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람이 제일 무섭다

by 열정아줌마

내가 애 셋과 씨름하는 동안 은우는 상상조차 못 할 험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 수많은 일들을 혼자 묵묵히 당하고 참고 버티고 버텼다. 늘 바보처럼 웃으면서 주변의 요구를 다 들어주다 보니 일은 계속 늘어갔고 본인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생각 없는 바보처럼 거절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갔고 사람을 믿지 못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조금만 잘해줘도 마음을 쉽게 주었다. 걱정하며 진심으로 도와주려 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이용하려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다. 선의를 가장해 다가와서 개인 신상 털기로 뒷담화에 은따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사람도 있었다.


본인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될 텐데.. 왜 주변인들의 성과와 칭찬에 배 아파하는지..

힘든 걸 이겨내려고 열심히 일했고 실적도 하루하루 눈에 띄게 좋아지니 주변에서 가만히 두질 않았다. 시기 질투는 갈수록 심해졌고, 그런 몇몇의 사람들 때문에 은우는 경찰서 생활을 너무 힘들어했다.


"좀 당당하게 지내라. 이혼이 머 죄가? 그리고 그 새끼도 지가 결혼하자고 설친 거지 니가 먼저 하자 했나?"

"그게 말처럼 안 쉽다..."

"그나마 니한테 우호적인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가?"

"어.. 있지.."

"그런 사람들한테 사정을 좀 털어놔..."

"뭐하러..."

"아니,, 물어보는 사람들한테는 다 얘기하고 그래가 뒤통수 맞고....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모르고.. 니하고 친한 사람들은 그래도 네 편이라도 들어줄 거 아니가..?"

"귀찮다.... 그런 변명하는 것도.."

"아... 답답하다...."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다 좋아질 줄 알았단다. 애써 변명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단다. 자기가 진심이니 언젠가는 통할 거라고 믿었단다. 하지만, 그런 은우에게 돌아온 건 착한 척하는 아이라는 낙인이었다.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세상의 잣대로 자기들이 만들고 싶은 가면을 씌웠다. 너무 야비했고, 이기적이었다.


폐쇄적인 조직 내에서 그 철없는 남자를 보는 것도, 이기적인 인간들과 함께 하는 것도, 그러한 사정을 끌어안고 묵묵히 일하기도 은우에겐 쉽지 않았을 거다. 은우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좀 더 능글능글하게 비굴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았더라면 또 다른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약자에게는 더 가혹하게 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이 아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고 늘 도망치고 싶어 했다.. 지금 이곳에선 아무리 자기가 변화되고 노력해도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1도 들지 않았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혀 아무리 쳇바퀴를 돌려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그러던 중 과학수사대로 옮기게 되었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희망과 설렘으로 인생 리셋 버튼을 눌렀다.


"언니야. 나 너무 설렌다~"

"험한 일이잖아.. 맨날 시체 봐야 되고.. 머가 좋단 말이고.."

"산사람이 더 무섭다.. 모르나?"

"하긴... 그것도 그렇다.."


은우는 과학수사대에서 3년 넘게 일했다. 부산에 오기 전까지 과학수사대 근무를 했으니까 어찌 보면 수사업무로는 가장 길게 한 업무일 것이다. 과학수사대 일을 시작하고 이 일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대학원까지 진학했으니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충분히 알 것 같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주말마다 수업 듣는 열정....

물론 중간에 휴학을 했고 공황장애가 심해져 부산에 오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됐지만 진심 과학수사에 애정이 있었다.


그렇게 3년 넘게 과학수사대 일을 하면서 혀를 내두를 만큼 나쁜 인간들의 범죄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뉴스에 보도되지 않는 사건들이 태반이었고 근친 간의 살인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은우도 놀랐다고 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형제자매간에 살인 사건,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를 죽이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매일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단지 우리가 전부 다 알지 못할 뿐....

자기가 겪은 일련의 나쁜 경험들은 그런 사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 같다고 종종 얘기하기도 했다.

"나는 적어도 살아있잖아.."


생물학이 전공이었던 은우에겐 이 일이 너무 재밌었나 보다. 범죄현장에서 지문을 뜨고, 혈흔을 찾고, 은우 본인도 알지 못했던 특기들이 일에 대한 재미와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범죄현장에선 현장만 봐야 하는데 은우는 끔찍한 경험과 아픈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피해자와 유족들의 감정에 이입해서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범죄현장을 수습하고 확인하는 것과 별개로 피해자들의 감정, 마지막 죽기 직전의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밤새 힘들어했고, 잠시 좋아지나 싶었던 불면증이 더욱더 심해져갔다. 유족들의 오열과 아무에게도 인계할 수 없는 무연고 시체들... 그런 상황마다 자기감정을 소비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었다.


어느 날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은우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아이들이 생떼를 부리던 시기라 딴엔 그런 얘기를 하면서 투정도 좀 부리고 어찌 사는지도 듣고 싶었다. 은우는 화재현장에서 막 돌아왔다며 핸드폰 너머에서도 불냄새가 날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야.. 엄마 아빠 잘 계시제?"

"어.. 근데 왜? 별일 없으신데.. 먼 일 있나?"

"아니.. 그게 아니라 며칠 전에 변사 사건을 다녀왔는데 독거노인... 8개월 만에 발견되가지고.. 거기 다녀왔더니 울 엄마 아빠 생각이 나더라.."

"문디야... 엄마 아빠는 독거노인 아니잖아.. 오버하지 마라"

"맞제... 헤헤... 그냥 괜히 자주 못 가니까..."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을 달리 표현할 줄 모르는 딸이다. 그렇게 에둘러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안심하고 또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늘 괜찮다 괜찮다만 했다. 나에게만 현재 힘든 상황이나 약이 늘었다는 얘기를 그것도 물어봐야지만 대답하는 그런 생활이 계속 반복되었다. 어쩌다가 내려와도 늘 잘 살고 있다는 말만 했을 뿐..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은우는 좀 더 강한 수면제에 공황장애 약까지 제법 많은 양의 약을 먹기 시작했다. 일에 대한 재미와는 별도로 감정소비는 계속되었고 그즈음은 매일 아침에 잠은 잘 잤는지 어젠 어땠는지를 묻는 얘기가 대화창 대부분의 내용이었다. 그러던 중 톡이 왔다.. 어젯밤 야간근무를 갔으니 퇴근했다는 톡이려나...


'언니야.. 내 부산으로 근무지 변경 신청해야겠다 병증으로..'

그동안 계속 부산으로 오라고 얘기했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남겠다고 고집을 부렸기에 갑자기 부산으로 온다니 이건 또 무슨 일이지... 당연히 그래야지보다 걱정이 더 앞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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