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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Dec 16. 2022

팡코치와 팍코치

다양한 스타일의 크로스핏 코치들

"이 느낌 알죠? 팡! 골반을 튕기면서 팡!" 

"가슴 펴고! 허리 세우고! 일어나면서 순간적으로 팍!"


 우리 박스에는 두 명의 코치가 있다.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는 팡코치와 목소리가 좋은 팍코치다. 매일매일 새로운 와드를 접하는 크로스핏 무지렁이였던 우리 부부에게는 코치들이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팡! 하고 반동을 쓰는 코치를 팡코치, 팍! 하고 힘을 주는 코치를 팍코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즈음 우리 집에서는 밤이 깊어가도록 팡팡, 팍팍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코치들은 사용하는 단어만 다른 것이 아니라 수업 스타일도 달랐다. 팍코치는 무게를 올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팍코치가 무게를 올려주면 내 실력이 좋아졌나 보다 하는 우쭐한 기분으로 와드에 도전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부상의 위험도 존재했고 근육통도 심하게 오는 날이 있었다. 반대로 팡코치는 부상을 방지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는 듯했다. 쉽사리 무게를 올리지 않았고 실력보다 살짝 낮게 무게를 설정할 때도 있었다. 어차피 그래도 와드를 하고 나면 온몸의 근육이 다 털렸으므로 불만은 없었다. 사실 관절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와 남편에게는 부상을 염려해 주는 팡코치의 섬세함이 좋아 보였다.


 게다가 쾌활한 팍코치는 가끔 괴팍해 보일 때가 있었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그래 가지고 되겠어요! 쉬지 마! 쉬지 마!"를 외쳤다. 게다가 와드가 끝나고 지쳐서 바닥에 널브러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얼마나 얄밉던지. 팍코치는 사람들 고통받는 걸 보는 게 좋아서 크로스핏 코치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에 반해 팡코치는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해요! 리듬감 있게! 지금 하는 것까지만 끝냅시다!" 하고 격려의 말을 했다. 친절한 팡코치! 그렇게 팡코치는 우리 부부의 인기 코치로, 팍코치는 학주 선생님 같은 역할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코치들의 첫인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몇 달간의 수업을 통해 나의 실력과 자세를 다 파악한 팡코치는 무게를 점점 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가벼운 덤벨에 손을 뻗으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와드가 끝나도 사람들의 체력이 바닥나지 않으면 더 괴롭게 하지 못한 걸 미안해했다. 나머지 운동으로 굳이 굳이 와드 보다 더 힘든 운동을 시켰다.


팍코치는 알고 보니 의외로 섬세한 면이 있었다. 여러가지 꿀팁도 주고 자세가 잘못되거나 통증이 생기는 원인을 잘 알려줬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무게를 높게 설정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의 와드에 따라 무게를 줄였다가 높였다가 계산하는 것을 알게 됐다. 또 특유의 쾌활함과 츤데레 같은 친화력으로 수업이 활기찼고 훈련도 다양해서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두 코치는 회원들이 괴로워할수록 즐거움을 느끼느냐 안도감을 느끼느냐의 차이일 뿐 지독한 것은 똑같았다. 어느덧 인기 선생님은 사라지고 학주 선생님이 두 명이 되었다. 하긴, 그런 독함이 있어야지만 크로스핏을 코칭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가쁜 숨을 내쉬며 욕인지 탄성인지 모를 기합을 내뱉는 사람들을 지도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 박스에는 코치들의 팡팡! 팍팍! 소리와 함께 회원들의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악!"

"이런 계란!'

"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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