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우는 조카들에게 과학수사를 하면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얘기들을 가끔 두루뭉술하게 들려주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얘기들을 골라서 해주기는 했지만 강력사건들이 많은 동네여서 듣다가 으악~~ 하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주로 살인, 방화가 많았고 유괴나 납치에 관한 얘기들도 있었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게 제일 목적이다.
그 외엔 주로 사람을 조심해라.. 특히나 큰 아이에겐 데이트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에 대해서 몇 번이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얘기보다는 집착하는 남자는 조심해라. 초반에 너무 잘해주는 남자도 조심해라. 간 쓸개 다 빼줄 거 같은 남자도 조심해라.. 이제 6학년인 애한테 별 얘길 다한다 싶다가도 은우의 아픈 사정을 큰 애도 알기에 허투루 듣지 않는 표정이다. 이모가 그래도 한 때 이모부였던 남자에게 그런 일을 겪었으니 남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조카만큼은 본인이 겪었던 일은 겪게 하고 싶지 않은 이모 마음이었을 거다.
그거 말고도 택배라고 문 열었더니 강도였다.. 그러니 조심해라.. 보일러 연통이 벌어져서 집안으로 가스가 들어와서 잠자던 학생이 죽었다... 항상 조심해라... 먼가 사건만 생기면 식구들 단속하기 바빴다.
강력범죄 현장은 은우에겐 감정소비가 너무 많은 곳이었다. 그날 있었던 '그들만의 사건'에 제삼자인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 된다. 은우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살인사건 현장에서는 죽기 직전의 피해자의 얼굴이 시신에서 보여서 더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게 일인지라 피해자의 얼굴과 온몸과 손과 발과.... 흔적 한 톨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들을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봐야 하니까.. 그러다 보면 단지 시신에서 증거를 찾는 일 말고도 어느새 그와 그의 마지막 고통을 함께 나누게 되어 버린다. 이미 사후강직이 일어나고 있는 그에게서 마지막 한 마디를 끌어내고자 은우는 그렇게 애를 썼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오로지 남아 있는 증거들로 모든 것들을 유추할 수 밖에...그날 있었던 일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다 보이는 사건이 있는 반면 꼭꼭 숨어버려 단서조차 못 찾는 일도 허다하다. 기술이 좋아져서 많은 증거들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건들도 있다. 그건 경찰들도 과학수사대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피해자는 버젓이 있는데 가해자는 꽁꽁 숨어버린... 가해자를 잡아도 말도 안 되는 형량으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은우가 할 일은 거기까지다. 그 현장에서 사건을 수습하고 최대한 증거들을 찾고, 그것들은 검사소에 전달하면 끝. 그게 은우가 맡은 바 책임인 것이다. 자기가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일의 연장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가졌다. 하나라도 더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거에 대해 미안해하고, 죄스러워했다. 과학수사대엔 은우만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 베테랑 수사관 몇 명이서 이잡듯이 찾고 또 찾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찾는 것들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가해자를 찾는다고 해도 그 죄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에서 하는 거지 은우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날도 그랬다. 살인사건 피해자 영안실 앞에서 실신해 버린 그날도..
"왜 갑자기 부산이고? 그래 오라고 해도 싫다더니?"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언니야.. 내 부산 갈란다.."
"왜???"
"오늘 영안실 갔다가 공황 와서 실신했다.... 팀장님도 놀라고... 다들...."
"그거야 어쩔 수 없다이가.. 공황장애 있다고 얘길 해야지..."
"그건 이해해주겠지만, 내가 더 안 되겠다.. 감정이 이제 조절이 안된다 언니야.."
"내 일단 서울 갈게.. 가서 얘기하자"
"어..언니야 좀 와줘.."
서울행 일정을 잡았다. 은우가 먼저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들을 두고 갈 수도 없고 남편도 직장이 있으니 아이들 학교 체험학습만 급하게 신청했다. 큰 아이가 6학년 때다.. 그렇게 2박 3일의 일정을 잡고 혼자 처음으로 아이들과 남편 없는 여행을 계획했다. 은우는 그날 밤기차로 부산엘 왔다.. 혼자 아침에 운전해서 올라오는 게 걱정이 되더란다.. 이런 바보가 또 있을까....
그렇게 그다음 날 아침 은우와 나와 우리 아이들은 서울로 출발했다. 자기 집에 가는데 굳이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는.. 그런 아이다.. 걱정이 지나쳐 본인을 힘들게 하는... 자기 때문에 서울까지 오게 하고 미안하단다. 노원의 작은 아파트에 월세로 이사간지가 언젠데 이제야 가보는 언니다.. 미안하면 내가 더 미안해야 하지 않나? 도대체 뭐가 미안하지? 이 아이의 미안함은 도대체 정체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