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우리의 사정 따위와 상관없이 자기 갈 길을 열심히 간다. 나는 나대로 아이 키우느라 하루하루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밥은 먹었냐? 먹었다 일도 잘하고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연락만 매일 주고받으며 나는 그렇게 괜찮을 거라 애써 무덤덤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석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집을 구했다며 은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돈도 없을 텐데 도와달란 말 한마디 없이 혼자서 집을 구했다니 애썼다 싶으면서도 나서서 도와주지 못하는 내가 참 바보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얄궂은 집일지 걱정이 앞섰다. 보러 가도 되냔 말에 안된단다. 당분간은 혼자서 해보겠다고 걱정하지 말란다. 모든 걸 혼자 짊어지고 가려는 은우가 안타까우면서도 나 살기 바빠서 괜찮다는 말에 괜찮대.. 하며 안이하게 잘 지낸다니 잘 지내겠지 하고 하루하루 넘기고 있었다.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하고 혼수품만 잔뜩 짊어지고 쫓겨나다시피 나오다 보니 집 구하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풀옵션 오피스텔의 경우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5~60이면 구할 수 있는데 가구며 전자제품이 발목을 잡는다. 결국 그 아이들을 다 품어 줄 수 있는 집은 낡은 빌라밖에 없었고 보증금 3천에 월세 30이었나.. 대출을 받아서 집을 구했다고 했다. 나는 결국 이 집을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밤새 야간 근무를 하고 아침에 잠들려고 누웠는데 창문 너머 들어오려고 하는 남자랑 눈이 마주치는 일이 생기고, 방범창을 달고 몇 달을 더 버티다가 노원 쪽에 작은 아파트 월세로 이사할 때까지 은우는 혼자서 그렇게 버텼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은우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남자의 침입 시도 후 증세가 더 심해졌고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이혼하고 불안한 상태에서 정신과 치료는 그럴 수 있다...병원 잘 가고 약 잘 먹고 마음 편하게 먹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10여 년이 훌쩍 지나고 서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서 살고 있지만 왜 그때 이 아이를 가족의 곁으로 데리고 오지 못했나 지금은 후회한다. 혼자서 괜찮다 괜찮다 안으로 울음을 삼켰을 은우에게 가족도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했다. 친구 집에서 생활한다는 은우에게 친구 누구냐 어디냐 그 친구 연락처라도 물어보며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거짓말에 서툰 은우는 솔직하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지혜에게 미안해서 다른 친구 집 간다고 나와서 무려 3개월을 모텔 생활을 했단다.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돈 필요하단 소리도 하지 못했다. 내가 좀 더 확실하게 은우의 주변을 살폈더라면 모텔에서 지내면서 친구 집에서 지낸다는 거짓말을 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은우는 어두운 모텔방에서 우울증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이 아이는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