈 없나?"
너무 답답한 나머지 물었다
"뭔 소리고?"
"먹을게 하나도 없다이가. 니는 도대체 뭘 먹고사는데? 천사가? 이슬만 먹고사나?"
"뭐라카노!!! 잘 먹거든!!"
"먹을 게 없는데 뭘 먹는다는 거고?"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다이가~~~"
말은 잘한다. 포장지 재활용도 하나도 없는데.. 재활용 통에는 햇반 통이랑 조미김 껍데기.. 그리고 맥주캔..
"맨날 맥주로 때우는 거 아니가?"
"잠이 안 오니까.. 먹고 자는 거지"
"으이그....."
안 봐도 뻔하다.. 출근하려고 준비하는 애를 붙들고 잔소리만 늘어놓는다.
"언니야. 하루 더 있다가 가면 안되나? 내 내일은 휴무니까 애들이랑 놀자~그리고 저녁에 같이 밥 먹고? 어?"
"그래 그러자. 형부한테 얘기해놓을게"
그렇게 은우가 출근하고, 나는 아이들을 깨워서 이모 없는 서울 여행을 시작했다.
아이들도 서울 여기저기 돌아보는 건 처음이라 신이 났다. 단지 이모집에 와서 서울 구경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아이들이다. 무슨 걱정이 있을까.
오전에 서대문 자연사박물관부터 경복궁까지 구경하고, 은우가 일하는 곳으로 갔다. 은우가 안 바쁘면 과학수사 체험을 해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신났고 마침 은우가 일하는 곳의 팀장님이 직접 아이들에게 지문 채취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은우의 일터는 생각보다 작았다. 경찰서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서 조용하고 한적했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는 사건도 없어서 대기 중이었다. 혹시나 방해가 될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일반인들도 가끔 미리 신청하고 체험하기도 한다기에 마음을 놓았다.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시고 지문채취만 해보려고 했는데 아이들을 앉혀두고 이런저런 설명까지 해주신다. 그런데도 눈치가 보였다. 불과 며칠 전 그런 사건이 있었으니 이 사람들은 은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아직 우리나라는 정신적인 아픔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니까.. 묻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아니 이해해달라 이쁘게 봐달라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나는 무얼 망설였던 걸까?
오래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따가 보자고 인사하고 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동생을 맡긴 언니의 입장이니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용기였다. 그렇게 돌아서 길 건너편에서 은우를 봤다.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한참을 서있다.
저렇게 작았던가.. 꼬맹이한테 어른 옷을 입혀놓은 느낌이다. 한동안 그 잔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50킬로도 안 되는 조그마한 몸뚱이로 그 긴 세월을 어찌 보낸 건지.. 마음이 아프다 못해 아려왔다. 은우도 내 마음을 아는지 곧이어 카톡 하나가 온다.
'괜찮거든! 그만 보고 어서 집에 가 있어라 빨리 갈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초행길에 내비게이션도 봐야 하는데 눈물이 그치지가 않았다. 일하는 곳을 다녀가면 마음이 좀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동안 보지 않으려고 애썼던 은우의 현실을 그제야 직면한 느낌이었다. 이 평화로운 일터에서 이 아이는 못 버티고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그것도 일이 싫어서가 아니다. 자기 내부의 감정을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는 은우의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왔다. 나는 10년 치의 미안함을 그제야 쏟아냈다. 미안하다.. 언니가 미안하다..
다음날 은우와 우리는 아침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말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서울 생활 10년임에도 안 가본 곳 투성이인 은우는 한강 유람선이 타고 싶다고 했다. 미세먼지 가득한 늦가을에 우리는 한강 유람선을 전세 낸 듯 즐겼다. 한강 라면도 먹고 북서울미술관도 갔다. 저녁엔 삼겹살에 술도 한잔씩~
집까지 돌아가는 길.. 아파트 놀이터를 보고 그냥 지나갈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이 그네 타고 자기들만의 시간을 가질 동안 잠시 벤치에 앉았다.
"벌써 다 지나갔네.. 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이렇게 빠른지 모르겠다."
"그러게.. 벌써 3일이 지났네.. 무시라.."
"더 있다가 가면 좋겠다.."
"그러게 말이다.. 근데 은우야 부산 오겠다는 거 아직 마음 안 바뀌었제?"
"어, 언니야 이미 신청했다. 병증으로 본가인 부산으로 전근 희망 신청했지"
"언제 알 수 있노?"
"결원이 있어야 하는데 글쎄.. 빠르면 다음달.. 아님 모르지머.."
"빨리 와야 될 텐데"
"가려고 결정하니까 너무 가고 싶다.. 엄마 아빠랑 언니랑 은미랑 다 같이 살고 싶다"
"그래 기도해보자.. 잘될 거야"
이제 와서 후회해본들 지나간 시간이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좀 더 일찍 은우를 가족 옆으로 데리고 올걸..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지금이라도 이 어둡고 좁은 터널을 빨리 지나갈 수 있게 도와주자.. 그거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은우 마음속에 있을 가족에 대한 서운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었다. 미안하다 은우야. 그렇게 속으로 몇 번을 말했나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입밖에 내지 못한 채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