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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Jun 09. 2023

한계를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크로스핏 하는 맛!

 발가락이 철봉에 닿아야 하는 토즈 투 바(Toes to Bar). 보기에도 어렵고 해 보면 더 어려운 그 동작.  


토즈 투 바(Toes to bar): 발끝을 철봉에 터치시키는 동작



 크로스핏을 갓 시작한 크린이 시절, 와드에 토투바가 나오는 날이면 아직 근력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철봉에 매달리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토투바를 최대치로 스케일 한 링로우를 하며 철봉에서 펄떡 거리는 사람들을 구경해야만 했다. 그래도 우리 박스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탓에 나처럼 토투바를 못하는 여성회원들이 많았다. 물론 그녀들은 내가 하는 링 로우보다는 한 수 위인 행잉 니 업이라는 토투바와 비슷한 동작을 수행했다.

*링 로우(Ring Row): 링을 잡고 천장을 바라보고 비스듬히 누워서 팔을 당기는 동작. 바닥과 수평으로 누울수록 많은 힘이 필요하다.

*행잉 니 업(Hanging Knee Up): 철봉에 매달려 무릎을 들어 올리는 동작


 그날도 와드를 시작하기 전 한 명씩 토투바를 하면서 자세를 교정하고 있었다. 나보다 경력이 많은 대부분의 여성 회원들이 철봉에 발이 닿을 듯 말 듯 토투바에 실패했다. 당연한 듯 계속되는 실패는 보는 이들의 사기도 떨어뜨렸다. 나 역시 오늘도 링 로우나 열심히 당기자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드디어 실패의 사슬을 끊어졌다. 작은 체구의 여성 회원이 멋지게 토투바 하나에 성공한 것이다. 다들 얼떨떨한 표정으로 탄성을 내지르고 있을 때 그녀는 무심하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왜 안될 거라고 생각해요?"


방금 성공한 토투바보다 더 멋있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 특히 나와 실력이 비슷한 사람의 실패라면.


'쟤도 안되는데 나도 당연히 안될 거야.'

'괜히 어쭙잖게 도전하다가 웃음거리 되지 말고 적당히 하자'

'어차피 안될 거 힘 빼지 말자'

'나도 못하는데, 쟤도 못해서 다행이다'


 누군가의 실패가 나의 실패에 대한 좋은 핑계와 은근한 위안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나 역시 '토투바는 어려운 것, 나는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갇혀있었다. 그녀의 멋진 성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부터 나는 수업이 끝나면 철봉에 매달려 토투바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성공이 당장 나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 절대적인 근력이 부족한 초보였으니까. 그래도 발 끝은 조금씩 철봉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3개월 차의 어느 날, 무심결에 해본 도전이 성공하고야 말았다. 비록 한 개지만 철봉이 발 끝에 닿은 것이다. 그 찰나의 짜릿함 이란. 나는 이제 토투바 하는 초보다! 이 기쁜 소식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다! 나는 와드에 토투바가 나오는 날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고 토투바 하나를 자랑하기 위해 박스로 향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토투바를 연습하고 코칭을 받았다. 역시나 토투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들킬까 봐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철봉으로 갔다.


뛴다, 잡는다, 아치, 할로우, 발을 찬다, 성공!

단숨에 토투바 한 개를 완수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좋아, 하나 더!


 하지만 역시나 연속 토투바에 실패하고 '히이익'하는 김 빠지는 신음소리를 내며 철봉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하지만 내 신음소리는 박스 사람들의 놀라는 탄성과 박수 소리에 묻혔다. 3개월 차의 초보였던 나는 여러모로 토투바를 못 하는 게 당연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박스 사람들은 앞다퉈 철봉에 매달렸다. 너도나도 토투바를 연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보다 한참 실력이 부족한 나의 성공이 큰 자극이 됐던 게 분명하다. 만년 꼴찌에서 이제는 견제대상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크로스핏 6개월 차의 나는 연속 토투바에 성공했다. 무려 4개! 부족한 게 많은 토투바지만 그때는 그게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이 맛이다, 크로스핏 하는 맛!


우리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의 한계를 지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나는 못할 거야, 실패할 거라는 생각의 껍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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