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후회는 언제나 늦다

by 열정아줌마

은우가 낡은 빌라로 이사하고 얼마 후 우리 가족은 1박 2일로 여행을 갔다.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무언의 의견들은 놀러 가자로 일치되었고 행동파 막내네가 모든 일정을 진두지휘했다.


거제도의 바람은 여느 바닷가처럼 시원하고 좋았다. 가족끼리 첫 여행이라 모든 게 좋았을까~

대가족이 움직이는 거라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에 다들 신나서 웃고 떠들고.. 이게 얼마만이냐며 서로 지나간 일 따위가 무슨 상관이냔 식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은우도 오랜만에 휴가를 즐기고 있는 듯했고 웃는 얼굴을 얼마 만에 보는 건가 싶어서 엄마도 나도 막내 여동생도 짠한 마음을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티브이 프로그램이며 옛날에 학교 다닐 때 일들.. 자매들끼리 서로 옷 몰래 빼입고 갔던 얘기,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로 웃음꽃은 끊이지 않았다. 노을 지는 바닷가에서의 만찬은 너무나 즐거웠고, 이렇게만 지낼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 다들 술기운을 빌어 상기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후 자매들과 제부 넷이서 다시 술자리를 이어갔다.

"야.. 니 전화번호를 너무 자주 바꿔서 전화번호부에 어떤 게 진짜 니 번호인지 헷갈린다 이제"

"맞제... 세 번 바꿨나... 미안.."

"뭐가 자꾸 미안노... 그렇다 그거지 이제 안 바꾸면 되지"


또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하면서 위축되는 게 마음이 안 좋다. 내가 괜히 말을 꺼냈나 보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될걸.. 살짝 서늘해진 분위기엔 역시 술이다.

"은우야~술이나 한 잔 더 하자~~ 제부랑 막내야 짠하자~~"

"묵자 묵자~~~ 술 묵자~~ 짠하자"

어느새 또 술 하나로 똘똘 뭉치는 우리들이다. 그때였다. 은우 핸드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봐.. 왜 안받노.."

"......................."

"왜??"

"동석이.."

"뭐라고?? 그 새끼가 왜? 줘봐 봐 내가 받아볼게"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전화는 받을 때까지 울렸다. 밤 11시가 훌쩍 넘었는데 받을 때까지 나는 걸겠다는 의지가 오롯이 느껴지는 전화 벨소리였다.


"여보세요?"

"... 내다.... 은우야.."

"내 은우 언니.. 무슨 일로 전화한 건데?"

"아..... 누님.....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전화 걸겠습니다.."

"아니.. 야.. 니 왜 전화하는데? 무슨 볼일이 있어서? 그 여자랑 살림 차린 거 아니가? 근데 은우한테 왜 전화하노? 우리집 들먹거리면서 나가라고 할 땐 언제고? 니가 무슨 낯짝으로 은우한테 전화질이고? 한 번만 더 전화하면 진짜 다 엎어뿐다 이 새끼야 #$@#%%!%%!!!!!!!!!"


내가 아는 욕은 다 한 거 같다. 이럴 때 우리 남편이 있었으면 아주 그냥 혼쭐을 냈을 텐데.. 필요할 땐 없다..

술맛이 확 떨어졌다. 이제야 안 맞던 퍼즐이 맞춰진다. 그동안 얼마나 전화를 했으면 번호를 세 번이나 바꿨을까..


"전화 계속 하나 그 새끼?"

"어.. 바꾸면 친구한테 물어가 내부망에서 알아서 또 전화하고.. 바꿔도 소용없다.."

"전화해서 머라는데?

"미안하다고.. 그 여자랑 헤어졌고... 내랑 이혼하고 나니까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다고.. 다시 잘해보면 안 되냐고.."

"미친 새끼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니는? 니 감정은 어떤데?"

"언니야... 나는 다시는 걔랑 안 만나고 싶다.. 언니가 그랬잖아. 내가 동석이랑 결혼을 했으니까 스스로 끝낼 수 있었다고.. 결혼 안 하고 아직 만나고 있다면 나는 걔한테서 못 벗어나고 있을 거다. 이제 겨우 벗어난 거 같은데 다시 그 지옥으로 가라고? 안 할 거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제부도 거든다..

"처형.. 그 사람은 같은 남자 입장에서 봐도 쓰레기예요.. 잘 생각했어요.. 좋은 사람 천지 빼까린데 이제 더 좋은 사람 만날 거니까 걱정 마이소~"

다시 술자리는 이어졌다. 좀 전에 있었던 일은 잊으려는 듯이 넷 다 술잔을 바쁘게 움직였다. 모두 웃고 있지만 속으로 생각이 많았을 거다. 있을 때 잘하라는 옛날 말이 새삼 생각난다. 사람은 그 자리를 비워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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