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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드라마 Dec 22. 2021

포기하고 싶은 당신에게

그리고 언젠가의 나에게


인생은 살아보지 않으면 아직 모르는 일 투성이다.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당장 내일 내 인생이 뒤집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 달 후, 오 년 후 뒤집어질 수도 있는 게 인생인 것 같다.. 고 서른 즈음에 이야기해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역시나 삶을 살아오면서 전과 다른 내 모습에 나조차도 놀랄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전과 다른 내 모습에 얼마나 더 놀라게 될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

방송영상과를 나오긴 했지만 내가 PD(아직은 물음표)가 될 줄은 나도 몰랐고, 내 친구들도 몰랐고, 내 강아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졸업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전공이랑 진-짜 안 맞아', '졸업하면 절대 전공 안 살릴 거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어디 뜻대로 흘러가던가.


19년도 11월, 생각지도 못했던 전염병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곧 외출 시엔 무조건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길게는 한 시간 내내 혼자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던 나는 마스크를 씀과 동시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약 5년 동안 자부심을 갖고 해오던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경력이라곤 미술관과 관련된 일 외에 없었던 내가,

취업시장에서 그다지 젊지 않은 나이에 도전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얄팍한 마인드로 떠올린 것이 전공이었다. 경력은 없지만 관련 학과는 나왔으니 미약하게나마 방송국에 어필은 해볼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어찌 됐든 그 단순하고도 순진했던 생각 덕분(?)에 몸은 갈려나갈지언정 밥벌이는 하고 있는 요즘이다.

사실 나는 해외축구를 좋아해 평소 밥 먹듯 틀어놓을 정도로 좋아하던 채널의 회사에 지원한 것이었는데 어디 또 인생이 뜻대로 흘러갔겠는가. 합격은 했으나 원하던 해축팀이 아니라 KBO팀에 배정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야구의 기본적인 룰조차 모르던 내가 야구 방송 생중계를 담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버린 것이다.



무덥던 올해 여름의 어느 날, 입사가 확정되고 매일같이 공부했다.

팀명, 감독, 구장명, 선수들 얼굴과 이름, 방송 CG 루틴, 각종 용어...

방송 준비와 진행, 방송 후 정리로도 하루가 통째로 날아가버리는데 취침 전후로 내 시간을 쪼개어 공부까지 하려니 잠이 부족해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야구 선수들은 경기 내내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과 이름이 쉬이 외워지지도 않아 나는 진지하게

'내가 안면장애가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그리고 사람의 머리스타일은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소소한 TMI까지 깨달아버렸지..



입사 첫날, 선배님의 방송에 따라 들어갔던 그날의 대진은 KT 위즈가 승리한 경기였다.

평소 야구에는 관심이 1도 없어 중계방송 역시 챙겨보지 않아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첫 교육 후 기억에 남은 것이라곤 '호잉'과 '강백호' 둘 뿐이었다.

모자 때문인지 다 똑같이 생긴 것만 같은 야구선수들 속에서 그나마 부리부리하게 생긴 외국인이자 이름이 독특했던 호잉은 단박에 외울 수 있었고, 강백호는 그 당시 '올림픽 껌 사건'으로 야구를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유명세(?)를 탔던지라 나 역시 기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얼굴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다른 선수들, 다른 팀도 차차 익숙해져 갔지만 입사 첫날에 봤던 팀이라 그런지 이후로도 유독 KT 위즈의 경기에 관심이 더 많이 갔고 나도 모르는 새에 몇몇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약 3개월이 흘러 이틀 전, 11월 18일.

나는 '하필이면' 우리 회사 한국시리즈 4차전 방송의 부조 진행을 맡게 되었고

'하필이면' KT는 4차전에서도 연승을 하며 7전 4선승제의 KS에서 '하필' 이날 통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내 방송 때 우승이 결정돼버리면 시상식도 팔로우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퇴근도 늦어지니 제발 딱 한 번만

두산이 이기길 그토록 바랐건만..)



2015년 1군 리그에 합류해 최하위가 더 익숙했던 막내팀 KT 위즈는 마법처럼  2021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3개월 전의 나였다면 왜 멀쩡한 방송을 결방하고서 왜 야구 같은 걸 중계해주냐며 툴툴댔을 텐데,

좋든 싫든 일을 위해 보기 시작했던 야구가 현재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나도 모르는 새에 응원하던 팀이 우승을 하게 되어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

시상식을 중계하는 내내 '인생 정말 모를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곤 마음먹었다.



"앞으로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지."

"'절대'라는 건 '아마도' 없어."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지내며 많은 것들을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진짜 이걸 어떻게 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어느 순간 그럭저럭 하고 있고

'절대 못해'라고 생각했던 일은 '오늘 PD님이랑 방송해서 다행이다'라는 행복한 소리도 들으며 해내고 있다.


나는 왜 해보기도 전에 미리 겁부터 먹었을까?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왜 자꾸만 잊고 살아가는 걸까.

그리곤 생각한다.

까다로운 방송도 여유롭게 해내시는 존경스러운 선배님들을 보면서

저분들도 나처럼 신입이던 때가 있었고, 하염없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시절이 있으셨겠지.

누구에게나 너무도 당연한 거니까 나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언젠가 즐길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데 지레 겁먹고 너무 이르게 포기하지는 말자고.


실제로 근래엔 야구 시즌이 끝나가면서 전보다 훨씬 여유가 생겨 웃을 일도 많아졌다.

시간이 없어 툭하면 굶었던 저녁도,

요즘엔 식대가 나오는 4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여유 있게 먹고 돌아와 방송에 들어간다.



사실은 이 일을 10월까지만 할 '뻔'했다.

입사하고 2개월 동안 툭하면 야근에, 새벽 퇴근을 밥먹듯이 해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선배님께 그만두겠다고 말씀까지 드렸었다.

하지만 여러 선배님, 후배님들이 여러 조언과 함께 나를 만류해주셨고,

한편으로는 그새 야구에 정이 들었던 내가 한국시리즈의 끝을 직접 보고 싶기도 해 퇴사를 보류한 것이다.

(그렇게 운명처럼 KS 4차전 스케줄이 나에게 떨어졌고 KT는 하필 4연승을 해서 정말로 내가 끝을 어쩌구..)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일찍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당장 몸 상태가 나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도망치지 않길 잘했다.

일은 아직도 배울 것들이 산더미 같고 고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만

그만뒀더라면 거기서 끝이니까.

더 나아지고 더 재미있어질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졌을 테니까.

그리곤 방구석에서 '거긴 너무 최악이었어-'라며 힘들었던 기억만 한아름 떠안은 채 또다시 막연한 심정으로 취업 사이트를 뒤적였겠지.

(인생의 꿀팁 : 아쉬움이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남을 것 같다면 퇴사 카드는 잠시 넣어두는 게 좋다.)






'아메리카노 같이 쓴 걸 내 돈주고 사먹을 일은 절대 없을 거다'라던 나는 오늘,

휴일을 맞이하여 와플 두 개와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배달시켜 흔적도 없이 다 먹어치웠다.

심지어 달디단 초콜릿으로 코팅된 와플과 함께 아아를 마시니 '너무 맛있다'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방송영상을 공부하고 '졸업하면 절-대 절대 전공 안 살릴 거야'라던 나는 방송국 PD로 일하고 있다.


툭하면 '그런 옷 절대 안 입어'라던 나는 요즘 '그런 옷'에 꽂혀 '그렇게' 입고 다닌다.


이 나이 먹고도 엄마와 싸운 뒤 '앞으로 엄마랑 절대 말 안 해'라던 나는 오늘도 엄마와 카톡을 했다.


'노래가 왜이래? 이런 거 절대 안 들어'라던 나는 요즘 '그 노래'에 빠져 한곡 무한 반복 중이다.


그래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우정이 변한 걸 깨달았을 때는 의외로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이제 '절대'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 덕분에 하는 일마다 '언젠가는 해내겠지-'라는 자신감이 생겨 한층 더 아름답고 풍요로워진 삶이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의외로 간단한 깨달음에서 얻을 수 있었다.



'인생, 살아보기 전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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