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우의 전 남편은 소방관이다.
지방에서 뽑는 인원이 한정적이다 보니 서울에서 소방관 임용시험을 쳤고 합격해서 혼자 자취를 시작했다.
혼자 자취하는 아들이 못내 마음에 걸린 은우의 전 시엄마는 은우에게 빠른 결혼을 재촉했다. 은우도 경찰 공무원 공부를 뒤늦게 시작해서 한참 공부 중이었기에 합격하고나서 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엄마는 계속적으로 은우에게 빨리 결혼하라고 부탁을 했고, 은우도 지방보단 서울에서 시험을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결혼을 서두르기로 한 모양이다.
나는 은우의 결혼을 반대했다. 10년간 캠퍼스 커플로 연애하면서 얼마나 은우 속을 썩였는지 아는 나로서는 달가운 결혼이 아니었다. 술, 친구, 게임을 은우보다 더 좋아했으니까 결혼하면 어떨지 내 눈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감정에 부등호를 매기고 싶지는 않지만 은우 쪽으로 훨씬 기울어져 있던 연애임엔 분명했다. 은우가 훨씬 좋아했고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도 그 정도는 견딜만 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10년간 사귀었으니 은우 입장에선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그렇게 결혼식이 다가왔고.. 하루 전날... 늦은 밤 은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야..."
"내일 결혼하는 아 목소리가 와 일노?"
"동석이 연락이 안 된다..."
"내일 결혼하는 아가 왜 연락이 안 되는데?"
"몰라....."
"야... 이 결혼 하지마라했제....지금도 안 늦었다. 평생 이렇게 속썩일건데 꼭 해야겠나?"
"안 하면 어쩌노.. 내일이 결혼식인데..."
"잘 생각해봐 봐.. 제발... 난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다.."
"에효....알았다.. 언니야... 연락 오겠지... 내일 봐"
지금은 결혼식 사진이고 뭐고 다 태워버려서 없지만 결혼하는 신부 얼굴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건 난 여태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이랑 술을 진탕 마시느라 아침까지 집에도 안 들어갔고 밤새 한 숨도 못 잔 동생은 그렇게 어렵게 부부의 연을 시작했다.
밤새 아빠 간병하느라 병원에서 쪽잠을 자고 출근한 엄마와 바통터치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우가 도착했다. 은우 얼굴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간 근무하고 바로 기차 타고 왔다고 감안하고 보더라도 은우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니 얼굴이 이게 뭐고.... 진짜 속상해 미치겠다.."
"미안 언니야.. 헤헤.."
"웃음이 나나? 어??"
"내보고 나가라더라.. 그래서 나왔다..."
"머때메 나가라든데?"
"카드내역서에 모텔이 찍혀 있더라..그래서 이게 머냐했더니 여자가 있대...그러면서 이혼하자고..우리 집에서 해 준 더러운 혼수 다 들고나가라고 너거 부모가 해준 이깟꺼 다 들고나가라고. 자기 집이니까"
"그래서 나왔다고? 그게 말이 되나? 이혼에도 순서가 있잖아. 그리고 전세 8천만원짜리 집에서 지가 뭔데 지집이니 마니 그딴 소리를 하노 미친놈 진짜 가지가지 쳐한다!! "
"언니야... 더 이상 말 섞기가 싫더라.. 언니 말이 맞았다.. 1년 동안 술만 마시면 들어와서 내를 때렸다. 지 때메 서울 오자마자 경찰 합격한 거니까 지한테 엎드려 감사하라고.. 내 시험치는 전날에도 집에 안들어왔다..3일이고 4일이고 집에 안 오는 건 예사였다. 여자가 있는거 같은데 물어보기도 겁이 나드라.. 밥도 갖다가 바쳐야 먹고 마음에 안 들면 엎고.. 나는 아이도 가져보려고 산전 검사도 예약하고 이빨 치료도 하고 했는데 지가 번 돈 나랑 새끼한테 쓰는 거 싫다더라.. 왜 그래야 하냐고.. 그래서 지 카드로 결제한 내 이빨 치료비 300만 원 던져주고 나왔다. 지 돈 10원짜리 하나 받아오고 싶지가 않았다..."
할 말이 없다.. 예상했던 일인데 진짜로 벌어졌다. 이기주의의 끝판왕인 전 남편과 그 시엄마는 그냥 수발드는 사람 정도로만 은우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건 내가 생각한 이상이다.
배타는 시아빠는 6개월에서 최소 2년은 집을 비웠고 시엄마는 아들을 남편처럼 의지하고 살았다. 아들이 해달라는건 다해줬고 밥상도 발밑에 독상으로 매번 갖다줬다고 했는데..그걸 흘려들었던게 잘못이다. 단순히 술과 친구와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총체적 난국에 여자문제까지 있었다니...은우가 경찰시험 합격하고 교육받으러 간 사이 여자가 생긴 모양이다. 나는 이 결혼을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었다는 죄책감에 더 이상 할 말도 찾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은우를 바라만 봤다.
"짐은 다 어쨌노?"
"보관이사에 맡겨놨지...."
"생활은 어디서 하는데?"
"친구집...언니는 모르는 친구다...조만간 월세집이라도 구해서 나와야지.. 집 알아보고 있다 걱정하지마"
"진작 말하지.. 왜 혼자 끙끙거리노..가족이 왜 있는데!!!??"
"다 반대했잖아.. 이 결혼.... 언니도 형부도 엄마도... 그래서 도저히 말을 못 하겠더라. 내가 고집해서 결혼한 건데 1년 만에 이 지경이 됐다고 말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10년의 연애는 결혼 생활 1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재산분할할 것도 양육권을 다툴 아이도 없는지라 이혼 절차는 아주 간단했다. 그리고 은우는 서울에서 나이 서른을 넘긴 순경으로 외로운 이혼녀의 길로 들어섰고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